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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0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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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4.23
 
 
작자/ 북경대법제자 멱진(觅真)
 
【정견망】
 
1999년 4.25는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한 파룬궁 수련생 1만 명 평화 청원사건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알고 수련으로 들어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천진 교육학원(평생교육기관의 일종)에서 발행한 청소년건강박람에 실린 하조휴(何祚庥)의 문장 때문이다. 그는 이 잡지에서 제멋대로 파룬궁을 헐뜯고 공격했다. 이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418일부터 끊임없이 천진 교육학원 관계자들에게 정황을 설명했다. 처음에 그 사람들의 태도는 아주 좋아서 고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20일 이후에는 태도가 변했다. 때문에 20일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천진교육학원을 찾아갔다.
 
4월 23일 아침 6시 나는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천진교육학원에 갔다. 당시 원내에는 대략 백여 명이 있었다(몇 명은 거기서 밤을 지낸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대문 맞은편 건물 오른쪽 문 밖에 (이 문은 닫혀 있었다) 앉았다. 사람들은 매우 조용했다. 책을 읽거나 연공하는 사람 아침을 먹는 사람 등이 있었고 또 몇 명은 가볍게 며칠 동안의 정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7,8시가 되자 학원의 학생들, 교직원들이 학교로 들어왔는데 성,시와 현의 학생들도 많이 들어와서 교내 도로 양방향, 학교 안팎에 사람이 가득 찼다. 듣기에 수천명은 된다고 했다.
 
우리는 조용히 앉거나 서 있었으며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이나 인근 주민들의 생활, 휴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조용히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으며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가끔씩 비닐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의 화장실을 이용했으나 나중에 사람이 많아져 학교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까 봐 우리 몇 명은 줄을 서서 외부 공공화장실을 이용했다. 길에는 모두 길을 안내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공공화장실 내에는 수련생들이 자비로 사놓은 작은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사부님은 우리 신변에 계셨다
 
약 오후 1시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큰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노천의 수련생들은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았고 다면 뒤쪽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몇 명의 수련생들이나 동수들이 서로 돌봐주며 우산, 우의를 조용히 신속히 앞으로 전달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수련생은 비에 젖었다. 수련생은 함께 사존의 <논어>를 같이 외우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한번 또한번 외웠는데 음성이 매우 커서 하늘을 찔렀고 뭇신들이 도와 사악을 놀라게 했다. 이때 우리는 강의실과 사무실 건물 내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끊임없이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비록 큰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태양이 오히려 나왔다. 이때 동수들이 가지런히 머리를 들어 바라보며 동시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눈앞의 정경에 나는 눈물로 앞이 흐려졌다. 분기, 부끄러움, 감은..... 비가 언제 멎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막 들어왔을 때는 여전히 비바람을 피하고 해를 가릴 곳을 찾고 있었는데 눈앞의 동수들을 보니 정말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폭풍전야
 
약 오후 6시 쯤 편집부에 간 동수에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난 오늘은 집에 몇시에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연락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나와 몇몇 동수들은 학교 밖에 나가 전화를 했다. 당시 길에 많은 사람들과 경찰이 하늘을 보며 손으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하늘에 많은 오색 파룬이 돌고 있었는데 특히 태양 주위에 큰 대법륜이 돌고 있었다. 당시 길 가던 사람들과 경찰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학교 교문으로 돌아왔을 때 무장 경찰 버스가 집합한 것을 보았다(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
 
태양이 거의 산아래로 떨어질 무렵이었다. 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원내의 수련생들은 안쪽으로 모였다(아직 햇빛이 좀 남아 있었기에) 담에 의지하여 조용히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수련생은 아직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된 아기를 안고 있었다. 나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이때 원내에 잔잔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막 떨어지려는 태양 주위에 또 큰 파룬이 나타났으며 무수하게 크고 작은 오색 파룬이 떨어져 내렸다. 수련생 몸에 다리에 무릎에 떨어져 내렸다. 어떤 동수는 사존의 법신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약 7시 경이 되자 어떤 사람이 스피커를 들고 와 소리를 질렀다. 곧 해산시킬 예정이니 사람들더러 얼른 떠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뒷감당을 못한다고 했다. 이때 일부 소수 사람들은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고지식하게 모였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둘러쌓다. 이때 또 <논어>를 외우는 음성이 한번씩 들렸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경문을 외웠다.
 
대략 9시 쯤 해산이 시작되었다. 경찰들이 무리를 지어 마당에 들어와 몇 편대로 나누어 진압에 나섰다. 수련생들은 가는 곳마다 진상을 알리고 실정을 알렸다. 어떤 경찰은 매우 겸손하고 태도가 좋았으나 어떤 경찰은 정말 흉악해서 닥치는 대로 잡고, 때리고, 끌고갔다. 옷이 찢어지고 신발이 벗겨지고 밖으로 끌려나와 차에 던져졌다. 대략 40여 명이 잡혔다고 했다. 마지막 남은 수십 명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노약자들을 감싸고 단단히 뭉쳤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실정을 알렸다. 어느 사악한 경찰이 무전기를 들고는 사람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힘으로 양쪽 수련생을 잡아당겼다. 가는 동안 우리가 몇 차례나 잡아 당겼는지 모른다. 처음에 십 여명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바깥에 도착하니 천진시 정부와 시위원회로 가라는 말이 있어 무리를 지어 시정부 방향으로 걸었다. 중간에 어떤 수련생이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었다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도 몰랐다. 시정부에 도착하여 조용히 담벼락에 앉거나 난간에 앉았으며 젊은 제자들이 앞에 앉았다.
 
대략 새벽 1시가 되어 교섭하러 들어갔던 제자들이 나와 말을 전했다. 천진에서는 해결할 수 없으니 북경으로 가야 합니다.”
 
이때부터 억만 대법제자들의 간고한 정법노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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