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신운(神韻)과 신기원–“덕음(德音)”의 문을 열다

작가: 여지(茹之)

【정견망 2008년 2월 7일】
신운 스펙태큘러의 아름답고 온화한 음악은 마치 한 줄기 맑은 샘물처럼 사람들의 마음 밭으로 흘러들어 마음의 평화와 조화를 선사하는 동시에 풍부한 내포를 전달한다. 많은 관중들은 스펙태큘러 음악에 대해 내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음악이 너무 좋아요!”
–“내심 깊은 곳에서 마치 새로운 악장(樂章)을 펼친 것 같았어요.”
–“재즈나 록음악처럼 요란하고 불안정한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스펙태큘러 음악을 들었을 때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스펙태큘러 음악은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깊이가 있어요.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아주 기세가 있습니다.”
–“정말 여운이 끊이질 않아요. 거기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지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너무 편해요.”
–“음악이 아주 우아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신운의 음악(樂)은 왜 이처럼 “3일이 지나도 귓가를 맴돌 만큼” 매력적인가?

유가(儒家)에서는 음악을 논함에 성(聲), 음(音), 악(樂) 3가지 층차의 개념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음(音)에는 리듬이나 곡조가 있지만 성(聲)에는 그런 것이 없다. 보통 성(聲)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소리로 소음이나 잡음을 말하고 음이라고 하면 악음(樂音)을 말한다. 이외에 음(音)은 장식을 거친 인류의 마음의 소리라는 의미가 있다.

『악기(樂記)』에서는 “무릇 음(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정(情)이 안에서 움직이는 까닭에 소리(聲)가 겉으로 드러난다. 소리가 무늬를 이룬 것을 일러 음(音)이라 한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내심에서 우러나오고 또 “무늬를 이룬(리듬이 있다는 의미)” 소리라야만 비로소 “음(音)”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자면 음(音)은 성(聲)보다 높은 층차의 것이다.

또한 “음(音)”에도 층차의 구분이 있으니 낮은 층차의 “음”은 천도(天道)와 중용의 원칙에 어긋나 사람의 감정을 무절제하게 발산시켜 인류를 퇴폐하게 만들거나 혹은 극단으로 이끄는데 결국에는 인성(人性)을 훼멸시킨다. 반면 높은 층차의 “음”은 천도를 체현한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음악을 향수하게 하는 동시에 도덕을 훈도하고 심성을 함양시키는 것으로 바로 “덕음(德音)”에 속한다.

때문에 『악기(樂記)』에서는 “군자는 그 도(道)를 즐기고 소인은 그 욕망을 즐긴다. 도로 욕망을 통제하면 즐겁되 어지럽지 않지만 욕망 때문에 도를 망각하면 미혹되어 즐겁지 않다.”
“무릇 악(樂)이란 음(音)과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오직 “도(道)”에 부합하는 음(音), 즉 높은 층차의 음만을 악(樂)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는 춘추시기에 이미 고악(古樂)과 신악(新樂)의 논쟁이 있었다. 소위 고악이란 황제(黃帝)와 요순(堯舜)이래 성현들이 전해준 아악(雅樂)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황제의 “함지(咸池)”, 요 임금의 “대장(大章)”, 순 임금의 소(韶)와 우 임금의 하(夏) 등, 리듬이 완만하면서도 장중하고 내포가 아주 풍부한 것들이다. 반면 신악이란 당시 사람들이 만든 음란한 악곡으로 자의적이고 방탕하며 사상이나 내포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악기(樂記)』에는 위문후(魏文侯)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에게 음악에 관해 묻는 일화가 나온다. 위문후가 자하에게 말했다. “내가 예복에 면류관을 쓰고 고악을 들으면 늘 졸음을 참기 힘들지만 정(鄭)나라나 위(衛)나라의 음(音)을 들으면 피곤한 줄 모르겠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자하는 “고악(古樂)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가지런하고 간사한 소리가 없으며 여러 악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연주를 시작할 때는 북을 쳐서 알리고 춤을 마칠 때는 징을 쳐서 끝냅니다. 군자가 이를 들으면 고악의 의리(義理)를 알 수 있으니 그런 후에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며 천하를 고르게 합니다. 그러나 신악(新樂)은 그렇지 않아 대오가 어지럽고 혼란하며 간사하고 방탕하기에 무용수는 마치 원숭이 놀음을 하는 것 같고 남녀가 뒤섞이고 존비(尊卑)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악곡이 끝나도 군자가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음란하고 덕(德)을 해롭게 하는” 신악은 “악(樂)”으로 칭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오직 “덕음(德音)만이 비로소 악이라고 칭할 수 있다.”

지금 세상에는 각종 유행음악이 성행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시끄러운 곡조는 모두 사람들의 감각만을 자극할 뿐 내심의 안정을 찾게 하긴 커녕 도리어 인류도덕의 타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음악은 단지 앞에서 언급한 낮은 층차의 “음(音)”에 불과하거나 혹은 제대로 된 곡조조차 갖추지 못한 “성(聲)”에 불과할 뿐 “악(樂)”은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이런 혼탁한 세상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한 가닥 맑은 음악이 존재한다. 바로 신운 스펙태큘러의 음악(樂)이다. 신운의 음악(樂)은 바로 천도(天道)를 체현한 것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眞善忍을 전달하고, 전통문화에서 중시해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전달하며, 시끄럽고 번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는 사람들에게 순선(純善) 순미(純美)한 음악을 향수하게 할 수 있는 동시에 끊임없이 사상을 정화시켜 선(善)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사색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유가에서 말하는 “대덕지음(大德之音)”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신운 음악이 지닌 매력이다.

신운은 신기원(新紀元)의 “덕음”의 문을 열었다. 신운의 음악은 분명 미래 세계의 새로운 음악 조류를 이끌게 될 것이다.

발표시간 : 2008년 2월 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8/2/7/50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