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천고영웅인물】 조조(14): 신이 내린 문필

글/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4장 신이 내린 문필(神來之筆)

조조는 밖으로 무공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안으로는 문학에서도 빼어났다. 군사를 이끈 30여 년간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않았고 낮에는 무학을 강론하고 밤이면 경전(經傳)을 읽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부(賦)를 지었고 새로 시(詩)를 지으면 여기에 관현악으로 음악을 입혀 악장(樂章)을 이루었다. 하지만 조조가 남긴 시들은 대부분 산실되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악부시 18편을 합해 모두 26수에 불과하다.

청나라 때 유희재(劉熙載)는 조조의 시에 대해 “조공의 시는 기세가 웅장하고 힘이 넘쳐 모든 것을 뒤덮을 수 있어 건안(建安)시인들 중에서 필적할 만한 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청나라 때 학자 방동수(方東樹)는 “대체로 무제(武帝 조조)의 시는 침울하면서도 진솔하다. 기운이 곧아 점차 올라가다 갑자기 끊어지는데 어느 순간 평탄해진다. 수시로 붓을 들어 기세를 바꿨다. 그 뜻의 단서를 찾아보면 분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붓의 힘과 문법을 음미해보면 무겁게 응축된 가운데 변화가 많아서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평가했다.(《소매첨언(昭昧詹言)》권2)

조조의 시와 문장 속에는 천고에 유명한 구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귀하다(天地間,人爲貴)”, “술을 앞에 두고 노래하노니 인생이 얼마나 되는가(對酒當歌,人生幾何)?” “어떻게 근심을 풀까? 오직 두강의 술뿐이로다(何以解憂? 惟有杜康).” “산은 높다고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다고 꺼리지 않네(山不厭高,海不厭深).” “늙은 천리마는 마구간에서도 뜻은 천리를 달리고, 열사는 비록 늙었어도 큰 포부 그치지 않네(老驥伏櫪,志在千裏;烈士暮年,壯心不已).” 등이다.

오언시(五言詩)가 유행하던 시대에 조조의 사언시(四言詩)는 시어(詩語)의 조성이 절창을 이뤘고 건안문풍(建安文風)을 최초로 창시했다. 건안문풍은 그 시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후세인들은 이를 ‘건안풍골’(建安風骨 남송의 엄우), ‘봉래의 문장은 건안 풍골이요(蓬萊文章建安骨 이백)’, ‘한위풍골(漢魏風骨 당나라 시인 진자앙)’이라고 불렀다.

조조의 오언시는 대개 깊이 가라앉으면서도 웅장하고 비분강개하고 고직(古直)하면서 비량(悲涼)한 구절이 많다. 예를 들면 《호리(蒿裏)》나 《해로(薤露)》 등의 시는 ‘제1고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노련함’ 등으로 불리며 건안 시가 중 가장 감동적인 일면을 보여주었고 악부가사(樂府歌辭)를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조조는 오언시에서 ‘제1고인’ 또는 ‘천고에 제일가는 시인의 시조’, ‘격조가 예스럽고 질박하면서도 당나라 오언시의 단초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조는 또 시사(詩詞)를 통해 자신의 수련체험과 수련에서 본 것들을 서술해 완전히 새로운 풍조를 개창했다. 이는 또 조식(曹植) 및 육조 이후 후세인들이 수많은 유선시(遊仙詩)를 창작해 중화 신전문화의 한 떨기 진기한 꽃이 되게 했다. 유선시란 대부분 신선이나 수련에서의 승화를 노래한 것으로 대부분 수도자들이 쓴 것이다. 역대 유선시 중에서도 특히 조조와 이백의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 현존하는 20여 편의 조조 시 중에서 무려 7편이 유선시인데 《기출창(氣出唱)》 3수, 《정렬(精列)》 1수, 《맥상상(陌上桑)》 1수, 《추호행(秋胡行)》 2수다. 이 시들은 시인이 선경(仙境)에 오르거나 신선과 함께 노닐거나 또는 수도나 양생 등을 노래했다.

유선시는 세인들이 신불(神佛)을 공경하고 믿으며 도를 지향해 신선이 되고 반본귀진(返本歸真) 하도록 계발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무신론의 영향으로 유선시를 단지 시인이 환상 속에서 만들어 낸 공허하고 아득한 경지로 보거나 심지어 시 작법의 일종인 낭만주의 수법으로만 본다. 때문에 유선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조조는 상서로운 황성(黃星)과 천운에 상응해 태어났으며 진인(眞人)이 속세에 내려와 도를 닦고 몸을 수양했다. 때문에 그의 유선시는 자신의 수련체험 및 성취를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고 후인들에게 선가(仙家)의 풍모를 남겨주었다. 조조의 유선시는 기세가 웅장하고 언어가 질박하면서도 유창할 뿐만 아니라 내포가 풍부해 읽어보면 그 소리가 낭랑하게 입가에 퍼진다.

《기출창》 1수

육룡이 끄는 수레를 타고 바람을 타고 다니네.사해 밖을 다니며 팔방을 돌아다니네.높은 산을 오르고 깊은 계곡에 이르며 구름을 타고 다니네. 사해(四海) 밖을 드나든다!사해 밖을 다니다 동으로 태산에 이르네.신선과 선녀들도 내려와 날며 노니네.육룡의 수레를 타고 옥장(玉漿 신선의 음료)을 마시니황하 물이 다해 동으로 흐르지 않는구나!마음속 근심 풀려 옥장을 마시네.수행을 받들어 동쪽 봉래산(蓬萊山 신선의 산)에 갔다가 위로 하늘문까지 이르렀네!옥궐(하늘 궁궐) 아래에서 이끌려 들어가니적송자(赤松子 신선)가 마중을 나왔네 사방을 돌아보니 보는 것마다 찬란하구나!옥빛이 비춰 마음에 흥이 생기니 진기가 곳곳에 이르네.입을 열지 않고 무궁한 일을 알려주니 오직 기를 아껴야만 만년을 살리라.동으로 바다에 이르러 하늘과 하나로 이어지네.신선의 도는 들고 남이 심오해서 늘 오로지하고편안하고 담박한 마음으로 탐욕이 없어야 하네.문 닫고 가부좌하여 하늘이 기를 줄 때까지 기다려라.신선이 되고 싶으면 구름수레에 올라타고흰 사슴이 끄는 수레를 몰고 하늘 문까지 오르면 신의 약을 하사하네.무릎 꿇고 받들어 신을 공경하라!마땅히 이와 같다면 도는 저절로 오리라.

駕六龍(가육룡) 乘風而行(승풍이행)行四海外(행사해외) 路下之八邦(노하지팔방)曆登高山臨溪谷(역등고산임계곡) 乘雲而行(승운이행) 行四海外(행사해외) 東到泰山(동도태산)仙人玉女(선인옥녀) 下來翱遊(하래고유)驂駕六龍飲玉漿(참가육룡음옥장)河水盡(하수진) 不東流(부동류)解愁腹(해수복) 飲玉漿(음옥장)奉持行(봉지행) 東到蓬萊山(동도봉래산) 上至天之門(상지천지문)玉闕下(옥궐하) 引見得入(인견득입)赤松相對(적송상대) 四面顧望(사면고망) 視正焜煌(시정혼황)開玉心正興(개옥심정흥) 其氣百道至(기기백도지)傳告無窮閉其口(전고무궁폐기구) 但當愛氣壽萬年(단당애기수만년)東到海(동도해) 與天連(여천운)神仙之道(신선지도) 出窈入冥(출요입명) 常當專之(상당전지)心恬澹(심염담) 無所愒欲(무소게욕)欲閉門坐自守(욕폐문좌자수) 天與期氣(천여기기)願得神之人(원득신지인) 乘駕雲車(승가운거)驂駕白鹿(참가백록) 上到天之門(상도천지문) 來賜神之藥(내사신지약)跪受之(궤수지) 敬神齊(경신제)當如此(당여차) 道自來(도자래)

《기출창》 2수

화음산 높기도 하다.백길 아득한 곳 뜬구름이 덮여 있다.신선이 오려하니 바람이 불고 비마저 몰아친다.퉁소 불고 거문고 뜯으니 어찌 이리 부드러운가!술 마시며 노래하니 오늘 실로 즐겁구나!옥녀가 일어나 한참을 춤추니 음악소리 끝없이 울린다.서북쪽에서 올 때 신선의 길에 많은 수레 먼지 일고구름에 올라 용 타고 오는데 어찌 그리 먼지팔방을 즐거이 노닐다 이내 곤륜산에 이르렀네.서왕모 곁에 서자 신선들이 옥정으로 모여 든다.모여든 자 누구던가? 적송자와 왕자교니 바로 덕선의 문중이라황혼까지 먹고 마시며 서로들 마주 앉아 만세를 기원하고 자손번성을 기원한다.

華陰山(화음산) 自以爲大(자이위대)高百丈(고백장) 浮雲爲之蓋(부운위지개)仙人欲來(선인욕래) 出隨風(출수풍) 列之雨(열지우)吹我洞簫(취아동소) 鼓瑟琴(고슬금) 何訚閻訚(하은염은)酒與歌戲(주여가희) 今日相樂誠爲樂(금일상락성위락)玉女起(옥녀기) 起舞移數時(기무이수시)鼓吹一何嘈嘈(고취일하조조)從西北來時(종서북래시) 仙道多駕煙(선도다가연)乘雲駕龍(승운가룡) 鬱何蓩蓩(울하모모)遨遊八極(오유팔극) 乃到昆侖之山(내도곤륜지산)西王母側(서왕모측) 神仙金止玉亭(신선금지옥정)來者爲誰(내자위수) 赤松王喬(적송왕교) 乃德旋之門(내덕선지문)樂共飲食到黃昏(낙공음식도황혼)多駕合坐(다가합좌) 萬歲長(만세장) 宜子孫(의자손)

《기출창》 3수

군산(君山)을 즐거이 노니니 참으로 진실하다.우뚝 솟은 산과 바위 하나하나 신이로다.서왕모의 요대에 가면 황금계단 옥 전각 옆에 영지가 자라니동서 양쪽 행랑마다 손님들 가득하네.주인이 잔을 들고 장수를 기원하니오랜 즐거움은 자손에서 시작하리라.주인의 수명 늘어 하늘처럼 영원하길 기원하노라!

遊君山(유군산) 甚爲真(심위진)崔嵬砟硌(최외사락) 爾自爲神(이자위신)乃到王母台(내도왕모대) 金階玉爲堂(금계옥위당) 芝草生殿旁(지초생전방)東西廂(동서상) 客滿堂(객만당)主人當行觴(주인당행상) 坐者長壽遽何央(좌자장수거하앙)長樂甫始宜孫子(장락보시의손자)常願主人增年(상원주인증년) 與天相守(여천상수)

《기출창》 제1수에서 조조는 육룡이 끄는 수레를 타고 구름을 타고 다니다 동쪽으로 태산(泰山)에 이른다. 태산은 중국 오악의 으뜸으로 예부터 사람과 신이 모여 교류하던 곳이다. 선인(仙人), 옥녀(玉女)가 내려와 서로 만났다. 계속해서 동쪽 봉래산에 이르니 봉래산 산 위에서 하늘과 통하는데 위로 천문(天門)까지 이르렀다. 옥궐(玉闕 하늘 궁궐) 아래에서 누군가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신선 적송자가 나를 맞는다. 사방을 두루 바라보며 신선의 도를 담론했다.

‘옥빛이 비춰 마음에 흥이 생기니 진기가 곳곳에 이르네.’ ‘신선의 도는 들고 남이 심오해서 늘 오로지하고/편안하고 담박한 마음으로 탐욕이 없어야 하네/ 문 닫고 가부좌하여 하늘이 기를 줄 때까지 기다려라.’ 조조는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했다.

《기출창》 제2수에서 시인은 신선들의 큰 모임을 기록했다. 우선 화음산에 가서 퉁소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술을 마시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후 팔방을 즐겁게 노닐다가 마침내 곤륜산에 이르러 서왕모의 모임에 참석한다. 적송자와 왕자교를 만나 ‘황혼까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놀았다.’

여기서 적송자(赤松)는 적송자(赤誦子)라고도 하는데 호가 좌성남극남악진인(左聖南極南嶽真人) 또는 좌선태허진인(左仙太虛真人)이다. 신농씨 시절에 우사(雨師)를 맡았다. 왕교(王喬)는 왕자교(王子喬)라고도 하며 원래 동주(東周) 시기 주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이다. 일찍이 백인령(柏人令 백인현 현령)을 지냈는데 동북 선무산(宣務山)에서 득도했다. 한나라 환제(桓帝) 때 백인성 성내에 현민들이 왕교를 위해 세운 비석이 있었는데 비석 위에 ‘선무산이 있는데 왕교가 신선이 된 곳이다[山有巏旄(宣務) 王喬所仙]’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왕교가 선무산에서 학을 타고 승천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기출창》 제3수는 조조가 군산(君山)에서 또 다시 신선들과 가진 모임을 기록했다. 군산은 동정호 가운데 있으며 옛날 순임금의 두 아내가 거처하던 곳이다. 군산에 왕모대(王母台)가 있는데 그 안에 황금계단이 있는 옥 전각이 있고 그 옆에서 영지가 자란다. 동서 행랑에는 손님이 가득한데 시인은 마지막으로 주인의 수명이 늘어 하늘처럼 영원하기를 축원한다.

《추호행(秋胡行)》 1수

신 새벽에 산관산을 오르네 어쩌면 길이 그리 험하던지!신 새벽에 산관산을 오르네 어쩌면 길이 그리 험하던지!소는 나자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수레는 골짜기로 떨어졌네.큰 바위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뜯으며청각이란 노래 지어 답답한 마음을 노래로나 불러보네 신새벽에 산관산을 오르네.

晨上散關山(신상산관산) 此道當何難(차도당하난)晨上散關山(신상산관산) 此道當何難(차도당하난)牛頓不起(우돈불기) 車墮谷間(거타곡간)坐盤石之上(좌반석지상) 彈五弦之琴(탄오현지금)作爲清角韻(작위청각운) 意中迷煩(의중미번)歌以言志(가이언지) 晨上散關山(신상산관산)

세 노인이 있어 갑자기 내 옆에 다가왔네.세 노인이 있어 갑자기 내 옆에 다가왔네.가죽옷 입은 품이 예사 사람은 아닌 듯싶네.그대는 무엇이 괴로워 자신을 원망하는가?황황히 무엇을 하고자 이곳에 왔는가?노래로 불러보네 세 노인이 있었네.

有何三老公(유하삼로공) 卒來在我傍(졸래재아방)有何三老公(유하삼로공) 卒來在我傍(졸래재아방)負揜被裘(부엄피구) 似非恒人(사비항인)謂卿云何困苦以自怨(위경운하곤고이자원)惶惶所欲(황황소욕) 來到此間(내도차간)歌以言志(가이언지) 有何三老公(유하삼로공)

나는 곤륜산에 사는 소위 진인이라네.나는 곤륜산에 사는 소위 진인이라네.도가 비록 심오해도 얻을 수 있으니 명산을 두루 다니며팔극을 노니는데 돌을 베고 샘물을 마신다네.머뭇머뭇 주저하다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랐네.노래로 불러보세 나는 곤륜산에 산다네.

我居昆侖山(아거곤륜산) 所謂者真人(소위자진인)我居昆侖山(아거곤륜산) 所謂者真人(소위자진인)道深有可得(도심유가득) 名山曆觀(명산력관)邀遊八極(요유팔극) 枕石漱流飲泉(침석수류음천)沉吟不決(침음불결) 遂上升天(수상승천)歌以言志(가이언지) 我居昆侖山(아거곤륜산)

떠나간 신선 좇지 못하네 따라갈 수 없음을 한탄하네.떠나간 신선 좇지 못하네 따라갈 수 없음을 한탄하네.밤이면 어찌 편히 잠들까 스스로 연민하며 슬퍼하노라.제환공은 바르고 속임이 없었으니 시를 지어 노래하고경전에 기록되어 서쪽에서 전해졌네.노래로 불러보세 떠나간 신선 쫓지 못하네.

去去不可追(거거불가추) 長恨相牽攀(장한상견반)去去不可追(거거불가추) 長恨相牽攀(장한상견반)夜夜安得寐(야야안득매) 惆悵以自憐(추창이자련)正而不譎(정이불휼) 乃賦依因(내부의인)經傳所過(경전소과) 西來所傳(서래소전)歌以言志(가이언지) 去去不可追(거거불가추)

《추호행》 2수:

태산과 화산(華山)에 올라 신선과 함께 노닐고 싶어라.태산과 화산에 올라 신선과 함께 노닐고 싶어라.곤륜산을 지나 봉래산에 이르렀네.팔극(八極)을 두루 돌아, 신선과 함께라네.신약(神藥)을 얻어 만년을 살았으면.노래나 읊어보리, 태산과 화산에 오르고 싶구나.願登泰華山(원등태화산) 神人共遠遊(신인공원유) 願登泰華山(원등태화산) 神人共遠遊(신인공원유) 經曆昆侖山(경력곤륜산) 到蓬萊(도봉래) 飄飄八極(표표팔극) 與神人俱(여신인구) 思得神藥(사득신약) 萬歲爲期(만세위기)歌以言志(가이언지) 願登泰華山(원등태화산)

천지는 이리도 영원하건만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짧은가.천지는 이리도 영원하건만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짧은가.흔히들 노자는 세월을 모르고, 적송(赤松)과 왕교(王喬)도 도를 얻었다 하지만들어보지 못했네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노래나 읊어보리 천지는 어이 이리 영원한가

天地何長久(천지하장구) 人道居之短(인도거지단)天地何長久(천지하장구) 人道居之短(인도거지단)世言伯陽(세언백양) 殊不知老(수부지로) 赤松王喬(적송왕교) 亦云得道(역운득도)得之未聞(득지미문) 庶以壽考(서이수고)歌以言志(가이언지) 天地何長久(천지하장구)

밝고 밝은 해와 달, 비추지 않는 곳이 없구나!밝고 밝은 해와 달, 비추지 않는 곳이 없구나!둘은 성인의 덕화라지만, 그래도 귀한 것은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천하의 모든 땅이 왕의 신하로다.인의(仁義)를 명분으로 삼고 예악(禮樂)을 영화(榮華)로 삼네.노래나 읊어보리, 밝고 밝은 해와 달

明明日月光(명명일월광) 何所不光昭(하소불광조)明明日月光(명명일월광) 何所不光昭(하소불광조)二儀合聖化(이의합성화) 貴者獨人不(귀자독인부)萬國率土(만국솔토) 莫非王臣(막비왕신)仁義爲名(인의위명) 禮樂爲榮(예악위영)歌以言志(가이언지) 明明日月光(명명일월광)

사계절 잘도 흘러가고, 낮과 밤이 오기를 어느덧 한 해.사계절 잘도 흘러가고, 낮과 밤이 오기를 어느덧 한 해.대인(大人)은 하늘에 앞서고,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네.해가 가는 거야 서럽지 않다만, 세상을 다스리지 못함이 걱정이구나.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렸으니 근심해봐야 어리석기만 하다.노래나 읊어보리. 사계절 잘도 흘러간다.

四時更逝去(사시갱서거) 晝夜以成歲(주야이성세) 四時更逝去(사시갱서거) 晝夜以成歲(주야이성세)大人先天而天弗違(대인선천이천불위)不戚年往(불척연왕) 憂世不治(우세불치)存亡有命(존망유명) 慮之爲蚩(여지위치)歌以言志(가이언지) 四時更逝去(사시갱서거)

무엇을 걱정하랴! 내키는 대로 즐겨보세.무엇을 걱정하랴! 내키는 대로 즐겨보세.젊은 날의 지혜도 다시는 오지 않으리오.시간을 아껴 노력한들, 누구에게 좋은 겐가?마음껏 즐겨보세. 하지만 그것 또한 무엇인가!노래나 읊어보리. 무엇을 걱정하랴!

戚戚欲何念(척척욕하념) 歡笑意所之(환소의소지)戚戚欲何念(척척욕하념) 歡笑意所之(환소의소지)壯盛智慧(장성지혜) 殊不再來(수부재래)愛時進趣(애시진취) 將以惠誰(장이혜수)泛泛放逸(범범방일) 亦同何爲(역동하위)歌以言志(가이언지) 戚戚欲何念(척척욕하념)

《추호행(秋胡行)》은 건안 20년(215년) 조조가 서쪽으로 장로(張魯)를 정벌하는 길에 4월 여름 산관산을 넘으면서 쓴 시다. 신 새벽에 산관산을 오르는데 길이 어찌나 험한지 “소는 나자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수레는 골짜기로 떨어졌다.” 시인은 “큰 바위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뜯으며 청각이란 노래를 지어 답답한 마음을 노래했다.” 《예기 악기(樂記)》에 “순임금이 거문고를 뜯으며 ‘남풍(南風)’을 노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청각(清角)은 전설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지은 음악이라 하는데 대덕지사(大德之士)가 아니면 연주를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이때 곤륜산의 세 신선이 시인 옆에 와서 “그대는 무엇이 괴로워 자신을 원망하는가? 황황히 무엇을 하고자 이곳에 왔는가?”라며 묻는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 마지막에 이르러 시인은 이 시의 출처가 경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진짜이며 거짓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경전에 기록되어 서쪽에서 전해졌네.”라고 노래했다.

《추호행》 2수에서 조조는 태산과 화산에 올라 신선과 함께 노닐고 싶은 바람을 표현했다. 또 “곤륜산을 지나, 봉래산에 이르렀네. 팔극(八極)을 두루 돌아, 신선과 함께 라네.” 인간 세상에 돌아온 후 시인은 “천지는 이리도 영원하건만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짧은가.”라며 감개한다. 세간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백양(伯陽 노자의 자), 적송자, 왕자교는 모두 득도한 사람들인데 조조는 “들어보지 못했네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라며 물어보지 못했다.

한편 “밝고 밝은 해와 달은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천하의 모든 땅이 왕의 신하로다. 인의(仁義)를 명분으로 삼고 예악(禮樂)을 영화(榮華)로 삼는다.”라고 하며 자신이 인간 세상에 전생한 사명을 말했다. 또 당대 및 후세 사람들에게 “대인(大人)은 하늘을 앞서고,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 해가 가는 거야 서럽지 않다만, 세상을 다스리지 못함이 걱정이구나. 삶과 죽음은 운명에 달렸으니 근심해봐야 어리석기만 하다.”라고 알려준다. 다시 말하자면 천명에 순응해 일을 행함은 하늘이 시킨 일을 완성하는 것으로 삶과 죽음은 천명에 달려 있으니 구태여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맥상상(陌上桑)》

무지개를 몰아 붉은 구름 타고서 저 구의산에 올라 옥문을 지났네.은하수를 건너고 곤륜산에 이르러 서왕모를 뵙고 동군을 알현했네.적송자와 선문을 사귀고 신선 비법 전수받고 정신(精神)을 수양했네. 영지를 먹고 단 샘물 마시며 계수나무 지팡이에 추란(秋蘭)을 찼네.속세를 끊고 대자연에 노닐며 질풍처럼 훨훨 날았네.눈 깜짝할 사이에 천 리를 가니 남산처럼 오래 살아도 자신의 허물 잊지 않네.

駕虹霓(가홍예) 乘赤雲(승적운) 登彼九疑曆玉門(등피구의역옥문)濟天漢(제천한) 至昆侖(지곤륜) 見西王母謁東君(현서왕모알동군)交赤松(교적송) 及羨門(급선문) 受要秘道愛精神(수요비도애정신)食芝英(식지영) 飲醴泉(음예천) 拄杖桂枝佩秋蘭(주장계지패추란)絕人事(절인사) 遊渾元(유혼원)若疾風遊欻飄翩(약질풍유훌표편)景未移(경미이) 行數千(행수천) 壽如南山不忘愆(수여남산불망건)

이 시에서 조조는 또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와 동군(東君 신)을 알현하고 신선 적송자와 선문(羨門 선문고라고도 하며 진시황이 갈석산에서 사람을 파견해 찾아보게 한 신선이다)과 사귄다. ‘신선의 비법’을 전수받고 영지를 먹고 단 샘물을 마시며 여러 신선들과 함께 우주에서 노닐었다.

이 시는 조조 만년의 작품으로 유선시(遊仙詩)의 일종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유선시가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정렬(精列)》

(생물이) 처음 태어나 조물주가 빚어낸 것은,끝이 없는 것 없구나.끝이 없는 것이 없구나.성현도 면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여 이런 일로 근심하리오?이룡(螭龍)의 수레를 타고 곤륜산에 살고 싶어라.곤륜산에 살고 싶어라.신령을 기약하며, 봉래산에 뜻을 두었네.봉래산에 뜻을 두었네.주공과 공자 같은 성인도 가셨고 회계산엔 우임금의 무덤 있네.회계산엔 우임금의 무덤 있네.길고 긴 세월에 그 누가 영원하리?그래서 군자는 근심하지 않는다네.만년이 된 것을 어찌하리오?과거는 지나갔고 남은 날은 많지 않네.

厥初生(궐초생) 造劃之陶物(조획지도물) 莫不有終期(막불유종기)莫不有終期(막불유종기)聖賢不能免(성현불능면) 何爲懷此憂(하위회차우)願螭龍之駕(원이룡지가) 思想昆侖居(사상곤륜거)思想昆侖居(사상곤륜거)見期於迂怪(견기어우괴) 志意在蓬萊(지의재봉래)志意在蓬萊(지의재봉래)周孔聖徂落(주공성조락) 會稽以墳丘(회계이분구)會稽以墳丘(회계이분구)陶陶誰能度(도도수능도) 君子以弗憂(군자이불우)年之暮奈何(연지모내하) 時過時來微(시과시래미)

조조는 이 시에서 “곤륜산에 살고 싶고” “봉래산에 뜻을 두었네”라고 노래했다. 속세에 사는 사람이라면 성현이든 범부든 모두 무덤 속에 들어가니 죽음일랑은 근심할 필요가 없다.

한편 당나라의 대시인 이태백은 건안문학, 특히 조조의 시 작품에 대해 “봉래문장건안골(蓬萊文章建安骨 봉래의 문장 건안의 풍골)”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소위 ‘봉래문장’이란 선도(仙道)의 내포가 풍부하게 담긴 것을 지칭하는데 바로 건안시기 문학의 풍골(風骨)을 말한다.

조조와 그의 두 아들 조비(曹丕 훗날의 위문제), 조식(曹植)은 모두 중국문학의 역사상 저명한 문인들로 역사에서는 흔히 ‘삼조(三曹)’라 한다. “위무제 조조는 상왕(相王 한의 재상과 위나라 왕)의 지극히 존귀한 위치에 있었는데 시와 문장을 몹시 사랑했다. 문제(文帝) 조비는 태자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사부(辭賦) 짓기를 좋아했다. 진사왕(陳思王) 조식은 공자(公子)의 호화로운 신분이면서도 한번 붓을 잡으면 주옥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지었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문인들을 깊은 존경으로 대했기 때문에 일시에 많은 문인들이 그들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들 중 건안칠자(建安七子)가 가장 유명하다.

조비는 건안칠자에 대해 “오늘날 문인으로는 노국(魯國) 사람 공융(孔融) 문거(文擧), 광릉군(廣陵郡) 사람 진림(陳琳) 공장(孔璋), 산양군(山陽郡) 사람 왕찬(王粲) 중선(仲宣), 북해국(北海國) 사람 서간(徐幹) 위장(偉長), 진류군(陳留郡) 사람 완우(阮瑀) 원유(元瑜), 여남군(汝南郡) 사람 응창(應瑒) 덕련(德璉), 동평국(東平國) 사람 유정(劉楨) 공간(公幹)이 있다. 이들 칠자(七子)는 학문에서 빠짐이 없고 문장에 있어서 [남의 것을] 빌려온 바가 없다.”(《전론(典論)‧문장을 논하다(論文)》)라고 했다. 한편 조식은 조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신을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신을 믿게 되었고 수많은 유선시부(遊仙詩賦)를 창작했다.

조식의 《보도부(寶刀賦)》는 조조가 보도를 만들어 태을(太乙)의 사당에 제사를 지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한나라 때 태을은 하늘에서 가장 존귀한 신을 지칭하는데 한 무제는 태을을 천제(天帝)로 숭배하기도 했다.

《보도부(寶刀賦)》

건안 시기 아버님이신 위왕(魏王 조조)께서 무기제조 책임자에게 보도(寶刀) 다섯 자루를 만들게 하셨다. 3년 만에 만들어 바치니 각기 용(龍), 호(虎), 웅(熊), 조(鳥), 작(雀)이라 이름을 새기셨다. 이중 태자(조비)가 하나를 얻고 나와 동생 요양후(饒陽侯 조림)가 각기 하나를 얻었으며 나머지 2자루는 아버님께서 지니셨다.

위대한 한나라의 영명한 위왕(魏王 조조)께서는 생각이 밝고 활달하면서도 트여 있으시네. 문장을 발표해 천하의 인재들을 초빙하셨고 군사적 준비를 잘 갖춰 흉포한 무리들을 제어하셨네. 화로속의 타오르는 불이 쇠를 녹여 정련하는데 오획(烏獲 전국시기 진나라의 장사)이 망치를 휘두르는 듯 구야(歐冶 춘추시대 전설적인 검의 명장)가 주조하는 것 같네. 부채로 바람 일으켜 화기를 드높이니 불빛이 천정(天庭 별이름)까지 훤히 비춘다. 이에 태을 신께 기도하니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감응하셨네. 오방석으로 칼을 간 후 중황(中黃)의 흙으로 닦아내었네. 원형으로 칼자루를 만들고 신묘한 생각으로 조각을 새겼네. 화려한 꽃무늬로 칼을 장식하니 비취색 칼 빛이 번쩍이네. 보도의 예리함 뭍에선 코뿔소 가죽을 자르고 물에선 수룡의 뿔을 자르네. 살짝만 휘둘러도 가볍게 잘리고 칼에는 아무런 흠집도 없다네. 월나라의 거궐(巨闕 월왕 구천이 찼다는 보검)을 능가하고 초나라의 태아(泰阿 춘추시기 초나라 왕이 차던 명검)를 뛰어넘었구나. 진실로 진인(眞人 조조)이 지니시면 영원히 천록(天祿 하늘이 주시는 작위 여기서는 왕위)이 이어지리라.

建安中,家父魏王命有司造寶刀五枚,三年乃就,以龍、虎、熊、鳥、雀爲識.太子得一,餘及餘弟饒陽侯各得一焉.其餘二枚,家王自杖之.

賦曰:有皇漢之明後,思明達而玄通.飛文藻以博致,揚武備以禦凶.乃熾火炎爐,融鐵挺英.烏獲奮椎,歐冶是營.扇景風以激氣,飛光鑒於天庭.爰告祠於太乙,乃感夢而通靈.然後礪以五方之石,鑒以中黃之壤.規圓景以定環,攄神思而造像.垂華紛之葳蕤,流翠采之滉瀁.故其利陸斷犀革,水斷龍角.輕擊浮截,刃不纖流.逾南越之巨闕,超西楚之泰阿.實真人之攸禦,永天祿而是荷.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152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