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묘(싱가폴)
[정견망] 처음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을 때 나는 대학교에서 갓 나온 젊은 교사였다. 그 당시, 대법에 대한 인식은 아주 얕었고 다만 감성적인 인식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몽롱함 속에서 나는 전에 없었던 착실감을 느꼈다. 사부님에게 드리는 심득체험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사부님, 당신께서 대학교에 오셔서 강의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너무나 행운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며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상에서 여전히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법을 얻지 못하였는바 그들은 얼마나 가르침이 필요하겠는가.
몇년전, 생활은 나를 다른 한 나라로 데려갔고 나의 수련의 길도 하나의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였다. 홍법, 정법, 진상 알리기, 발정념, 갈수록 많은 여가시간을 대법의 일 속에 투입시켰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을 여전히 일하는 회사에서 지냈다. 어떻게 일하면서 진상을 알릴까? 나는 중학교 교사이고 매일마다 몇십명에서 백여명의 학생들과 접촉하였다.
학교는 젊은이들의 천지이지만 이곳 역시 똑같이 현대사회의 일부 불량한 영향에 의하여 오염당하였다. 대다수 학생들은 제멋대로고 최소한의 예절도 모자랐고 타인의 감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들은 파도에 떠밀리듯이 타락하며 무지 속에서 자신을 방임하였다. 일부 고학년 학생들은 비록 열심히 공부하지만 오히려 다만 나중에 사회 속에서 한바탕 다투어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 시기의 젊은이는 해보고 싶어 안달이지만 또한 미혹을 느꼈다. 심지어 자신을 위하여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오락규칙을 정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을 마주하고 나는 마땅히 어떻게 가서 인도해야 하고 그들의 변이된 도덕관과 심미관을 바로 잡을 것인가? 어떻게 “진선인(眞善忍)”을 그들에게 가져다 줄까? 나는 전에 성실하게 학교 지도자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학교측은 나 개인의 신념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 수업 중에 파룬궁 문제를 논하지 말 것을 명확히 표시하였는데 대륙학생들의 반감을 일으킬까봐 두려워하였다. 이 요구를 듣고서 나는 이것은 나에 대한 한 개의 고험임을 느끼었다. 나는 이것에 의해 가로막히지 말아야 했으며 동수들도 나를 격려하였다. 그렇다면 지혜를 운용하여 진상을 알리고 부동한 방면에서 중생을 구도하자.
수련의 각도에서 나의 직업을 살피고 나는 새로운 생각의 출로가 생겼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우주, 시공(時空), 인체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유독 “불법”뿐이다. 그는 능히 진정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일체 그릇된 견해를 타파하고 올바른 견해를 내세울 수 있다.”(<<논어>>) “지금 과학기술계에서 발견한 것으로만 하여도 오늘의 우리 교과서를 바꾸기에 넉넉하다. 인류의 고유적인 낡은 관념이 일년이 사업, 사유의 방법으로 형성된후,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진리가 나타나도 그것을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일종 배척이 생기게 된다.” (<< 전법륜>>)
나는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선생님은 마땅히 옛사람들이 남겨놓은 이론을 결코 중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식하였다.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문화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순정한 사상을 학생들에게 가져다 주어야 하고 그들이 정견을 수립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매년마다 나는 모두 고3학년 모국어팀의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이 반의 학생들은 주로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에서 온 학생들이다. 필수과정을 제외하고 규정과제와 관련있는 일부 부교재가 필요하였다. 어디에 가서 정도가 깊고 내용이 건강한 교재를 찾을까?
나는 그 지역의 신문잡지에서 몇 개의 저명한 신흥화문 사이트로 옮겼는바 정견망과 신생망 등이다. 이 사이트의 문장이 영향주는 면은 넓으면서 또한 새로운 뜻을 품고 있었다. 문학시가, 음악미술 혹은 과학기술 모두를 속에 포함하고 있었다. 많은 문장의 내용이 평화롭고 관점이 새롭고 아울러 아주 높고 깊은 이치가 없어 일반 독자들한테 비교적 적합하였다. 만약 자신의 일하는 정황을 덧붙여 이용한다면 아주 좋게 학생들을 인도할 수 있었고 아울러 간접적이고 직접적으로 대법의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나는 교학 대강에서 규정한 필수특별문제(專題)와 교재에 근거하여 정견망 등 사이트에서 일부 보충문장 혹은 뉴스보도를 선택하였다. 아래는 몇가지 예이다.
예를 들어, 사회시사를 연구하는 부분에서 교학대강에서는 “환경”문제를 연구하라고 건의하였다. 나는 “인류와 환경”이란 작은 특별문제(專題)를 개설하였고 정견망에서 고대와 현대사회인과 자연 그리고 환경오염에 관한 몇 편의 문장을 찾았다. 이 문장 중에서 작가는 고대인이 자연과 화목하게 지내며 고대인은 문명을 남겼지 쓰레기를 남기지 않았으며 현대과학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조건등을 파괴하였다고 소개하였다. 나는 학생들더러 문장의 주제와 관점을 분석하게 하였고 그들을 조직하여 작은 팀으로 나누어 토론하게 하였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 작가로서 유신(有神)이 존재합니다. 그는 우리의 자원은 모두 신이 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류가 지구환경을 파괴하였다면 신은 일체를 모두 회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바 사실 고대의 중국인 역시 신을 믿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개체와 사회”의 전문란에서 우리는 “남녀평등”과 “혼인가정” 등을 토론하였다. 나도 정견망의 한편의 문장을 선택하였으며 말한 것은 고대와 현대의 혼인형식을 비교한 것이었다. 나도 자신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편과 아내는 모두 마땅히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며 자신의 배역을 잘 맡아야 합니다.”
현대의 산문(散文)을 연구할 때 우리는 쉬즈머와 주즈칭의 <<산거>>와 <<연못달빛>>등 명작을 배웠다. 규납할 때 나는 이렇게 제기하였다. 두 명의 작가 모두 문장 속에서 대자연에 대한 바램과 인간세상의 아귀다툼에 대한 싫증을 표달하였고 또한 반본귀진을 창의하였다. 물질생활을 추구하는 산문을 결합하고 반복적으로 사고하여 나는 이렇게 제기하였다. 명예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인생의 정상적인 목표같지만 잇달아 오는 것은 고뇌이며 오히려 벗어날 수 없다. 욕망이란 골짜기는 메우기 힘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사욕과 이익을 추구함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전 한 학기에서 우리의 특별문제는 “청년문화”였다. 나는 학생들을 조직하여 매 사람마다 전 반에서 관련되는 문장을 한편씩 소개하게 하였다. 한 학생이 추천한 문장에서 이런 한마디가 있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 다른 한 학생이 잇달아 질문하였다. “선생님, 무엇 때문에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자신에게 이득이 없습니까?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모두 좋은 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를 잘 질문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표면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일을 하고 남을 깔보고 해치는 것은 모두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툽니다. 그러나 그는 긍정코 잃는 것이 있는데 무엇을 잃겠습니까? 그는 다른 사람의 신임과 존중, 우의를 잃습니다. 만약 더 깊은 층에서 보면, 다른 공간에서 보면 그는 또 더 많은 것을 잃습니다. 지금 어떤 과학자들은 다른 공간의 존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말한 김에 한마디 하는데 일본의 과학자들은 한가지 물결정(水結晶)에 대한 과학실험을 진행하였고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물결정의 정견과학기술뉴스에서 간단하게 묘사하였고 학생들은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끝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질문한 한 학생이 또 이렇게 말했다. “물분자와 더욱 작은 입자도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그렇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 역시 한 개의 세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미국와 영국에서는 전에 “미래과학대회”를 열었고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였습니다. 우리 현재의 교과서에서의 지식은 긍정코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꽤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고 나는 또 이후에 이 실험에 관한 텔레비젼극을 편집한 후 반에서 방영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매번 보조적인 문장에 관련되는 토론이 끝난 후 나는 모두 학생들을 일깨워주었다: 개방적인 사상을 유지하고 고대의 것은 바로 낙후한 것이고 현대의 것이 바로 선진적인 것이라고 여기지 말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사물은 긍정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말라는 등등이였다. 교학실천을 통하여 나는 정견문장을 이용하여 교학을 보조하는 이러한 방법은 속인사회의 이치에 부합되며 또한 정견을 조용히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학습과 토론 속에서 학생들은 사유의 길를 넓히고 일부 정견문장 중의 관점들을 섭취하거나 인정하였다.
수업은 나의 일하는 장소이며 개인수련과 진상을 알리는 것도 그속에 있었다. 나는 대법제자의 풍모를 체현함에 주의하였고 모든 학생들을 관심하였다. 중국대륙에서 온 학생에 대하여 나는 일체 가능성을 다하여 법륜대법 진상을 소개하였다. 어떤 학생은 중문 사이트를 보려고 하였고 나는 그들을 도와 대법의 진상을 알 수 있는 사이트 몇개를 추천하였다. 구정전야, 나는 학생들에게 법륜대법의 소개를 인쇄한 달력을 선물하였다. 어떤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그에게 진상VCD를 선물하여 기념으로 하라고 하였다. 반급의 토론 속에서 매번 파룬궁의 문제가 제기되면 나는 모두 방관자의 각도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일부 싱가폴파룬궁 수련생들의 체험과 활동들을 이야기하였다. 그 외 애국심과 정부를 애호하는 국민 등의 각도에서 모두 대법의 진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기쁘게 보게 되었는데 적지 않은 대륙의 학생들이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었고 또한 어떤 이는 진지하게 사고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변화였다.
실천 속에서 나는 경험을 쌓고 교훈을 섭취하며 더욱 잘하려고 하였다. 나는 한편 또 한편 정견을 전달하는 문장들이 동수들이 수고한 결정체임을 잊지 않았다. 대법은 나에게 일에서 진상을 알리는 지혜를 부여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가운데서 채용한 방법은 모두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모두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이 한 길에서 앞을 향하여 걸어나가고 있으며, 게다가 갈수록 더욱 잘하고 있고 갈수록 더욱 이지적이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에서의 설법>>)
제자가 진심으로 하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기회를 배치해주신다. 나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 정견을 뿌려 그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내일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한다.
발표: 7월 21일
분류: 정법수련>하고싶은 말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7/21/225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