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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닦음(修心)에 대해 옅게 깨달아보다

파룬따파의 수련은 사람의 정신도덕을 승화하여 우주 특성에 동화하는 생명 본질상의 승화 과정이다. 때문에 수련은 “마음”에 공력을 들여야 하고 닦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마음”이다. 마침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대법은 끝없는(大法無邊) 바, 당신의 그 마음에 의해 수련해야 하며”, “우리 이 한 법문은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라고 하셨다. 아래는 이 법리에 대한 나의 이해이며 동수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나

사람의 사상은 대부분 마음에서 오는즉, 마음이 일어난다는 바로 생각을 움직였음이다. 생각에는 정념이 있고 사념(혹은 잘못된 생각)이 있다. 마음이 바르면 정념이 생기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바로 사념(혹은 잘못된 생각)이 생긴다. 정법수련에서 대법제자가 피비린내나는 혹독한 나날 속에서 바르게 걸어온 매 한 걸음은 바로 마음이 바르고 염두가 바른 결과이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이 바르지 못할 때 주저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올바른 길에서 이탈함으로써 조사정법과 자신의 수련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대법이 탄압당한 초기에 먹장구름이 뒤덮이고 법난이 곧 시작될 무렵에 사부님께서는 공개수배 당하고 대법은 모함을 받았다. 뭇 제자들의 마음은 애가 탈 정도로 조급했고 침식을 잊었다. 진솔하게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하나 또 하나의 마음에서 그들은 생명으로 대법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층층의 봉쇄를 돌파하고 갖은 난관을 이겨내어 천안문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나의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란 마음의 소리를 외쳤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오랫동안 관망한 후 비로소 똑같은 행동을 했다. 허나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은 두려움이었는데, 가지 않으면 원만하지 못할까 봐 사부님께서 그를 누락시킬까봐(당시 천안문에 간 사람의 이름은 책에 기록된다는 말이 전해졌음), 또 일부 사람들은 허영심의 지시 하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갔는데, 자신이 가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또 예를 들면 수련 중의 사람에게 병업이 나타났을 때 일부 마음은 법 속에서 정념을 내보내어 사악이 나를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일체는 나의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다! 잇달아 사악은 물러났고 병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병업 속에서 생각한 것이 나는 법을 위해 많은 것을 헌신했지만 왜 또 병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왜 나의 병이 낫게 하시지 않는가 라고 한다.

이렇게 구함이 생기면서 구했지만 얻지 못함에 이르렀고 구했지만 얻지 못하자 원망이 생겼다. 더 나아가 “사부님은 왜 나를 상관하시지 않지?”라는 일념이 생기고 이 일념이 생기기 전 그의 마음은 이미 믿지 않았거나 최소한 사부님과 법을 완전히 믿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바르지 못한 그 마음이 일어나 비로소 그 바르지 못한 생각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양자 사이에는 선명한 인과관계가 있다.

수련자가 일단 욕망의 심연 속에 빠지면 심령이 부식되고 양지가 타락하여 욕망의 노예가 되어 수련할 수 없다. 이른바 사람의 흉금은 욕구가 많으면 좁아지고 욕구가 적으면 넓어진다. 사람의 걱정거리는 욕구가 많으면 우울해지고 욕구가 적으면 즐겁다. 마음이 홀가분하면 만사를 수습할 수 없고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만사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때문에 수련하는 사람은 마음을 닦아야 하고 수시로 마음을 거두고 단속해야 마음이 조용해지며, 욕구가 적어야 6근이 청정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으며 심령은 비로소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 행동은 마음에서 일어나

마음이 일어나야 비로소 생각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이면 상응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염두도 바르고 그의 행위도 바르다. 반대로 예를 들어 대법이 인간세상에서 모함을 당할 때 일부 대법제자는 중생을 구도하려는 진실한 마음으로 생명을 바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념으로 가득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텔레비전에 진상을 삽입 방영하여 중생을 구도하려는 행동을 했다.

비록 아주 큰 희생을 했지만 천상과 인간세상에 한 곡 한 곡 비장한 영웅 찬양가를 적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보로 천안문 광장에 온 헝겊신발이 9켤레나 닳은 노년 대법제자의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鬼神)을 흐느끼게 한 장거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려는 그 진솔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고압 하에 사악에게 투항한 유다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법을 비방하고 악한 자를 도와 악을 행하여 전에 함께 수련했던 동수를 미친듯이 박해했다. 천인공노할 그 악행은 역시 그들의 이미 마(魔)로 변한 마음과 자신을 위한 사념으로 초래된 것이다.

인류사회란 이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어떠한 불량한 행위 모두 그 오염된 마음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도박하는 자는 더이상 도박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지만 그는 옥수수 알로 이런 활동에 참여한다. 일부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가 단정하다고 하지만 거리에서 섹시한 사람을 보면 몇 번 더 보아야 한다. 이런 것은 큰 일은 아니고 범죄가 아니지만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도박을 좋아하는 마음과 색심이 있음을 폭로하고 또한 꿈틀대고 있음을 폭로한다.

예수는 전에 말하기를, 한 빈곤한 노 부녀가 신전에 동전 하나를 보시한 것이 부자가 백 개의 금전을 보시한 것보다 낫다고 했다. 왜냐하면 마음 씀씀이가 다르고 마음의 순정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티없이 순정한 마음으로 온 마음을 정법수련에 투입했다. 때문에 매 하나의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를 심사하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되어 바르지 못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 경지는 마음에서 만들어져

매 한 명의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 이외에 구세력 또한 세밀한 배치를 했다. 구세력은 장애와 불리한 환경을 설치하여 대법제자에게 훼멸성적인 검증의 목적에 도달한다. 대법제자는 정념정행이 있어야만 구세력이 배치한 장애와 환경을 타파하고 비로소 정법수련의 길을 잘 갈 수 있다.

수련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심태가 있다면 자신의 공간 마당에는 어떠한 물질이 나타나 상응한 수련환경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남이 당신의 단점을 지적할 때 만약 당신에게 순정한 마음이 있다면 감격스러워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만약 당신에게 허영심이 있으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이 일어나 불쾌하다. 만약 당신에게 쟁투심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원망과 노여움이 일어나 자신을 위해 실증하고 다투고 변호한다. 비교적 선명한 것은 본인의 심태가 주위 환경을 제약한다.

당신이 진상하러 감히 걸어 나오지 못할 때 당신에게 들리는 말은 누가 납치되고 누가 또 신고되었다는 것으로,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한다. 두려운 마음은 당신으로 하여금 주위 사람의 눈, 등불 모두가 당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갖은 방법을 다해 자신을 어두움 속에 감추게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 공간 속에 처하게 한다. 당신이 가족의 교란을 두려워하면 당신을 감시하게 하여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대법의 일을 하지 못할 때는 당신은 결과적으로 “가정구치소”에 장기간 처하게 된다. 당신이 가족의 요구를 계속 만족시켜 주고 자식 손자, 가정의 사소한 일에 지치고 매일 기진맥진하게 한 후 법공부와 연공도 가족 몰래 가만히 할 때 당신은 끝없는 가사일로 인해 수련을 부업으로 여기는 직업 가정부로 된다. 경지는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 사악을 불러오면 사악은 당신을 위해 상응한 환경을 만들어 당신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유혹하고 결국 당신을 법으로부터 이탈하게 한다. 만약 당신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가기 원한다면 당신의 수련의 길은 갈수록 더 좁아지고 당신의 수련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진다.

수련을 통해 환경을 창조해야 하고 또한 환경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깊은 물 속, 뜨거운 불 속, 높은 담장 속에 있어도, 힘든 일을 겪은 뒤의 햇빛 찬란한 큰 길이 있어도, 모두 당신의 심성을 제고시키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마침 옛날 사람들의 말처럼, 세속의 고난은 나의 마음을 연마시키는 환경이고, 인정의 따뜻함과 냉혹함은 나의 인내성을 연마시키고, 세상사의 뒤바뀜은 나의 수행의 자본이다.

천 번 닦고 백 번 연마하여 진심(眞心)이 나오게 된다. 사존께서는 온갖 간난신고를 다하여 고달프게 제도하시면서 우리의 이 마음을 요구하고 계신다. 10년 간 피비린내나는 단련을 거쳐 오늘날 대법제자의 마음은 이미 세속을 멀리 벗어났다. 온 하늘이 함께 경축할 때 우리가 사존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욕구 없고 집착 없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진심(眞心)이다.

발표시간 : 2008년 3월 12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8/3/12/515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