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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며 자신을 수련하다

법을 실증하며 자신을 수련하다

임중

【정견망 2008년 2월 12일】전반적으로 협조하는 과정에서 나와 동수 사이에는 각종각양의 모순과 마찰이 생긴 적이 있으며 동수 간에 적지 않은 간격이 나타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부단히 법으로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대조해 자신을 순정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하나의 간격을 돌파함으로써 최대한 대법제자들의 정체를 형성하도록 했다.

1, 최근 한 가지 일이 발생했는데 어느 대법제자가 악경에게 불법 체포되어 간수소에 갇혔다. 우리 지역 협조인은 나에게 그곳 민중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글을 쓰라고 해 나는 즉시 돌아가서 썼다. 나는 자신의 신체 상태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한편의 글을 쓰면서 아주 만족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밥조차 거른 채 밤 8시 경에 걸어서 준비한 자료를 협조인에게 보냈다. 협조인은 글자가 너무 작다며 내일 다시 보자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내일 협조인에게 이 문장을 고치려고 준비했다.

다음날 오전, 갑자기 또 다른 동수가 일이 있어 찾아왔을 때 나는 사람들이 편지봉투에 이미 잘 인쇄된 편지를 넣은 걸 보았다. 그 편지의 내용은 동수가 붙잡힌데 대해 쓴 것이었지만 내용은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문장은 표면상 그리 화려하지 않았고 주로 정견망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또한 이 동수의 말에 의하면 편지는 이미 어제 오후에 인쇄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협조인에게 보냈을 때는 이미 편지가 인쇄되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쓴 편지는 필요없게 된 것으로, 당시 내 머리는 매우 똑똑했다. 즉각 법에서 말씀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상기했다. 이 일은 누가 작용을 일으켜 그를 승화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이 과정 중에 누구의 심성이 제고를 얻는가를 보라고 한 것이다.

나는 일은 누가 해도 되는데 동수가 먼저 했고 역시 진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어떤 반감도 없었으며 어쨌든 평화롭게 협조인에게 가서 나는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교류할 때 내가 그 일에 대해 말했더니 협조인은 내가 이미 그 일을 알았다는 걸 비로소 알고는, 내가 그 모순에서 수련해 올라간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2, 한번은 며칠 동안 많은 정력을 쏟아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그 때 나는 컴퓨터 타자에 익숙하지 않아 손으로 썼다.) 당시 인터넷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곳의 협조인과 교류하면서 그녀는 내가 쓴 진상 글을 긍정하면서 우리 지역에 크게 뿌리기로 동의 했다. 마침 또 다른 동수도 진상 글을 썼는데 협조인은 내가 쓴 글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

하지만 당시 자료를 만드는 동수는 일이 많아서 그 원고를 인쇄하지 못했다. 며칠 후 나는 인근 시에 사는 어느 동수에게 가서 일을 하다 그 일을 이야기 했더니 이 동수는 자기가 원고 찍는 일을 돕겠다면서 특별히 차를 몰고 가지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협조인을 찾았더니 그녀는 원고를 찾을 수 없다고 해서 도울려고 왔던 동수는 허탕을 쳤다. 나는 원고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신변에 발생한 일에는 우연한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협조인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선의적으로 생각했다. 아마 협조인이 잃어버린 것은 그녀도 수련중의 사람이므로 일을 잘못할 수 있는 것이다. 동수로서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관용해야지 나무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나는 수련인으로서 응당 문제를 만났을 때 자신의 안으로 찾아보아야 했다. 그 글을 왜 잃어버렸는가? 내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쓴 게 아닌가? 혹은 글의 관점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나 중생에 대해 나쁜 작용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그래서 반성하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문장을 쓸 때 나에게 법을 실증한다는 매우 강한 자아와 과시심리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일은 결코 나와 협조인 간의 협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대로 이 과정에서 내가 법으로 대조해 수련하지 않고 속인의 사유를 움직였다면 아마 반드시 강렬한 원망이 생겼을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이의 배합에 영향을 주고 대법의 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3, 또 한 번은 우리 지역 대법제자 내부에 많은 모순이 나타나 우리 시의 전체적인 협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침 내가 있는 곳의 대법제자가 노교소에서 불법으로 혹형을 받은 소식이 동시에 전해져 왔다.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내가 써야 했는데 사정이 매우 급했다.

당시 내 수련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여전히 얼른 써내어야 했고 또한 우편함에 넣어야 했다. 그 일을 막 마치고 나자 나는 동수가 협조인 집에서 걸어 온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협조인 집에 가서 총체적으로 내부에서 어떻게 간격을 돌파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담론했다. 아마 에너지 장이 커서 그런지, 게다가 정체적으로 대법의 일에 참여하면서 신의 일면이 깨어난 원인 때문인지 나의 상태가 뚜렷이 호전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사유 역시 똑똑해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방금 썼던 글 중에서 일부 고쳐야 할 게 생각나는 것이었다. 나는 막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릴까봐 사람들과 상의해 일을 분담해 보낸 후 즉각 협조인의 컴퓨터로 원문을 고치기 시작했다.

원래 한 단락만 고치려고 했는데 글을 쓰는 한편 생각이 넓어져 컴퓨터에서 대략 반시간 동안 썼다. 그러나 내가 전심으로 이 문장을 쓰고 있을 때 다른 동수가 해야 하는 대법의 일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그때 명혜망에 발표된 문장이 진실한 정황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을 사이트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내가 컴퓨터를 점유했기 때문에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의 정황을 알았음에도 당시 법에 서서 고려하지 않았고 사람의 사유대로 걸었다.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다만 내가 매우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원고만 쓰면서 결코 다른 동수가 급한 일로 인터넷을 사용해야한다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만 했으면 내가 그녀에게 주었을 텐데. 그러나 일이 지난 후에도 협조인 앞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협조인 역시 내가 그녀의 집에서 컴퓨터를 두드려서는 안 되며,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녀 집에서는 그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더욱 불가사의한 일은 협조인의 남편 역시 나보고 사람의 마음이 많다면서 내가 갔으면 했지만 직접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 협조인의 집에 가는 일이 없으며 대법일이 아니면 1년에 한번도 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 세 사람은 평소 기본적으로 매일 함께 지내는데 이는 분명히 다른 동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속으로 맹세하기를 이 사람들은 법에 있지 않으니 다시는 이런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동수들과 교류했더니 사람들은 내가 모순 중에서도 진정하게 자기를 향해 찾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일에 빠져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평가 했는데 이것이 오성이 좋지 못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전면적으로 뛰쳐나와 이 사건의 자체를 보지 않고 내 자신이 무슨 마음이 나왔는지 보았고 자기를 찾아보았으며 결과적으로 자기가 넓은 관용이 결핍되어 있음과 뚜렷한 질투가 있음을 보았다. 또한 많은 원한, 게다가 강렬한 자존심과 체면, 명예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요소 등등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나중에 발정념을 할 때 이런 나쁜 배후의 요소를 제거했고 재빨리 협조인과의 모순을 제거했다. 그런 뒤 그녀의 남편은 나를 보고 매우 열정적으로 맞이했는데 마치 과거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발표시간:2008년 2월 12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8/2/12/509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