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탓하는 것과 안으로 자신을 찾기
작자:동진(同塵)
[정견망]
나는 자비심이 부족해서 다른 수련생의 집착이나 서로간에 잘 협조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면 늘 정념과 자비로 대하지 못하고 남을 탓하곤 했는데 그 결과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을 뿐이다.
감옥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매번 대법경문을 얻게 되면 우리는 늘 밤새도록 종이에 베껴 써서 가급적 빨리 불법(不法)으로 감금된 다른 제자들에게 전했다. 나와 같은 구역에 감금되어 있던 대법제자 A는 글씨를 예쁘고 가지런하게 썼기 때문에 경문을 베끼는 일은 대부분 그에게 맡기곤 했다. 한번은 A에게 “세간을 향해 파룬을 돌리노라”라는 경문을 베끼게 했다. 다 베낀 후 내가 한번 검토해보니 모두 7,8군데가 틀렸다. 나는 당시 마음속으로 기분이 나빠하며 A를 싸늘하게 대하면서 “경문을 7,8곳이나 틀리게 베꼈다.”고 말했다.
며칠 후 나는 또 A에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를 베끼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0곳에서 틀린 글자가 나왔다. 나는 이것을 본 후 그를 탓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짧은 경문에서 10곳이나 틀리게 베끼는가? 지난번에도 이 일을 말했는데 전혀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베낀 후에 검토도 하지 않다니. 이런 것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보라고 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2번이나 검토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서 2번이나 검토했으면서도 이렇게 많이 틀렸다고 그에게 큰 모자를 씌우고는 “법을 베끼는 것이 엄숙하지 않고 마음이 딴 데 가 있다.”고 비난했다. A는 나의 비난을 듣고 마치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의 나의 질책은 A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었다. 얼마 후 그가 저녁 법공부를 할 때 옥정과장(獄偵科長)이 경문을 전부 수거해갔으며 손실이 아주 컸다.
그 후 다른 한 수련생이 “전법륜”을 필요로 했다. 나는 다른 구역에 불법감금 중인 대법제자 B에게 베끼게 했다. B는 장장 1달이 넘게 걸려서 다 베낀 후 나에게 주었다. 내가 잘 협력하지 못해 다른 속인(감옥에 수감된 죄수)을 시켜 전달하게 했는데 전달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B가 한 달이 넘도록 고생스레 베껴 쓴 “전법륜”이 악경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B를 찾아가서 “내가 잘 협력하지 못해 “전법륜”에 손실을 끼쳤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B는 책망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도리어 자신이 안으로 찾으면서 말했다. “이것은 제 문제입니다. 매번 대법자료를 전달할 때면 늘 발정념을 하면서 다른 제자에게 대법자료가 무사히 도달할 때까지 유지했는데 이번에는 발정념을 느슨히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한 부 베끼면 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진정으로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그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찾았던 것이다. 이와 비교해보면 A는 단지 경문을 베끼다 몇 글자를 틀렸을 뿐인데도 나의 질책을 받아야 했으니 수련에서 나와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련인은 결코 지적해서 좋아진 것이 아니고 나 이 사부가 누구를 비평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당신들이 서로 비평하고 지적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닦아서 수련이 잘된 것이다.”
A의 당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가 난(難)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부족함을 원용하지 못했고 안으로 찾지 못했으며 그를 대신해 베끼는 임무를 분담하지도 못했다. 단지 자신은 전달을 책임졌고 베끼는 것은 그의 일이라고 여겼으며 또 잘못 베낀 것을 가지고 그를 지적했다. 사실상 그의 공간장에 흑색물질을 던져 난(難) 속에 빠진 A를 더욱 곤란하게 했으며 나중에 그가 경문을 몰수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했으니 우리 정체에 큰 손실을 입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정진요지-청성”)
나는 자신을 찾지 않고 줄곧 A만 지적했으며 그에 대해 자비심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정체에 손실을 가져왔다. “자신을 찾지 않고 줄곧 남을 탓”하는 이 마음은 정말이지 아주 위험한 것이다.
사실 생활이나 일 속에서 다른 수련생들과 협력할 때 도처에서 수련의 요소가 체현되어 나오는데 일마다 모두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 늘 남을 탓하는 것은 사실 안으로 찾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마치 대법제자 B처럼 시시각각 늘 안으로 찾으며 남을 탓하지 않는다면 협력을 잘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일에 부딪히든 첫 일념이 우선 자신을 생각하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이런 일 저런 일을 예외로 하면서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그것도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늘 밖에 두고 여전히 자신이 이치에 맞다고 여겼다. 사실 어떤 이치에 맞은 것인가? 바로 사람의 이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정념은 법에서 오는 것으로, 수련하는 것은 당신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좋고, 당신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고명한가 하는 것이 아니며, 수련하는 것은 당신이 문제를 대할 때 정념으로 했는가 하는 것이다.”(더 정진하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남을 탓할 때 근본적으로 정념이 아니었으며 협력을 잘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신(新)우주와 구(舊)우주의 근본적인 구별은 신우주의 생명은 무사(無私)하고 구우주의 생명은 근본적으로 위사(爲私)하다는 것이다. 구세력은 남을 개변시키려고만 하면서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다른 수련생을 탓할 때 나의 사유방식은 구세력과 너무나 흡사했다. 당신이 남을 탓하면 구세력은 그것의 사유에 부합한다고 여겨 당신을 조종할 수 있고 수련생 중에서 간격을 조성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정법과 사람을 구하는 큰일을 교란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법보(法寶)인 “안으로 찾음”을 기억한다면 수련생 사이에 협력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묵묵히 다른 수련생의 부족을 원용한다면 사악도 틈을 탈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할 때, 다른 수련생의 부족함을 볼 때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한다. 어쩌면 다른 수련생의 부족은 바로 당신 자신의 부족일지 모르며 혹은 자신의 마음이 순정(純淨)하지 못해 남의 부족을 보게 된 것이다. 이때 오직 우리가 “안으로 찾는” 법보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일체 원망과 지적, 억울함 및 불평하는 등의 마성(魔性)을 철저히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수련생의 특출한 점을 볼 수 있고 서로간에 잘 협력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보다 잘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얕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발표시간:2011년 10월 5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0/5/77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