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배후의 관념
작자 : 대륙대법제자 청리(淸理)
[정견망] 많을 때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함으로써 자신의 집착을 인식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청리하고 억제하거나 모두 이 집착의 뿌리를 흔들 방법이 없어 매우 안타까웠다. 최근에, 나는 매우 많은 집착심의 배후에는 모두 뿌리 깊은 관념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 관념이 형성된 후, 우리는 뼛속 깊은 곳에서도 이 관념이 진리라고 인식하며, 이 관념이 집착심으로 표현되었을 때 단지 표면에서 이 집착심만을 제거할 뿐이다. 마치 부추를 베는 것처럼 아무리 잘라도 영원히 뿌리를 제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자신의 몇몇 집착심의 표현 및 배후의 관념을 분석해보았으니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1. 색욕심을 제거하다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부님께서는 색욕심은 매 수련인이 반드시 넘어야 할 관(關)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내가 색욕심을 닦아버리는 길은 너무나 길고 괴로웠으며, 심지어 남편이 며칠 나를 냉담하게 대하면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몹시 미워하면서 심리적으로 일종의 친밀함을 갈망했다. 수련은 마땅히 욕망을 끊어야 함을 알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에 대해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끊지 못하고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분석을 통해 나는 자신이 집착한 것이 남녀간의 그런 욕망이 아니라 일종 친밀한 관계였음을 발견했다. 신체 접촉에서 표현되어 나오면 나는 마음속으로 친밀감을 느끼면서 일종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관념의 형성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공산당이 선양하는 투쟁하는 사회환경에서 우리 부모님은 늘 다투고 싸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종 안전한 것을 갈망해왔고 또 내가 다른 사람과 매우 친밀해야만 충돌이 생기지 않고, 다투거나 싸우지 않을 수 있으며 그래야만 안전한 느낌이 있고 마음이 비로소 편해진다는 관념을 형성했다.
이런 관념에 이끌려 동료 사이에서도 나는 늘 그들과 할 말이 없어도 일부러 화제를 찾아서 말하고 줄곧 끊임없이 말하면서 웃곤 했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친밀한 것이고 친밀해야 내가 안전하다고 인식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오직 신체를 접촉해야만 우리가 친밀하다는 것이 설명되고 또 이래야만 마음속으로 안전하다고 느꼈다. 이런 잘못된 관념을 인식한 후 표면상의 색욕지심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순식간에 대부분 제거되었다.
2. “사”를 위한 마음을 청리하다
사부님의 법에서 우리는 많고 많은 집착심이 모두 이 “사(私)”에서 온 것이고 동시에 이 “사(私)”는 또 낡은 우주의 근본속성이며 “사(私)”에 속하는 생명은 신(新)우주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며, 어떤 일이든 내 머리를 지나가기만 하면 아주 빨리 나에 대한 이 일의 득실, 내게 어떤 좋은 점이 있으며 내가 어떻게 해야만 이 좋은 점을 극대화할지 분석했다. 설령 이 일이 많은 사람들을 해칠지라도 오직 내게 좋은 점만 있다면 나는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인식했다.
나는 “사(私)”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사(私)”는 마치 내 생명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그것을 다치면 마치 내 생명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깊이 파보니 원래 나의 사상 깊은 곳에 이런 일념이 있었다. “오직 이기적인 사람만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이런 관념은 잘못된 것인데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당신은 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는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며, 꿈을 꾸어도 그의 이익이 손실될까 봐 두려워한다. 개인 이익에서 그는 쇠뿔 끝으로 파고든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사는 것이 힘든가 힘들지 않은가. 그는 일생 동안 바로 이것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런 사람은 물러서지 않는데, 그가 산다는 것은 가장 힘든 것으로서, 당신은 그를 따라 배우지 말라.”
때문에 오직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사람만이 흉금이 넓고, 소탈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나니 나는 “사(私)”라는 글자가 나의 공간마당에서 뿌리가 이미 없어진 것을 느꼈고 남은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청리할 수 있었다.
3. “참음(忍)”에 관하여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 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참음”에서도 나는 매우 부족하게 했는데, 간혹 단단히 벼르면서 불평했으며 “참음”이란 글자를 일찍이 먼 곳으로 집어 던졌다. 진지하게 캐보니 원래 자신의 사상 중에 이런 관념이 있었다. “착한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착한 말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게 된다. 내가 만약 처음에 참으면 다른 사람은 일 촌(寸)을 얻으면 또 다시 일 척(尺)을 얻으려고 하고 끊임없이 나를 업신여길 텐데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이런 관념은 사부님께서 “장춘보도원 법회설법”중에서 하신 말씀과 아주 유사하다.
“내가 이 편을 쓴 목적은 어떤 수련생들이 이런 문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法輪功(파룬궁)을 닦으니 그는 좋다고 말하면서 사회인의 도덕이 되돌아 올라오게 할 수 있지만 만약 모두 그렇게 선(善)하다면 외국인이 우리를 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쓴 것이다.”
“그 전쟁은 사람이 일으키고 싶다고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닌 즉 일체는 모두 하늘이 움직이게 하며 천상이 움직이게 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 속에서 어떻게 계산하고 어떻게 고려하고 어떻게 하든지 어떤 때에는 성사하지 못한다. 어떤 때에는 성사할 수 있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여긴다.”
때문에 나의 “참음”에 관한 관념도 잘못된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내게 업력이 있거나 혹은 내가 생전에 다른 사람을 나쁘게 대해 그가 빚을 받으러 온 것으로, 빚을 다 갚으면 괴롭히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 특성이 일체를 제약하고 있기에 어떠한 일도 모두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후천적으로 산생된 관념이 집착을 형성하며 이 관념이 바로 집착의 뿌리와 같으므로 오직 뿌리를 제거해야만 집착이 비로소 동요되거나 해체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발표시간: 2011년 9월 16일정견문장: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9/16/773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