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산(青城山) 도인의 경고
작자:신민(新民)
【정견망 2010년 5월 1일】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 1130-1200)는 《문공역설(文公易說)》 21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육경(六經) 중에는 이런 일로 말미암아 이런 이치를 말하는 것이지만 오직 역경(易經)만은 이런 일이 없음에도 먼저 이런 이치가 있음을 말하는데 성인의 예언으로 사람들에게 알린다.”라고 했다.
주희가 언급한 “이런 일이 없음에도 먼저 이런 이치가 있음”은 수십 년간 공산사당의 유물론과 무신론 교육을 받은 중국 대륙 사람들 중에는 오늘날 이미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실 이치가 먼저 존재한다는 도리는 성인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다만 이 “이치(理)”는 성인 또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미리 알고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에 나는 청성산 노 도인의 경고가 떠올랐다.
내게 집을 판 왕위(王位 가명)는 사람은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으로 사천성 성도(成都) 사람이다. 2001년 초 그는 내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80년대 중반에 그의 모친이 만성병을 앓았는데 오랫동안 고치지 못했다. 그는 형과 상의해 모친을 청성산으로 보내 어느 노 도인에게 치료를 부탁드렸다. 1988년의 어느 날 왕위는 모친에게 양식을 보내러 갔다가 도인을 만났다. 왕위가 내려가기를 기다린 후 노도인이 왕위의 모친에게 물었다.
“오늘 양식을 보내온 사람이 누굽니까?”
“제 아들입니다.”
“아드님을 뵈니 성질이 정직하고 고집이 있으며 또 젊으니(왕위는 당시 20여세였다) 뜻대로 일을 하기 쉽습니다. 내년에 인간 세상에 큰 일이 있을 테니 그를 잘 돌보시오. 그가 밖에서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말입니다.”
도인의 말을 듣고 모친은 매우 조급하여 즉시 왕위의 형에게 이 말을 전하며 내년에 밖에 나가서 일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
다음 해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다. 얼마나 많은 청년과 시민들이 애국 열정을 품고 반정부, 반부패 등을 외치다 억울하게 중공의 총과 탱크 아래 쓰러졌는지 모른다. 왕위의 말에 따르면 성도도 마찬가지였으며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잔혹한 진압을 당했다고 한다.
6월 4일 아침 그가 동대가(東大街)를 따라 길을 걷다가 성도 인민상점 건너편을 지날 때의 일이다. 인민상점 아래에서 진한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더니 잠시 후 불빛이 하늘을 찔렀다.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소방관이 오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상하게 느꼈다. 어째서 소방서가 와서 불을 끄지 않는가? 나중에 비로소 알았는데 인민상점에서는 불이 일어나기 이틀 전 이미 귀중한 상품은 다 치워버렸고 정부에서 보낸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런 후 이를 학생과 시민들에게 전가시켜 탄압의 빌미로 삼았던 것이다.
이 일만이 아니다. 필자의 다른 친구가 말하길 1999년 7월 22일 강택민을 두목으로 하는 중공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의 일이다. 사천의 어느 고위 관원은 파룬궁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진선인”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며 파룬궁은 확실히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하는 큰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국가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는데 어쩌다 단번에 이렇게 나쁜 것으로 변해버렸는가.
그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어 청성산 도인에게 연유를 물었다. 청성산 도인을 만난 후 파룬궁의 <전법륜>을 주며 감별해달라고 했다. 도인은 책을 대강 훑어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이것은 진짜 경(經)입니다. 파룬궁은 얻기 어려운 고덕(高德)대법(大法)입니다.”라고 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은 파룬궁 박해에 관여하지 마시오. 파룬궁을 박해하면 만겁 지옥에 떨어집니다!”
나중에 이 사람은 중공의 지령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듣는데 의하면 그의 집 재산이 수억인데 어떤 사람이 중공규율위에 신고하여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은퇴할 나이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금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확실히 미리 다가올 일을 알고 정사(正邪)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졌다. 프랑스의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세기>에서 공산주의의 죄악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사악한 낫이 두 차례 혁명의 원인이다” 사악의 기치는 낫과 도끼가 표지로 되었다.
“두 차례 혁명”이란 1차 대전 중에 발발한 러시아 10월 혁명과 2차 대전 직 후 발발한 중국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혁명을 말한다.
또 조선의 남사고는 <격암유록(格庵遺錄)>에서 “법륜성왕”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는 상세한 일을 묘사해 놓았다.
당나라 때 원천강과 이순풍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추배도(推背圖)>는 제 41상에서 “99년에 큰 잘못이 생기고 왕을 칭함은 진주(秦州 역주: 중국을 지칭)뿐이다(九十九年成大錯,稱王只合在秦州)” 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1999년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것은 큰 잘못이며 마침내 이 때문에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어갔다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500년 전에 자신의 법이 말법(末法)시기에 이르면 사람을 구하지 못하며 그때는 “전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와 대법(大法)을 전하며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명확히 말했다. “말법시기가 되면 불경의 법리만 지켜서는 안 되며 법륜성왕이 전하신 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것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증명되었다.
오늘날은 신구의 교체시기에 처해있으므로 마땅히 신과 부처, 현자들의 경고를 생각해보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발표시간 : 2010년 5월 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1/658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