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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호 석난도(化江胡,石難逃)’

작자/대륙대법제자 상자

【정견망】

정월 초닷새는 처남 생일이라 그의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사 후 장인과 유백온(劉伯溫)의 《/span>구겁비문(救劫碑文)>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장인이 젊을 때 광동에서 어느 석공을 만난 일을 언급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20대였는데 한 노 석장(石匠)이 일하는 것을 보다가 호기심에서 나아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그에게 석공의 일이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막상 해보면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약간의 비결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 담배 한대를 노인에게 권했고 두 사람이 잠시 후 친하게 되어 못하는 말이 없게 되었다.

석장에 따르면 하마터면 반(反)혁명으로 몰려 얻어맞아 감옥에 갈 뻔했다고 했다. 또 “모택동 역시 오래 살 수 없고 어쨌든 죽어야 하며 남는 것은 겨우 이름뿐이다!”라고 했다. 노인은 자신이 전에 어느 고서에서 공산정권의 운명을 말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모택동 이후는 이 몇 글자라고 하면서 그는 손으로 몇 자를 써서 보여 주었다. 바로 ‘화강호 석난도(化江胡,石難逃)’였다.

그가 “보게나. 이것이 다 옳았지 않은가?” 그는 손으로 쓰면서 보여주었다.

“化”는 화국봉(華國鋒의 “華”는 “化”로 읽는다. 역주: 화국봉은 1976-1982년까지 국가주석을 지낸 모택동의 후계자다.)을 가리킨다.

“江”은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을 가리킨다.

“湖”는 호금도 (胡錦濤 후진타오)를 가리킨다.

“石”는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을 가리킨다(‘石’ 일부 방언에서 ‘習’와 발음이 같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당, 정, 군 삼권을 다 장악한 사람은 모, 화, 강, 호, 습(毛,華,江,胡,習) 등 5인이다. 중공은 멸망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화국봉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모택동의 집정 노선을 떠나 개혁을 실행했다. 그래서 化는 화국봉(華國鋒)을 가리킨다. 화국봉의 뒤는 등소평, 호요방, 조자양 등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전권(專權)이 없었고 엄격히 말하면 화국봉의 한 시대다. 이는 개혁의 시대이므로 ‘化’자로 묘사한 것이다.

1989 년 ‘6.4 천안문 사태’ 이후 중공은 또 장쩌민의 전권시대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江”은 장쩌민을 가리킨다. ‘6.4’이후 사람들은 더는 공산당을 믿지 않았고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되자 공산주의 운동은 이미 말기에 도달했다. 이 시대에 장쩌민은 탐오와 부패로 나라를 다스렸고 부패와 음란에 앞장서서 ‘부정부패의 총교관’에 봉해졌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수중의 권력으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을 박해하여 “거짓, 사악, 폭력”을 창궐시켜 전 사회의 도덕이 날로 떨어졌다.

2004년 장쩌민이 압력에 의해 무대에서 내려가고 후진타오가 명의상 전권을 장악했다. 그러므로 ‘湖’는 후진타오(胡錦濤)를 가리킨 것이다. 이 시대에 胡는 실권이 없었고 중공 정권은 장쩌민 집단에 의해 조종되어 마치 강호의 마피아 세계 같았다. 胡는 물水이 없으니 마른 호수[乾湖]다. 이는 후진타오가 실권이 없음을 상징한다. 모두 장쩌민 집단의 모리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 중공은 더욱 타락하여 이미 멸망의 길에 올랐다.

2012년 봄, 충칭시 부시장 왕리쥔이 목숨을 걸고 성도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갔다. 이때부터 중공 정계는 보시라이를 무너뜨리는 서막이 펼쳐졌고 시진핑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 시대에 장쩌민 집단의 나쁜 무리는 아직도 나쁜 짓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중공 정권에 오로지 모(毛), 강(江) 두 글자만 원래 글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을 빌려 사용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9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