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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감상〗 녹채(鹿柴)

글/ 문사격(文思格)

【정견망】

녹채(鹿柴)

왕유(王維)

텅빈 산에 사람은 뵈지 않고
어디선가 말소리만 들려오는데
저녁 놀빛 깊은 산속에 들어와
파란 이끼 위를 다시 비추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青苔上

【작가소개】

왕유(王維 700~761)는 자가 마힐(摩詰)이며 성당(盛唐)시기 위대한 시인・화가이자 음악가다. 그의 시는 표현이 정미하고 생생하며 참신하면서도 세속을 벗어나 독보적인 일가를 이뤘다. 그는 이흔(李欣), 고적(高適), 잠참(岑參) 등과 함께 ‘왕리고잠(王李高岑)’이라 불리는 변새시(邊塞詩)의 대표인물이다. 또한 맹호연과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리는 전원시의 대표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선시(禪詩)’에 있어서는 고금에 독보적이다. 소동파는 그를 가리켜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畫中有詩)”고 평했다.

【단어풀이】

녹채(鹿柴):원래 뜻은 사슴을 가둬놓고 키우는 울타리지만 여기서는 왕유 별장 인근의 지명.

반영(返景):영(景)은 영(影)과 같다. 해질녘 반사되어 되비치는 태양빛을 말한다.

【작품감상】

빈 산에 우연히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빈산의 그윽하고 깊은 적막이 더 두드러진다. 사람의 말소리가 잠시 적막을 깨뜨리며 울려오지만 이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빈산은 또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적막에 잠긴다. 여기서 사람의 말소리는 단지 ‘깊은 적막’을 부각시키는 작용을 한다.

한편 해질녘의 석양이 깊은 숲속에 비치니 빈산의 깊은 어둠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한 가닥 비스듬히 비친 햇빛이 잠시 어둠을 없애지만 해가 지고 나면 빈산은 다시 숲속 깊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도 어둠을 비춘 석양빛이 오히려 어둠을 더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 시는 겨우 20자에 불과하지만 소리(聲)가 있고 색(色)이 있고 경치(景)와 감정(情)이 있다.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인 동시에 음악가인 시인은 색채와 소리에 대해 남달리 특별한 감수성이 있다. 그는 감정과 경치의 관계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고 여기에 자연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의 이치에 대해 깊은 깨달음이 더해진다.

빈산에 들려오는 사람의 말소리와 숲속에 비치는 석양빛이란 아주 평범한 현상 속에서 심오한 경계(境界)와 자연의 이취를 드러낸다. 아울러 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런 언어로 겉으로 보면 대충 마음에 두지 않은 듯한 말투 속에 이런 미묘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시는 역사상 기이하고 절륜한 시편(詩篇)이 되었다.

후인들은 흔히 이 시를 가리켜 도연명(陶淵明)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들 한다. 두 사람 모두 경건한 수련인이자 두 시 모두 극히 뛰어난 극품(極品)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1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