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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로 전생해 은혜를 갚다

【정견뉴스】

앞에 있는 전생한 흰소는 뱃속에 8개월 된 송아지를 임신하고 있다. 바로 뒤에 있는 흰 소는 직전에 출생한 9개월 된 송아지인데 몸집이 크다.

1950년대 초 중국 동북 산촌

나는 동북 산촌(山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순박하고 선량하며 성실하셨고 농사를 지으셨다. 이 산촌 사람들은 모두 옹색하게 살았고 비록 우리 집이 1년 내내 돈을 얼마 벌진 못하지만 그나마 가장 나은 편에 속했다.

1950년대 공산화 이후 도시 사람들이 모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농촌에 가서 땅을 파고 곡식을 심어야 했다. 우리 촌에 한 남자가 왔는데 사람들은 그를 노백(老白)이라 불렀다. 사실 그의 이름은 박일영(薄一榮)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흔히 습관적으로 노백이라 불렀다. 노백은 이 구석에 와서 단출한 집을 짓고 황무지를 개척하고 농사를 시작했다.

몇 년 후

노백이 살던 집이 무너져 더 이상 거주할 수 없었다. 그는 곧 마을 안에 있던 수양딸의 집에 가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돈도 없고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수양딸 집에서도 쫓겨났다. 이때 노백은 이미 73세가 되어 힘든 일은 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 부모님이 착한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점심 때가 되어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집안으로 불러 점심을 먹고 가게 하셨고, 저녁에 길을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집에 불러다 하룻밤 묵은 후 다음날 떠나게 하셨다. 때문에 노백은 우리 부모님과 상의해 우리 집에서 겨울을 지낸 후 이후의 일은 내년에 다시 방법을 생각하면 어떻겠냐고 요청했다.

부모님은 노백이 착실하고 불쌍한 것을 보고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비록 노백과 우리 집은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다. 일곱 식구 모두 부모님이 돌봐야 했다. 그러나 좋은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겨울 노백이 병에 걸려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 기간에도 부모님은 정성껏 노백의 일상생활을 돌봐주셨다.

노백은 매우 감격해서 말했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군요. 만약 이번에 병이 나으면 내년에 당신들께 보답하겠습니다. 만약 죽게 된다면 내세에 소나 말이 되어서라도 당신들께 보답하겠습니다.”

노백은 부친에게 자기 동생에게 쓴 편지를 전달했다.

부친은 그에게 이렇게 권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세요. 반드시 일어나실 겁니다. 올해가 지나면 73세의 이 어려움을 피해가실 겁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설을 쇠기 며칠 전 밤 노백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73세의 겨울을 넘기지 못한 것이다. 노백이 사망한 후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에 그의 동생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는 본래 형을 데리러 왔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그가 본 것은 산속의 분묘였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노백이 탁몽(托夢)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는 우리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형님은 너무 일찍 떠났습니다. 당신 가족들이 형님을 돌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형님은 내세에 ‘흰 소’로 탁생해 당신들께 보답하려 합니다. 당신 집에 탁생하면 아주 좋고 또 일을 할 필요도 없으며 또 깨끗이 청소해주어야 합니다. 이 아이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나는 나보다 8살이 많았는데 당시 8,9세였다.

원래 소를 기르는 것은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보답을 한단 말인가? 가족들은 큰 의혹이 생겼다. 그러자 노백의 동생이 대답했다.

“거기엔 나름대로 방법이 있습니다. 형님이 하얀 소로 환생했을 때는 반드시 내게 알려주세요.”

그 당시 검은 소, 얼룩소, 누런 소는 있었지만 누구도 흰소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노백은 이미 떠났으니 이 사건을 사람들이 듣고 지나버렸으며 아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나중에 부모님이 나이가 점점 많아지자 노백의 동생과도 연락이 끊겼다.

2000년대

약 2000년 무렵 누나 집에서 소를 몇 마리 키웠다. 그중 한 마리가 정말 흰 송아지를 낳았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몸에 털이 마르기도 전에 불안한 걸음으로 언덕을 따라 산골짜기로 갔으며 7,8개 분묘를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누나가 내내 따라갔는데 아무도 송아지를 멈출 수 없었다. 흰 송아지는 직접 노백의 묘소 위로 가더니 그곳에 서서는 꼼짝도 않고 대략 3,4시간이나 서 있었다. 나중에 어미 소가 갔지만 송아지는 여전히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누나가 아무리 해도 송아지를 데려오지 못했다. 나중에 아들이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묘지에 가서 송아지를 데려올 수 있었다.

이 소는 출생한 후 지금(2014년)까지 누나 집에 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일을 시키지 않았다. 또 조카가 매일 소 우리를 깨끗이 청소해줬는데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일 것이다. 현재 이 소는 이미 어미가 되었고 모든 무리 중에서 가장 크고 튼튼해서 새끼도 잘 낳았다. 매년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았다.

몇 년 전 이 흰소가 누런 암송아지를 낳은 후 누나가 말했다.

“이 소가 흰 암송아지를 낳으면 그것을 종우(種牛)로 삼고 이 흰 어미 소를 팔 수 있을텐데.”

말하자면 좀 이상한데 그 이후 흰 소는 더 이상 암송아지를 낳지 않았다. 해마다 숫송아지만 낳았는데 큰 소든 작든 소든 누가 보아도 좋았다. 매년 봄이 되면 누나 집 부근에 거의 십리에 백리에 소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두 누나 집의 소가 좋은 것을 알고는 사러 왔다. 누나는 이렇게 매년 좋은 값에 소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

후기

2014년 11월 내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누나가 직접 겪은 “윤회전세한 흰 소” 이야기를 듣고 글로 써냈다. 윤회를 믿지 않는 세인들을 계발할 수 있길 희망한 것이다. 특히나 지금 무신론의 주입을 받아 윤회를 믿지 않고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이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2017년 가을 내가 누나 집에 갔을 때 마침 한 이웃이 놀러왔기에 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악에는 보응의 도리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웃은 듣고 나서 매우 마음에 들어 하며 공산당 관련 조직을 탈퇴하기로 선택했다.

최근 5년 사이 부모님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향년 91세였다. 사람들은 모두 두 분이 이렇게 장수하신 것은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한 덕분이라고들 한다.

(명혜망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