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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 사람이 도인을 만나 신통이 나온 이야기 

안문(顏雯)

【정견망】

운운중생(芸芸眾生)이 속세를 다니다보면 비록 평범하게 보이지만 불연(佛緣)이나 도연(道緣)이 있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이들은 백 번 천 번, 수많은 윤회 중에서 법을 전하고 도를 전하는 사람과 만날 기회를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에서는 역조역대(曆朝曆代)로 늘 산속에 은거하고 수련해서 도를 얻은 고인(高人)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골목이나 시장을 한가로이 거닐다 가끔 우연히 인연을 만나면 한 차례 신통(神通)을 발휘하도록 배치할 수 있다. 또는 사람들에게 선술(仙術)의 정묘함과 도법(道法)의 고심(高深)함을 직접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일 수 있고, 또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의 성품은 본래 신성(神性)과 통하기 때문에 신통을 닦고 신선술을 연마하는 것은 본래 시정의 일반 속인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본 편에서는 송나라 때 필기 《이견지》에 나오는 민간 일화를 소개한다.

수도인이 임의로 내린 처방을 먹은 환자가 날아오르다 

남송(南宋) 순희(淳熙) 연간에 파양(鄱陽)현에서 관리로 일하던 사람이 한 말이다. 그의 사돈 항국화(項國華)가 어릴 때 기이한 만남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팔구 세 때, 팔에 부스럼이 하나 생겼는데, 외과(外科)에 능한 십여 명의 의원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치료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의 부모님이 그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가 마침 우연히 한 수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도인은 키가 7척이고 얼굴이 넓고 입이 컸다. 항국화의 아버지는 식견이 넓어서 이 사람의 용모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세속의 사람이 아니라 여겨 그를 맞이하고 도인에게 허리를 굽혀 읍을 했다. 이때 도인이 걸음을 멈추더니 줄곧 병든 아이를 응시했다.

갑자기 그 도인이 무슨 생각이 난 듯 말했다.

“당신들은 왜 아이에게 사물탕(四物湯)을 먹이지 않는가?”

또 말을 하면서 항국화의 손을 잡고 가볍게 입김을 불면서 쓰다듬고 눌렀다. 항국화의 아버지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그 도인을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내어 손님으로 대접하려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곧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집에 도착한 항국화의 아버지는 도인이 말한 대로 아들에게 사물탕을 먹였다. 3년 후, 그의 부스럼은 이미 나았지만, 탕약은 끊지 않았다. 봄이 되자 집 밖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져 매우 무성하게 자랐고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항국화는 그 때 아직 어렸기에 기뻐하여 그 새를 잡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뭇가지가 너무 높아서 도저히 닿지 않았다.

바로 그가 올라가려는 마음을 일으켰을 때,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곧 깃털처럼 떠오르더니 나뭇가지 위에 내렸다. 그 때 이후로 그의 몸은 어디론가 갈 생각만 하면 금방이라도 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거리가 멀든 가깝든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다. 그는 때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학이 바로 그의 밑에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너무 높이 날아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또 다른 사람이 알면 부모에게 폐를 끼칠까 봐 감히 함부로 날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이 일을 알지 못했지만, 친척 중에는 간혹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그의 친척이 그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일부러 그를 놀렸다.

“네가 하늘에 다닐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던데, 오늘 밤 영국부(寧國府)의 꽃등이 정말 아름다운데, 한번 가서 보는 게 어떻겠니?”

항국화가 이를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뭐 어렵습니까?”

그리고는 곧바로 일어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마치 날개가 돋아난 것처럼 아주 빨리 멀리 날아갔다.

밤 삼경이 되자 그는 집으로 돌아와 길에서 본 일을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했고, 나중에 친척들이 사람을 보내 검증해보니 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몇 년 후, 누군가 항국화를 찾아갔는데, 그의 몸매가 훤칠하고 용모가 범상치 않아 이미 수도인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어린 도사를 만난 거지가 별천지에 들어가다

남송 소흥(紹興) 말년 절강성 은현(鄞縣)의 한 젊은이는 하루 종일 제멋대로 하고 구속받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는 평소에 술을 매우 좋아해서 술을 많이 마실 때마다 머리에 꽃을 가득 꽂고 미친 듯이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현지인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지로 대했으며 거지라는 뜻의 ‘연화자(連花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마을과 가까운 곳에 황폐한 낡은 집이 있었는데, 너무 심하게 망가져서 도깨비가 산다는 전설 때문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어느 날 연화자가 이곳을 지나갔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셔서 술기운을 빌어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린 도사가 바닥 한가운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경건한 마음이 들어, 앞으로 나아가 그 도사에게 읍을 하고 신선도사의 비승술(飛昇述)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도사가 그의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손으로 벽을 가리키자 그 벽이 마치 돌문처럼 열렸다. 연화자가 보니 안에는 더 이상 초라한 가옥이 아니라 웅장하고 장관의 대전이어서 매우 놀랐다. 눈을 들어보니, 기세가 범상치 않았고 속세에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연화자는 도사의 안내로 궁전에 들어갔는데, 이 궁전의 진열과 장식이 매우 정교하고 빼어난 것을 보니 경치가 마치 선경(仙境)처럼 느껴졌다. 정중앙 벽에는 금색 글씨로 쓴 ‘동천진인전(洞天眞人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고, 동남서북 네 방향에는 ‘동계신군(東界神君)’, ‘남동신군(南洞神君)’, ‘서천진인(西天眞人)’, ‘북극진인(北極眞人)’이라는 위패가 각각 세워져 있었다.

왕의 복장을 한 사람이 전(殿) 위에 앉았는데, 옆에 있는 시종들은 모두 금자색(金紫色) 관복을 입고 있었다. 한 무리의 선녀들이 대전 내에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에 맞춰 나풀나풀 춤을 추고, 악사가 연주하는 신의 곡조 신선 음악은 청아하고 미묘하여 마치 천상의 노래와 같았다.

연화자가 전으로 나아가 절을 하려고 했지만 도사가 막았다.

그가 말했다.

“진인을 참배하려면 먼저 아뢰어야 하니 당신은 내일 다시 오라.”

그들이 함께 전 밖으로 나와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 신전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낡은 집이었다. 그 후 도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벽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이튿날 두 사람은 다시 대전을 찾았다. 연화자가 막 전 위의 진인에게 절을 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멀리서 말을 타고 멀리서 달려와 진인에게 말을 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품 있는 한 선인(仙人)이 꽃 양산 아래서 깃발을 들고 줄지어 가는 시자들에게 둘러싸여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어린 도사가 말했다.

“자부(紫府)의 진관(真官)이 진인(真人)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연화자에게 푸른 오이 한 개를 주었는데, 보아하니 모두 썩은 것 같았다. 연화자는 거절하기 미안해서 억지로 먹었다. 뜻밖에도 이 오이의 맛은 심상치 않고 매우 맛있고 달콤했다. 그들은 5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 이후로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연화자는 60세에 이미 인간 세상의 익힌 음식을 먹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안색을 마치 갓난아기처럼 붉고 윤택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 늘 영험했다.

약재상이 도사를 만나 벽곡술을 전수받다

북송 때 경성인 변경(汴京 개봉)에 장공(蔣公)이란 가난한 선비가 있었는데 과거에 응시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모친의 집이 대대로 의술을 행하였으므로 그도 처방을 좀 알아서 시장에 약방을 차렸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일어나 옷을 입고 머리를 빗다가,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걸어오는 도사를 보았다.

그 도사는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며 태양과 눈을 마주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약방으로 가서 장공을 보더니 인사을 하거나 읍도 하지 않고, 자신의 옷만 정리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앉았다. 장공은 그 도사가 오만방자한 것을 보고 침울한 표정으로 화를 내며 그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사가 대답했다.

“당신이 묻지 않아도 내 당신을 찾아 왔소!”

장공은 속으로 경성에 평소 대담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설마 그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따지기도 귀찮아 돈을 좀 던져주고 보내려 했다. 뜻밖에도 도사가 웃으며 반문했다.

“나는 여태껏 남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당신이 도와 인연이 있는 것을 보고 특별히 가르침을 주러 온 것이오. 왜 굳이 나를 쫓아내려 하는가.”

그의 말을 들은 장공은 문득 활연히 깨닫고 즉시 예를 올리며 도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 후, 도사는 그에게 출가수행의 많은 일들을 이야기했는데, 그런 정교하고 미묘한 법리들을 그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 장공은 정말 속인이고 범태(凡胎) 육안(肉眼)으로 하마터면 선군(仙君)과의 이 기이한 인연을 놓칠 뻔했습니다. 오늘 운 좋게도 뵙게 되었으니 평생 스승님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자 합니다.”

도사가 좀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자네 아직 다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는가?”

그가 대답했다.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죽도 못 먹을 때가 있습니다. 만약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수 있다면 평생 한이 없겠습니다.”

마침 이 말을 하고 있는데 대추 찜 장수가 문 앞을 지나갔다. 도사는 그를 불러 세우고 장공이 앞서 던져준 그 돈으로 대추 일곱 개를 산 뒤 그에게 말했다.

“무릇 신선들은 벽곡(辟榖)이란 가장 낮은 층의 수행법일 뿐이라고 하지만 밥을 먹지 않으면 몸에 더러운 것이 쌓이지 않고 더러운 것이 생기지 않으면 배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도 도를 닦을 수 있다.”

도사는 또 그에게 당부했다.

“자네가 도를 닦으려면 더는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면 안 된다. 네가 할 수 있겠느냐? 단지 여색을 가까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온갖 세속의 잡념을 끊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도를 얻고 신선이 될 수 있다.”

그는 그 일곱 개의 대추를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입김을 불고는 장공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대추를 먹으면 더 이상 무엇을 먹을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억지로 먹으라고 한다면, 좀 먹어도 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먹지 않으려 하면 예전처럼 먹지 않을 수 있다. 이 일곱 개의 대추를 먹으면 일곱 개의 꿈이 영험할텐데 이 방법으로 너에게 몇 가지 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양친을 다 봉양하고 인연이 다하면 명산(名山)의 절벽에 가서 머물 수 있는 동굴을 찾은 다음 돌로 동굴 입구를 막아라. 이후부터 너는 안에서 수행해라. 6년이면 네 몸은 마치 매미가 껍질을 벗은 것처럼 하늘과 땅밖에서 유유자적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 어떻게 할지는 아직 말할 수 없다.”

이 말을 마치자 도사는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장공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문을 나서자마자 자취를 감추었다. 나중에 장공은 음식 냄새를 맡기만 하면 토하고 싶어져서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했다. 또 2년이 지나자 배설도 하지 않았다. 걸음걸이가 가볍고 정신이 분명했으며 갈수록 체력도 좋아졌다. 그는 매일 경성 외벽을 따라 다섯 바퀴씩 돌았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백 리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이런 일을 잘 믿지 못해 그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먹기만 하면 여러 사람의 식사량과 맞먹었다. 그의 몇몇 친구들도 속임수가 있다고 의심하여 그를 빈 방에 가두었지만, 그는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괴로움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가 병을 고치려고 그를 찾으면, 그는 약재를 가지고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줄곧 환자의 침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한번 앉으면 열흘이나 보름이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았다. 60세가 됐을 때도 몸은 젊은이처럼 강건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자료출처: 《이견지(夷堅志)》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