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진(真真)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동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와 남편은 중국 대륙 북방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둘 다 집안에서 맏이였고, 그 아래로 형제들이 많았으며, 문화혁명이 끝나고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된 후 남편은 총명하고 부지런해서 대학에 합격해 집안에서 유일한 수재가 되었다. 당시 농촌에서는 어느 집이나 대학생이 나오면 큰 경사로 여겼는데 시부모님도 당연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후 남편은 외지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나는 시댁에 살면서 농사일을 했다. 첫째가 딸이라서 시부모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더구나 아이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몇몇 시동생들도 내가 남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딸이 한 살 되던 해 시부모님은 나와 딸을 집에서 내쫓았다.
북방은 날씨가 추운데, 당시 눈보라를 맞으며, 나는 딸을 업고 20리 길을 걸어 겨우 비틀거리며 친정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우리를 본 친정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재빨리 당신의 몸에 걸치고 있던 솜옷을 벗어 딸에게 입히고, 얼어붙은 딸을 품에 안고, 자신의 몸으로 덥혀주셨다. 3년 후 나는 둘째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는 친정에 딸을 남겨두고 남편과 함께 나가서 장사를 했다.
몇 년 후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뇌혈전에 걸려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돌아가셨고, 이어서 어머니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비탄에 잠겨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참회했다. 그 후 딸을 데려왔는데, 두 남매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웠고, 늘 한 끼를 굶고 한 끼를 배불리 먹는 식이었다. 나와 남편은 장사하느라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확인할 여력도 없었다.
그 시절은 아주 힘들었는데, 정신적 물질적 고통이 아주 심해서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남편은 효자라, 부모님에 효도했고 또 동생들을 잘 보살폈다. 때로는 우리가 몇 년 동안 장사해서 번 돈을 시동생들이 한꺼번에 빌려가 갚지 않은 적도 있는데 그래서 우리 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그러다 1997년에 나와 남편이 기쁘게 대법을 얻었고, 그 이후 생활이 크게 변했다. 법을 얻은 초기 우리는 동수들과 함께 법 공부, 연공, 홍법(洪法)을 했다. 장사는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나날이 좋아졌다. 돈을 좀 모으자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도시로 나와 장사를 했다. 장사는 경쟁이 치열해서 우리는 수련을 느슨히 하고 오직 돈벌이에만 매달렸다. 퇴근 후에는 온몸이 피곤했지만 또 집안일도 해야 해서 법을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명심했고 자신을 속인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명심했다.
아이들의 상태는 부모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두 아이는 어릴 때 모두 법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가 수련을 느슨히 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속인으로 전락했다. 대학입시 때 딸은 겨우 외지에 있는 두 대학에만 합격했다. 아들은 대학입시 때 겨우 지역 전문대학 한 곳에 합격했다. 그때 남편은 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아이들이 불쌍해.”
그 의미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사업은 안정되어 좋은 집도 샀고, 동시에 우리의 원예회사도 설립해서 사장이 되어 돈벌이에 전념했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제자를 돌봐주셨고, 우리 집 식물에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정진하라고 점화하신 것이다.
나중에 동수들이 우리 둘이 수련에서 정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 법 공부장을 하나 만들어 주말이면 단체로 법 공부를 했다. 단체 법 공부를 통해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시댁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차츰 닦아버렸다. 이는 모두 전생에 내가 시댁에 진 빚으로 금생에 빚을 갚기 위해 온 것임을 알았다. 이를 통해 수련에서 제고해 올라갔다. 끊임없는 단체 법 학습을 통해 나와 남편은 점점 더 정진하게 되었고, 지난 2015년 나는 남편과 함께 파룬궁 박해 원흉인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을 고발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나는 정념이 아주 강해서 사람의 걱정은 전혀 없었다. 사부님을 비방하고 대법을 박해한 대마두(大魔頭)는 당연히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한 후 북경 명문대학 대학원에 지원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성공확률이 아주 희박해 보였다. 왜냐하면 딸이 나오는 학교는 이름 없는 이류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은 아주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친구들이 놀 때, 추운 교실에서 혼자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딸은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대학원에 합격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딸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박사논문이 국제 유명학술지에 발표돼 이 학과 안내에 등재되었다. 딸은 또 같은 학교 박사 후 과정에 합격한 뒤 올해 이 학교의 권위 있는 잡지에 편집위원으로 영입되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온 셈이다. 게다가 아들은 누나가 이렇게 우수한 것을 보고 자신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대학원에 들어갔고 올해 졸업했다. 아들은 틈만 나면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을 배움으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 준 복이다.
지금 세인들은 모두 일찍이 사부님의 가족이었지만 지금 말세(末世)의 대재난과 대도태에 직면해 있다. 사부님의 경문 《깨어나라》를 읽은 후, 나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매일 일찍 일어나 연공과 법 공부를 하고, 사업을 잘 안배한 후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배포한다. 날씨가 아무리 덥든 아무리 춥든 또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의 사전(史前) 소원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부님 가족마저 구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합격한 대법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최후 순간에 우리는 다행히 사부님을 따라 법으로 인간세상을 바로 잡고 있으니 이 얼마나 영광인가!
우리 끊임없이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하면서 끊임없이 정념을 강화하며, 매일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며, 우리 자신의 중생을 찾아 구하고, 최후에 사부님을 따라 천국 고향으로 함께 돌아갑시다.
제자 온 가족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