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공자는 말한다.
“도청도설(道聽途說)은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논어》〈양화(陽貨)〉)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일반적으로 ‘도(途)’를 길이나 도로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전반부는 “길에서 들은 것을 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뜻이 된다. 그러나 나는 ‘도(途)’에 수식(修飾)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내 의견에 따르면 “길에서 들은 것에 수식을 더해 퍼뜨리는 것”이 된다.
뒷부분 “덕을 버리는 것이다”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만 내 생각에 좀 무리한 견강부회 같아서 여기서는 인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윗 구절을 보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일반적인 해석은 “길 위에서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도덕을 저버리는 일이다.”가 된다.
또는 내 견해에 따르면 “길에서 들은 말에 자신의 수식을 첨가해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것은 도덕을 저버리는 행위다.”
실제 생활에서 이런 두 가지 행동은 그리 드물지 않다. 가령, 어떤 사람은 확인되지 않은 일을 듣고는 곧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들은 원래 확인되지 않은 일에 또 새로 가공을 더해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때문에, 사실의 진상(真相)은 마지막에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도청도설(道聽途說)은 도덕이 부족한 표현으로, 종종 남을 오도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수구해야 하는 것은, 속인 중의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명리와 사회의 실제 사업 중에서 수련자와 관계없는 말을 하고,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하고, 집착심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주워들은 풍문으로 일부 골목소식을 전하고, 사회상의 기타 일부 일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곧잘 흥분하여 아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서, 내 생각에 이는 모두 속인의 집착심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리(李) 스승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여러 사람이 에워싸고 듣는데, 그는 거기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보태어 주워들은 소식을 전한다. 무슨 목적인가? 여전히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 그가 그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녀에게 전하는데, 흥미진진하게 거기에서 말하는 것이 마치 그의 소식이 빠르다는 듯하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잠재의식 중에 곧 이런 과시심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서는 뭘 하는가?”(《전법륜》)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도청도설은 남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련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도청도설은 매 사람마다 혹은 많든 혹은 적든 누구나 있을 수 있는데, 단지 정도가 다를 뿐이다. 이 글을 쓸 때, 나는 내 몸 안에 이런 것이 존재함을 느꼈는데 보았으니 곧 그것을 닦아 버려야 한다. 수련인은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