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람은 하나의 용기(容器 그릇)와 같아서 이 용기의 순정(純淨)한 정도는 수련인의 경지와 상태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용기를 주재(主宰)하는 것이 사람의 사상이며 수련인이 법(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을 때 바로 이 용기는 끊임없이 순정해진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 물질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바, 진정 사람을 교란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法)에서 나는 사람마음을 내려놓는 것만이 진정한 제고임을 깨달았다. 며칠 전에 내게 아주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겼다. 일이 아주 갑자기 생겨 직접적으로 내 마음을 건드렸는데 마치 내 옆에서 폭탄 하나가 터진 것 같았다. 당시 내 심정은 정말이지 뭐라 표현할 수 없었는데 온갖 상념과 만감이 교차했다. 사악(邪惡)은 좋지 않은 사상을 이용해 사람을 교란하기 때문에 체현되어 나온 상태는 두려움이었다. 가족이 연루될까 두려웠고 사악에게 도청당할까 두려웠으며 사악이 어떤 수단을 취할지 두려웠는데 총체적으로 일련의 부면(負面)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 일을 마주해 나는 또 자책(自責)에 빠졌다. 이 일의 출현이 어떤 사람이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사전에 왜 그녀와 잘 지내지 못했을까? 만약 사정을 분명하게 설명했더라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할수록 후회스럽고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후회하고 자책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저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는 수밖에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은 또 자신의 수많은 부면(負面)적인 사상들을 건드렸다. 가족이 어떻게 연루되진 않을까? 사악이 나를 찾진 않을까? 생각했으며 앞으로 살아가기가 훨씬 힘들어질 거라 생각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내 머릿속에 법(法)을 넣어 주셨고 스스로 법을 떠올려 법으로 사악을 해체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사부님의 법은 제자에게 방향을 알려주셨고 나로 하여금 구세력의 일체 변이(變異)된 배치와 강제로 더한 일체 교란요소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대법제자의 일체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 것으로 그 누구도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다. 그런 후 사부님의 법과 대조해 평정을 이루지 못한 그 마음을 내려놓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고 즐겁게 수련했다. 그러자 그런 소위 교란의 표상은 사실 환화(幻化)되어 나온 것으로 자신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이 초래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이미 상생상극(相生相剋)의 법리(法理)를 알고 있는데,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탄연(坦然)하게 내려놓음으로써 도달하는 것이다.”[2]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사악이 한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손을 쓴 것이다. 당신들은 불(佛)ㆍ도(道)ㆍ신(神)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의 각자(覺者)들로서 세간의 득실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2]
사부님의 법은 곤경에 처해 있던 내게 희망을 보여주셨다. 나는 이렇게 갑작스런 교란에 직면해 정말로 좀 망연(茫然)해졌고 사악은 끊임없이 각종 수단을 바꿔가며 대법제자를 교란해 신체든 정신이든 모두 극한에 도달한 것 같았고 하늘을 봐도 온통 뿌옇게만 보였다. 반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너무나도 유유자재하게 보였고 그야말로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 몹시 부러웠다. 비교해보면 지금의 내 처지는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끝없이 심신을 갉아먹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길을 걸을 때 한 걸음을 걷기조차 아주 힘들게 느껴졌다.
바로 이때 나를 일깨워준 것이 사부님의 법(法)이었다. 사부님의 법은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는 결코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셨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으며 인간세상의 일체는 다 환화(幻化)되어 나온 것으로 사람마음에 따라 배치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법에 입각해 사악의 기량을 변별하고 집착하며 내려놓지 못한 사람마음을 찾아낼 때면 곧 그런 변이된 요소들을 바로잡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각도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해 올라갈 때면 그런 소위 교란하는 저층(低層) 요소들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미 그곳에서 뛰쳐나와 더는 그 속에 빠져있기 않기 때문에 저층의 교란 요소는 아예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악에 이용당한 그런 세인들이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 것이 아닌가? 당신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이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고 당신이 사악에게 통제당한 세인을 구해주어 이 한 차례 연극을 끝내게 한 것이 아닌가?
인신일념(人神一念 사람과 신은 일념의 차이)이라 인간세상에서 우리는 육신을 지닌 존재이고 또 삼계 내에서 미혹의 장애에 가로막힌 존재라서 때로 눈으로 보는 것만이 진실하다는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설사 구별할 수 있다 해도 정념(正念)이 강하지 못하면 강대한 사람마음을 저지하지 못해 심하게 얽매이게 된다. 내려놓으려고 생각할 때 근심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끊임없이 올라와서 때로는 이런 부면(負面)물질이 자신을 충격해 붕괴시키려 한다. 겉으로 보면 앞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다시 계속해서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가면 마치 자신이 막다른 곤경에 처한 것같다.
명백한 일면(一面)이 놀라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이런 부면(負面)사상을 배척하는데, 그것을 배척하는 과정에 마치 병업을 없애는 것처럼 신체가 아주 괴롭고 초조하며 불안하고 마음이 두근거리며 안정되지 못해 마치 뭔가 나쁜 일이 발생할 것 같다. 이점을 인식했을 때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일체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서, 업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법을 수련하고자 할 때는 곧 소업(消業)해야 한다. 소업은 바로 업을 소멸ㆍ전화하는 것이다. 당연히 업력은 말을 듣지 않아 사람에게는 곧 난이 있고, 장애가 있을 것이다.”[1]
사부님의 법은 내게 내 사상속의 바르지 못한 염두를 찾도록 알려주셨다. 이런 바르지 못한 염두는 다른 공간에서 생명이 있는 것으로 시간이 길어지면 이 바르지 못한 사상이 곧 사상업(思想業)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정법(正法)이 이 사상업을 건드릴 때면 이 사상 역시 반항하는데 당신의 제고를 가로막는다. 체현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일부 소위 번거로움, 교란을 만나는 것으로 만약 법으로 대조해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으면 이 번거로움의 표상(表象)이 아무리 진실하다고 여겨질지라도 사실은 모두 마음에서 환화(幻化)되어 나온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겨냥해 온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찾는” 수련의 법보를 알려주셨는데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3]
사부님의 설법은 나로 하여금 정말로 법의 가지(加持)를 느낄 수 있게 했으며 아무런 도움도 없고 미망 속에 있거나 심지어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면 마음속이 평온해졌고 사부님께서 옆에 계심을 느꼈다. 명백한 일면은 오직 사부님의 법(法)만이 사악을 해체할 수 있고 오직 사부님의 법만이 사악의 교란을 타파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에 나는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외래적인 요소가 없다면 사람이 감히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류사회의 표현은 다만 고층생명의 조종으로 조성된 것에 불과할 뿐이다.”[4]
법리가 명백해지자 소위 나타난 표면가상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통제한 것으로 사람 이곳의 표현은 다른 공간 요소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면 곧 법으로 그것을 해체할 수 있다. 이때 바로 대법제자가 정념으로 대할 수 있는가 고험하는 것으로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떠올리고 법을 떠올릴 때면 곧 자신의 선택이 옳음을 느끼는데 법의 기점위에 서면 신(神)의 상태다. 내 눈앞에 마치 ‘선택(選擇)’이란 두 글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나는 수련이란 바로 선택임을 깨달았는데 사람과 신(神)의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으로 부동한 염두는 부동한 결과를 낳는다. 이 선택은 또 당신이 사람마음을 얼마나 내려놓았는가와 관련 되는데 당신의 마음이 순정하면 당신의 수련상태는 곧 좋을 것이며 악을 제거하는 능력도 커지고 교란이 줄어들 것이다.
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또 반복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마음이 되돌아 나오면 마치 컨베이어벨트와 같은데 배후에 지탱하는 물질이 있다. 이런 물질요소는 일부 패물(敗物)을 컨베이어벨트에 내려놓으면 이런 패물이 대뇌에서 반영되어 직접 자신의 정서를 교란한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며 사상이 또 사람의 기점에 끌려가면 앞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면 공포심이 강렬하게 자신의 대뇌를 차지하는데 마치 수시로 집어삼켜질 것 같고 자신이 또 무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좋지 않은 사상이 끊임없이 자신의 극한에 도전할 때 명백한 일면이 깨어 일어나면 다시 정념으로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을 해체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이런 패물이 해체되는데 사상 속에서 더는 들뜨지 않게 되고 마음도 그리 불안하지 않게 된다.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신기(神奇)를 체험했다. 미혹 속에서 수련하는 나의 마음속에 법(法)에 대한 견정한 일념이 나로 하여금 빛과 희망을 보게 했으며 이 빛의 인도 하에서 점차 어둠에서 벗어나 곤경을 벗어나게 했다. 인간세상의 일체는 정말로 환화되어 나온 것임을 느꼈고 당신이 법에 서서 사부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곧 승리자(勝利者)가 되며 인간세상의 소위 일체 교란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수련이란 마치 시험을 보는 것처럼 당신의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것은 모두 수련중의 문제이다. 당신이 어떻게 답안을 작성하느냐는 곧 당신의 정념(正念)이 얼마나 되는지 본성(本性)의 일면이 얼마나 강한지 보아야 한다. 사람마음이 적어질수록 답은 더욱 좋아질 것이며 답안 작성도 빠를 것이며 위로 더욱 높이 올라갈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작은 수련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즈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3》〈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마음을 갖지 말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