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어릴 때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모으려는 마음이 생겼다. 아버지가 몇 마오(毛)나 몇 위안을 주시면 아껴 쓰면서 비밀 장소에 모아두었다 몇십 위안이 되면 갑자기 꺼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일을 시작한 후, 3천 위안의 원고료를 모았는데 아까워서 다년간 쓰지 못하며 성취라고 여겼다. 그러다 법을 얻기 전에 장사할 때 아내가 돈 통을 마련해주었지만 나는 몰래 10만 위안을 모았다. 법을 얻은 후 사적으로 돈을 모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 돈을 전부 아내에게 주었다. 비록 돈은 없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돈도 생명이 있는 것이라 당신이 그것을 모으면 모을수록 당신더러 더 모으게 한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다면서, 돈은 숫자를 올리고 당신을 유혹하며 일깨워 당신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야만 통쾌하게 여기게 만든다. 물론 수련인이 돈을 모아선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들에게는 한 마디 말이 있다. 태어날 때에 가지고 오지 못하고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올 때에 알몸이고 갈 때도 알몸이며, 뼈마저 다 태워서 재가 된다. 당신이 제아무리 돈 많은 부자이고, 제아무리 높은 벼슬일지라도,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하지만 공은 갖고 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당신의 主意識(주이스) 몸에 자랐기 때문이다.”(《파룬궁》)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돈과 재물에 대한 마음을 닦아내는 문제에서 여러 차례 시련을 거쳤다. 장사할 때면 날마다 아내에게 수입과 상관없이 매일 저축하라고 일깨워주었고 그렇게 해야만 안심이 되었고 돈을 많이 모아야 몸값이 커지고 남들의 존중을 받는다고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기제였다. 즉, 당신더러 돈을 벌게 하고, 돈을 모으게 하는데, 돈이 없으면 자신이 없게 하고 돈이 없으면 인생의 비바람을 걱정하게 만드는데 당신이 명백해지는 날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노팔로(老八路 팔로군 출신이란 뜻)’라 불리는 간부가 있었는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의 집에 만 위안이 있다고 했다. 당시로선 깜짝 놀랄 만큼 큰돈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낡고 헤진 모자를 쓰고 옥수수 가루로 만든 국수나 짠지를 먹었다. 나는 줄곧 그가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련하고 난 후에야, 돈이 사람을 좌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 모으길’ 좋아하는 사람 역시 돈이란 생명에 의해 조종당한다. 즉 당신더러 돈을 모으게 하고 돈을 모으는데 중독이 되게 하며 이를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기게 한다.
한번은 한 동수가 내게 한 가지 일을 들려주었다. 자기 마을에 사는 한 독신 여인이 암에 걸렸는데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이웃에 살던 셋째 숙모가 그녀를 보러 갔다.
그 여인이 이불을 걷자 그 안에 돈이 한 층 깔려 있었고 금액이 10만 위안이 넘었다.
그녀는 숙모에게 울면서 말했다.
“셋째 숙모, 이렇게 돈이 있어도 쓸모가 없네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의 절망은 돈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인데 이 비극은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약 그녀더러 다시 한 번 살게 한다면, 그녀는 아마 여전히 돈 모으길 즐길 것이다. 돈을 모으면 돈이란 그 생명이 줄곧 그녀를 따라다니는데 속인은 벗어날 능력이 없다.
필자의 친척 중 한 명은 노제자(老弟子)로, 대법에 대해 매우 확고하다.
그녀는 일찍이 “나는 그 어떤 마음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으며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그녀에게 병업이 나타나 침대에 누웠을 때 늘 남편에게 묻곤 했다.
“영감, 우리에게 돈이 얼마나 있어요?”
남편이 “아직 몇 백 만 위안 있어.”라고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나타났다.
여기서 필자는 《서유기》의 저팔계가 떠올랐다. 그는 늘 몰래 약간의 돈을 훔치며 돈을 모았는데, 당승 사도 4명이 마찬가지로 10만 8천 리의 마난을 겪었지만 오직 저팔계만이 정과(正果)를 얻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확실히 참고할 가치가 있는데, 대법제자가 돈과 재물에서 깨끗이 닦지 못하면 그럼 저팔계와 다른 게 뭐가 있겠는가?
필자는 또 다른 한 동수를 아는데 장사하느라 너무 바빠서, 법 공부도 적었고, 상태가 별로였다.
한번은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돈을 얼마나 모으면 그만 두실 생각입니까?”
“지금 20만 위안 있으니 50만 위안을 벌면 그만 두려고 해요.”
몇 년 후, 다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돈을) 얼마나 모았어요?”
“50만 위안이니까 100만 위안(역주: 우리 돈으로 약 1억 8천만 원)만 벌면 그만둘 생각입니다.”
몇 년 후, 다시 그녀를 만나 물어보았다.
“얼마나 모았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100만 위안인데 그래도 더 달리고 싶네요.”
여기서 “더 달리고 싶다”는 말은 분명 돈(다른 공간의 생명)이 한 말일 것이다. 그녀의 본성(本性)은 급히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돈이란 생명에 통제되어 멈추기 힘들게 되었다. 때문에 법 공부를 강화하지 않으면 돈에 의해 돈 구멍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꿈에 점화해주셨는데 건물에 불이 나서 검은 연기와 불꽃이 치솟았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밖으로 도망쳤어요. 나는 밖으로 달려가다가 중간에 다시 돌아와 돈을 가지러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법제자들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기제(機制)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당신더러 돈을 벌고 돈을 모으게 만들어 당신이 그 속에서 즐기게 한다. 정법(正法)이란 큰 연극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돌입했고,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겪었다. 정법이란 큰 연극은 곧 막을 내리려 하는데 요만한 돈이 우리를 가로막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돈은 수련인에게 가장 큰 장애이다.”(《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나는 또 석가모니가 당시 제자들에게 “동냥사발을 남기는” 법에 대해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동냥사발을 남기려는) 고만한 의념조차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은 제자들더러 돈 문제에서 놀라 깨어나도록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말겁(末劫) 시기 인류에게 있어 돈이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아주 맹렬하고 거센 파도의 충격이라 만약 돈을 투철히 간파하지 못하면 필연코 진흙 구덩이 속에 발이 빠져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가끔 동수와 함께 시장에 가면 동수가 가격을 흥정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을 발견한다. 채소를 사면서 저울을 쳐다보며 양이 적으면 소리를 지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잔돈이 부족하면 몇 마디 하는 등등.
신(神)의 길을 걷는 사람이 왜 이렇게 쩨쩨한가?
돈이란 대법의 자원으로 단지 생활에 쓰일 뿐만 아니라 위덕(威德)을 쌓는 것으로, 이는 흉금과 경지에 달려 있다. 20여 년 수련하는 동안 대법 항목에서 감당할 필요가 있을 때 나는 결코 인색한 적이 없다. 또 동수나 속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면, 몇 만에서 십여만 위안을 빌려주었다.
어떤 이는 사업이 망하고 어떤 이는 생활이 어려우면 나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돈이 생기면 주시고 없으면 갚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필자는 전통문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묵묵히 돈이나 재물을 도와주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에게 몹시 탄복한다. 설마 대법제자가 고대의 평범한 속인만도 못하단 말인가? 당신이 남을 어떻게 대하면 신(神)은 곧 당신을 그렇게 배치하신다.
얕은 인식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