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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중의 ‘왜’ (1)

행자(行者)

【정견망】

1. ‘밖으로 봄’과 다른 공간의 유형적인 생명

이 글은 실제 수련 사례를 통해 여러 동수들과 함께 수련에 나타나는 일부 현상들과 곤혹에 대해 교류해보고자 한다. 법 인식이 제한적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조(趙) 동수(부인)와 진(陳) 동수(남편)는 노부부다. 어느 날 조 동수의 신체에 아주 불편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그들을 찾아갔다.

(1) 첫날 대치

다음은 내가 조 동수와 교류한 내용 중 일부이다. 원래 대화한 내용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진 못해도 당시 우리가 나눈 대화의 대체적인 상황은 여실히 보여준다.

나: 당신은 지금 자신의 몸에 이런 상황이 생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 동수: 나는 이것은 진짜 병이 아니고 이건 가상이며 이는 업력의 표현임을 압니다.

나: 수련인으로서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든 생활에서 모순이 생기든, 마땅히 대법(大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조 동수: 네, 수련인은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나: 그럼 당신은 안으로 한번 찾아볼 수 있나요?

조 동수: 어떻게 찾아요?

나: 자신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보고,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조 동수: 당신에게 말하자면, 진(陳 남편)씨가 일하는 게 너무 느려서, 법을 공부하라고 소리쳐도 거기서 또 다른 일을 하는데 한참을 기다려야 해요….

진 동수: 당신 자신을 찾으라는데 왜 내 말을 해.

나: 아저씨도 잘하지 못한 곳이 있으니 역시 안으로 찾아보세요. 지금, 당신은 자신이 부족한 점을 말할 수 있나요?

조 동수: 저 양반이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해요,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탓하는데….

(나는 조 동수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신이 나서 남편의 더 많은 부족한 점들을 계속 나열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을 찾고 있고 밖을 보고 있습니다. ‘밖으로 봄(向外看)’은 일종의 관념으로 그것은 단순히 사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염두가 아닙니다.

사부님께서는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일체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전법륜》)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밖으로 보는’ 관념 역시 다른 공간에서 일종의 유형(有形)적인 생명이고 살아있는 생명이라 그것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 사람을 통제하고 영향을 끼치며 지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것의 영향을 받아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려고 합니다.

밖으로 찾는 이 관념을 바꿔서 자신의 부족을 보고, 당신의 시선을 다른 사람의 몸에서 당신 자신에게로 옮겨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보세요!

조 동수: 수련인은 마땅히 안을 향해 찾아야죠. 하지만 사존께서도 말씀하셨죠. 원 말씀은 아니지만 남의 부족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수의 제고를 도와주려는 겁니다. 우리가 동수를 돕는 것은 옳잖아요.

나: 아저씨 일은 일단 접어두고, 지금은 당신 문제를 토론하고 있으니, 우리 먼저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면 안 될까요?

조 동수: 나부터 찾아도 되지만 이미 내 수련에 영향을 끼치니 남편의 그런 좋지 못한 버릇부터 고쳐야….

나: 지금은 아저씨를 보지 말고 자신을 보세요.

조 동수: 네, 하지만 남편이…..

나: 안을 향해 찾으세요!

조 동수: 만약 남편이….

약 두 시간을 교류했지만 그녀는 다양한 원인과 구실을 대며, 내내 다른 사람의 부족을 이야기하고, 외재적인 원인을 찾았으며 자신의 그 마음은 오히려 건드리지도 못했다.

교류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조 동수의 사상 속에 ‘안을 향해 찾음’에 강렬하게 대항하고 벗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 이쪽에서 표현되는 것은 제아무리 바로잡고 설득해도 늘 밖을 향해 보려는 것이다.

나는 줄곧 앉아 있었고 무슨 육체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온 몸의 정력을 소모한 것 같았고, 육체적인 피로를 느꼈다.

동수의 집을 나오면서 이번 교류 상황을 생각해보니 조 동수의 사상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2) 둘째 날 대치

다음 날, 나는 다시 갔다. 교류 과정과 결과는 첫날과 비슷했다. 내 몸은 여전히 무슨 고된 육체노동을 한 것 같았다.

(3) 셋째 날 대치

셋째 날, 나는 다시 시간을 내서 동수를 보러 갔다. 노부부는 나를 반갑게 맞아들였고, 셋은 자리에 앉았고, 동수는 친절하게 물 한 잔과 과일 한 접시를 내 곁에 놓았다. 교류가 시작됐다.

여전히 엊그제와 비슷한 대화를 했다. 나는 조 동수가 문제를 보는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반복적으로 시도해보았다. 조 동수는 여전히 말로는 동의했지만 실제 행동은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집요하게 지적하고, 눈이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 의식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 힘이 나와 계속 대치하며 맞서는 것을 느꼈는데 마치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멈추지 않는 것 같았다.

교류 중 어느덧 1시간이 넘게 지났고 다시 내가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의식 속에서 정념에 맞서던 그 힘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거의 동시에 나는 조 동수의 말을 들었다.

“나도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늘 남편을 비난하지 말았어야 해요….”

바로 그 순간, 나는 동수가 마침내 관념을 바꿔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4) 동수의 깨달음

십여 분 동안 계속 교류하다 동수가 법의 요구에 따라 모순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일어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

조 동수도 함께 일어나 격동해서는 내 손을 잡았는데 마치 온몸이 기쁨으로 가득 찬 듯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 동수: 왜 가려고 해요? 좀 더 얘기해요? 조금만 더!

나: 저도 시간을 짜내서 왔고 또 할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

조 동수가 신나서 말했다: 그 일을 당신이 들어보고 내가 제대로 깨달았는지 좀 봐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해보라고 했다.

조 동수: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났더니 온몸에서 냉기를 느껴 평소보다 두꺼운 저고리를 걸쳤어요. 좀 보세요….

(여기까지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입은 외투 밑단을 뒤집어 안에 입은 옷이 드러나게 했는데 한 벌 한 벌 보여주면서 얼마나 두껍게 입었는지 내게 보여주었다.)

조 동수: 오한뿐 아니라 또 왠지 모를 두려움과 등에 마치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압력을 느꼈어요. 그런데 방금 등을 짓누르던 것이 갑자기 떨어져 내려간 것처럼 무거운 느낌이 없어졌고 두려움도 사라졌어요, 지금은 몸에 오한도 없어졌어요!

이것이 법에서 말씀하신 “다른 공간의 일체는 모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밖으로 보는’ 그 관념은 살아 있어요. 그것은 당신이 오늘 또 오고 우리가 오늘 계속해서 ‘안을 향해 찾음’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마음속으로는 두렵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그것이 자신이 훼멸될까 두려웠던 것으로 단지 나더러 느끼게 했을 뿐입니다.

(내가 동수 집을 세 번 연거푸 들렀지만 갈 때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두 부부는 내가 계속 찾아오는지 몰랐다.)

나: 잘 깨달으셨네요!

조 동수가 큰 소리로 격동해서 말했다: 사존의 말씀은 다 진실입니다! 이 관념 그것은 정말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내가 ‘밖으로 보는’ 이런 나쁜 관념을 바꾸자 다른 공간에서 대법에 의해 그것이 제거되었습니다!

이 3일간 관념이 바뀌는 과정, 즉 동수는 착실하게 법의 요구에 따라 마음을 닦는 과정을 밟았다. ‘밖으로 보는’ 관념을 반복해서 바꾸려 했고 ‘안을 향해 찾는’ 중에 비록 지난번과 같은 실패를 여러 번 겪었지만 이 일에 참여한 세 동수가 협력하면서 포기하지 않았고 대법을 의심하지 않고 줄곧 견지했다. 하루에 안 되면 이틀을 했고, 이틀에 안 되면 사흘을 했으며, 사흘이 안 되면 4일을 하는 식으로 그 좋지 않은 관념을 바꾸려면 이런 태도를 품어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가히 아주 강한 주관사상[主意識(주이스)가 강함]으로 그것을 배제(排除)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반대할 수 있다. 이렇다면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데,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다. 즉 오성(悟性)이 좋으면, 나의 법신이 도와서 대부분의 이런 사상업을 없애버릴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나타나면 자신이 이 나쁜 사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견정(堅定)할 수 있는 사람은 업을 없앨 수 있다.”(《전법륜》)

나는 동수가 제고해서 기뻤는데 이것은 한 차례 성공적인 수련 경험이다. 조 동수는 대법의 위력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직접 느끼고 깨달았으며 대법에 대한 그녀의 정신(正信)과 정념(正念)이 더욱 견정해졌다. 동시에 과거에 집착이나 관념 등의 사상은 물질이 아니라 단지 의식형태로만 여겼던 관념 역시 개변되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야(真修)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정진요지》〈박대〉)

(5) 왜 그런가?

조 동수의 경험에서 이것은 또 그녀의 심성수련에 대한 한 관념의 방해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수련에 들어온 지 이미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자신이 모순 속에 있음을 깨닫지 못했는가? 사실 줄곧 ‘안으로 찾지’ 못하고 ‘밖으로만 보았는가’?

진 동수는 법 공부를 중단한 적이 없는데, 그는 왜 자신이 실제 수련이, 사실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했음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아마 그는 자신이 줄곧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이 그에게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켰을까?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