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河北) 대법제자
【정견망】
명혜편집부에서 《아첨과 자심생마》를 발표한 후, 나는 주로 자심생마(自心生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안으로 찾았지 ‘아첨’ 문제는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들이 보기에 나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쾌활한 사람으로, 남에게 아첨하는 이들을 경멸하고,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도 탐탁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내게는 이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수련 중에 아첨하지 않았고, 속인 업무에서도 아첨하지 않았는가? 학교(나는 중학교 교사다)에서 동료들과 어울릴 때 만나면 흔히 “오늘 입은 옷이 참 좋네요!”, “이 옷은 날씬해 보여요!”, “이 옷은 정말 품위가 있고 서양 스타일이에요!”라거나 “이번 수업 정말 잘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요.” 등등의 말을 건넨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 아첨하지 않는다고 여겼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자신을 찾지 않으니 또 정말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수들에게 편집부 문장에 매 사람마다 자신을 한번 대조해볼 것을 건의하는데, 절대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동수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가식적인 아첨을 하진 않았지만, 같은 목적을 위해 이런 아첨이 또 다른 표현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아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개인적인 목적을 지닌 아첨 외에도 사람들 사이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며,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며 서로 잘 지내기 위한 것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아첨은 또 다른 많은 형식들로 변화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인데 다시 말해 아첨의 연속이자 변종(變種)이라 말할 수 있다.
1. 칭찬
동수가 어떤 일을 잘 했을 때, 상대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칭찬은 진실한 것으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대방의 집착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내 생각에는 진심어린 칭찬이 더 심각한데 왜냐하면 상대방도 당신이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칭찬은 거짓 칭찬보다 더 쉽게 마음을 움직이고 더 잘 먹히며, 더 만족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쉽게 집착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은 삼가는 것이 좋은데 이는 또한 동수를 위해 책임지는 것이다.
2. 인정상 하는 좋은 말
동수가 어떤 관점을 발표하고 나에게 어떠냐고 물을 때나 또는 동수들 사이에 이견이 생겨 나더러 ‘판단’하라고 할 때, 나는 자신이 종종 상대방을 따라 부화뇌동(附和雷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네, 네….” “맞아요 맞아….”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이 깨달은 게 맞아요.” 등등. 이런 행동은 속인 중의 ‘무골호인’이나 ‘두루뭉술한 사람’과 비슷하다.
이렇게 하는 목적 역시 상대방을 편하게 하고,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며 남이 난감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록 아첨은 아니지만 또한 아첨의 작용을 일으킨다. 의견을 발표한 동료에게 자신의 관점이 인정과 찬성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인식이 더 옳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자아를 더 견지하게 만든다.
3. 다른 의견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음
동수에게 칭찬할 만한 것이 있을 때는 아첨하거나 칭찬하지만, 반대로 동수의 방법이 적합하지 않을 때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입을 다물길 선택한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나게 했다.
한 노동수(老同修)는 세 가지 일을 아주 잘 했고 우리 지역에서 법을 실증하는 많은 일은 모두 그녀가 조직했는데 아주 열정적이다. 그녀는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배포하면서 지금은 진상을 알리면서 마땅히 사부님께서 창세주(創世主)임을 알려야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창세주의 위덕을 크게 세워야 하며, 심지어 현재의 정법 형세가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녀는 법 공부 소조에서 이 일을 함께 토론했는데, 몇몇 동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화뇌동했다. 나는 당시 동수가 법을 깨달은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지만 확신이 서진 않았다. 왜냐하면 사부님의 두 신경문에서 모두 ‘창세주’를 언급하셨기 때문에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자신의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지금 진상을 알리는 방식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으며 즉 기본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이다. 남다른 것을 내세우면서 사람을 구하는 방법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동수가 나중에 또 이 일을 언급했을 때, 나는 여전히 반박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동수가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한 것 외에 나는 젊지만 동수는 나이가 많고 또 세 가지 일도 잘 했기 때문에 동수가 듣기 싫어하고, 체면이 서지 않을까 두렵고 남의 미움을 살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침묵하는 방법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아첨과 같은 작용을 한다. 즉 표면적인 조화를 유지하며 남의 미움을 사지 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동수의 집착을 조장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동시에 법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행위다.
4. 앞에서 말하지 않고 뒤에서 의론
동수와 견해가 다를 때나 또는 동수가 하는 방법이 법에서 어긋나는 것을 보았을 때, 남의 미움을 사지 않고 자아를 지키기 위해 동수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뒤에서 의논하며 수구(修口)하지 않는다. 왜 당사자 앞에서는 말하지 않는가? 동수가 듣기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렵고, 말을 하면 간격이 생길까 두려우며, 동수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 왜 뒤에서 담화하는가? 그것은 바로 과시와 자랑인데, 자신이 남보다 인식이 높고 법리에 대한 깨달음이 분명하며 남보다 낫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아첨은 미혼탕(迷魂湯)과 같아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아첨과 칭찬은 동수로 하여금 진짜로 믿게 만들고 조금씩 자아를 잃어버리고 서서히 자아를 팽창시켜 자신도 모르게 자심생마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모두들 마땅히 시시각각 경각해야 한다.
사실 칭찬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어떤 동수가 관(關)을 잘 넘겼거나 또는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는 일을 잘 했다면 우리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일을 겨냥하되 사람을 겨냥하지 말아야” 한다. 즉, 동수가 어떤 한 가지 문제에서 잘 했다고 칭찬하되 동수 개인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칭찬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동수가 개인적으로 팽창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동수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부족한 점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동수가 표현해 낸 사람 마음일 뿐이며, 동수가 잘 수련한 부분은 이미 우리가 볼 수 없기에 그가 안 된다거나 심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말이라야 더욱 이성적이고, 동수 역시 더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작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부디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