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小文)
【정견망】
나는 혼자 사무실에 근무하는데 다른 동료가 전혀 없어서(직장은 사무실 형식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나만 혼자 남았다), 화분을 몇 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다년 간 수십 종의 화초를 키워봤지만 키우기 어려운 치자 꽃이든 키우기 쉬운 엽전초든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점차 시들었고 결국에는 실패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더욱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나 알려주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꽃은 꽃을 키우는 사람이 너무 부지런해서 죽인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좀 당황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한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내가 키우던 꽃은 물을 너무 자주 주고 가지치기를 너무 자주해서 죽었다. 그렇다면 왜 키우는 사람이 너무 부지런하면 꽃이 죽는가? 설마 게으른 사람만 꽃을 키우기에 적합하단 말인가?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 게으른 사람은 물을 주지 않고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니 꽃도 분명 시들 것이다.
이런 의혹이 줄곧 몇 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진정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엊그제 엽전초 화분을 하나 더 샀는데, 서서히 머릿속에서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진실한 원인은 나의 집착이 장난을 친 것이다. 가령 꽃을 사오면 빨리 잎이 자라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며 날마다 몇 번씩 들여다본다. 잎이 잘 자라는지, 꽃술은 제대로 벌어졌는지 살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물이며 비료를 자주 주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대개는 꽃이 익사하거나 비료 때문에 타서 죽는다. 꽃의 개화와 성장에 집착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정반대로 된 것이다.
사실 고인(古人)은 이를 가리켜 ‘묘목을 뽑는 조장(助長)’이라 불렀는데, 이치가 아주 유사하다. 생명은 마땅히 우주 법칙에 순응해서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일단 우리가 무엇을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곧 집착이 되는데 다시 말해 우주 신(神)의 배치를 어지럽혀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다. 이것이 아마 집착심의 해로움일 것이다. 우주에 원래 있던 법칙을 파괴한 것으로 다시 말해 우주 법리에 어긋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우리가 어떻게 되길 바란다면 그럼 곧 집착의 시작이다. 만약 내려놓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겨서 만약 그 생명의 법칙을 어긋나게 되면 곧 역효과를 낳는다. 꽃을 키우는 것도 그렇고, 다른 것들도 별 차이가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