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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수필: 자아와 과시

우언(雨言)

【정견망】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여러 번 ‘과시심’에 대해 말씀하셨다.

“과시하는 자체가 바로 아주 강한 집착심이고 매우 좋지 않은 마음이며,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마음이다.”

또 《정진요지》〈정론(定論)〉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을 당신들은 영원히 할 수 없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

내가 깨달은 것은 과시심은 비록 겉으로 보면 다른 사람에게 그리 직접적이거나 큰 피해를 끼칠 게 없는 것 같지만 수련자 자신의 수행에 대해 말하자면 지극히 해로운 것이다.

오늘 《전법륜》 〈과시심리〉를 공부하면서 사존의 한 단락 구절을 보았다.

“이런 것들을 전해서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좋은 점은 하나도 없으며, 다만 우리는 이것이 그의 집착심이며 과시심리임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왕에 과시심리가 자신에게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면, 왜 나는 여전히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과시심이 있는가?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자아(自我)’라는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에 오염되고, ‘진아(真我)’는 점점 매몰되고, ‘자아'[사실 ‘가아(假我)’]가 서서히 형성되고 또 커진다. ‘자아’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사(私)’를 근본으로 하며, 각종 인지(認知), 각종 관념 및 업력이 뒤섞여 형성된 것이다. 형성된 후, 이 ‘자아’는 죽음과 멸망을 원하지 않으며, 스스로 완전히 ‘진아’를 대체할 만큼 강해지려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자신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충실 시켜야 한다. 이에 “나는 무엇무엇이고, 나는 어떠어떠하게 하려 하며 나는 어떠어떠하다.”는 이런 말과 이런 사유가 하루 종일 이 생명을 가득 채우는데 자아를 위해 사는 것이 생명의 주요한 임무가 되었다.

아울러 이 ‘자아’가 아주 강한 사람은 사라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뇌에 각종 사상을 반영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많은 경우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어쨌든 늘 사상이 있어야 한다. 마치 이렇게 해야만 그의 존재를 대표할 수 있는 것 같고 뇌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안 되는데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또한 말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심지어 할 말이 없어도 대화거리를 찾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표현하려는 욕구가 대단히 강하고, 말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대화를 받아주는 것을 좋아하고, 마치 말할 기회가 없을까 두려운 것처럼 말하는 속도도 대단히 빠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아’를 대단히 강조하고 ‘자아’를 부각하려 하며 심지어 ‘자아’를 표현하고 ‘자아’를 더 키우려 한다. ‘자아’가 살아남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임무가 되었지만 그 자신은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바로 이러했기 때문이다. 매일 조용해지기가 아주 어려웠다. 내가 자신을 청리(淸理)하고 그런 잡념들을 배척하자 심념(心念)이 텅 비었을 때, 갑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사실 그 ‘자아(가아)’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자신이 해체되고 멸망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아울러 나는 평소에 말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말을 꺼내기만 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또 흥분도 되고 과시하기를 더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바로 ‘존재감’을 찾는 것인데, 누가 존재하는가? 바로 ‘자아(가아)’가 존재하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발정념 중에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일체 자아의 요소를 해체하고, 가장 거시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빠짐이 없고 누락이 없게 한다.”는 것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나는 줄곧 ‘과시심’ 배후의 요소를 찾지 못했다. 오늘 법을 공부하는데 사존께서 나를 점화해 주셨다. 사존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랍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