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 전에 어릴 때부터 왕자가 공주를 쫓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중국 공산당이 고친 칠선녀, 견우와 직녀, 양산백과 축영대 등의 전설 이야기를 즐겨보아 남녀사랑 같은 화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내심으로는 수련하고 싶었기 때문에, 가짜 기공을 약간 배우고 꿈에 색마 시련이 나타났는데, 넘기지 못하고도 무슨 좋은 일인가 생각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수련과 진정한 수련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루는 <정진요지>의 ‘수련자 금기’ 한 편을 배웠다. “색(色)에 집착함은, 악한 자와 구별이 없으며 입으로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음흉한 눈길을 마주치니 도(道)와는 너무나 먼 것이라, 이는 사악한 속인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색에 집착하는 것을 고칠 수 없다면 수련인이라 할 수 없고, 보통 사람만도 못한 ‘사악한 속인’일 수도 있다는 점에 놀랐다. 그 이후로 나는 색에 관한 집착을 수련하는 데 더 신경 썼고, 그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꿈에서 방해받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5> ‘2004년 미국서부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들이여, 색욕은 수련인에 대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라고 나는 벌써 말하였는데, 속인의 이 정에 너무 지나치게, 너무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요만한 일마저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데, 보아하니 구세력이 애당초 이런 이들을 대륙의 감옥으로 배치했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 엄혹(嚴酷)한 환경에서 당신은 또 어떠할까. 너무 안일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나는, 만일 색욕의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사악의 박해를 불러오기 쉽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특히 이 방면에 수련을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줄곧 색욕에 관한 것을 깨끗이 버리지 못했음을 느꼈다. 어떤 때 꿈에서 다른 남자가 나타나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남편(동수)이 나타나면 종종 지키지 못했고, 비록 부부관계는 없었지만 역시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이런 꿈을 꾸면, 실제 생활 속에서 시어머니는 너무 지저분하게 변했다. 화장실에 온통 오줌이 흘러서 집 안이 온통 누린내로 가득했고, 때로는 똥을 바닥에 흘리기도 했다. 나는 내 수련에 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식하고, 법을 더 많이 공부하고, 내 생각을 수련하는 동시에 발정념을 강화하니 한동안 없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색’의 집착이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이 방면의 수련이 매우 힘들게 느껴졌다.
나는 내 자신의 정념이 강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법을 배울 때, <전법륜> 제6강 ‘연공초마’의 마지막 단락을 보았다. “연공 중에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면, 당신이 아직도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조용히 안으로 잘 찾아보았다. 마침 일요일이 되어 시어머니는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셨다. 이번 일요일에 나는 시어머니에게 조용히 좀 있어야 하니 아침, 점심은 음식을 직접 해드시라 하고 저녁에 물만두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법 중에 용해되자’(<정진요지>) 일부 사소한 집착을 발견했다. 생각을 움직여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색’이라는 문제는 내가 찾는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눈앞에서 어떤 때 동갑내기보다 젊다고 우쭐대던 순간부터 사장님의 눈도장을 받는 것까지 줄곧 10여 년 전까지 찾았다.
그때 나는 비교적 큰 회사에서 일했고, 동료들이 여기저기서 왔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은 접촉을 하고 싶었다. 한번은 이성 동료가 나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는 승낙했다. 물론 내 목적은 진상을 말할 기회를 찾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또한 대법의 진상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했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직접 1989년 6·4 때 대학생들이 부패 척결에 참여한 경험을 말했다. 우리는 매우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헤어질 때,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예의상 나는 그와 악수했다. 그러나 그다음에 그는 놀랍게도 포옹하는 동작을 했다. 나는 놀라며 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송년회에서 함께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는 나를 보며 “연하게 적당히 화장하는 게 좋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색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나쁜 것들을 제때 내 공간장에서 제거하지 않았다. 그때 내 마음에 걱정이 있었는데, 만약 내가 그에게 강하게 굴어 그가 나를 멀리하여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 그를 구할 기회를 잃을까 봐서였다.
점차 그 교활한 ‘색정’이 변해 내 앞에 나타났다. 동료들은 나를 젊고 기질이 고상하다고 칭찬하거나, 나를 상냥하고 착하다고 칭찬하고, 사장은 나를 고상하고 우아하며 초탈했다는 등등 일반인 중의 아름다운 말들을 한 무더기 해주었다. 내가 비록 내심으로는 수련인, 특히 대법에서 수련한 사람이며 절대로 색의 방면에서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대법에 먹칠하는 행위는 나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사실 내심에서 나는 그것을 대법을 닦은 일종의 복으로 여기고 심지어 득의양양하게 이러한 찬사를 누리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진정으로 대법의 기점에 서서 이 문제들을 봤을 때, 비로소 나는 이것이 <전법륜> 제3강 ‘반수와 차공’에서 말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그에게 이 공을 준 것이 그로 하여금 기공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게 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에게 수련하라는 것이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정진요지> ‘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 나는 비판에 직면하여 때때로 속으로는 슬퍼하면서도 끊임없이 수행 의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오히려 부드럽고 순한 고향에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수련 의지를 느슨하게 해왔다.
이 ‘색’의 뿌리를 파내자 나는 수련의 길에 질적인 변화가 있음을 분명히 느꼈고, 수련이 처음인 듯한 느낌을 진정으로 느꼈다. 이를 계(戒)로 삼아 앞으로의 수련에서 나는 대법 중에서 나 자신을 닦고 진정으로 ‘용맹정진’(<전법륜>)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사실 대법제자는 진상을 말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것은 대법의 위덕이기도 하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법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전법륜> 제3강 ‘파룬따파 수련생은 어떻게 공(功)을 전하는가’에서 “나의 법신 역시 직접 法輪(파룬)을 넣어줄 수 있으나, 우리는 집착심을 조장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에게 동작을 가르칠 때, 그가 말한다. “와, 나에게 法輪(파룬)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넣어준 것이라고 여길 텐데,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일을 말하는 것은 이 집착심을 키우지 말라는 것이며, 모두 나의 법신이 하고 있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내심에서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끝없는 감사로 가득 차 있다. 수련의 시작부터 사부님은 사심 없이 법리를 우리에게 다 설명하셨지만, 다만 스스로 속세에 빠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고험 속에서 거듭되는 어려움과 마난 속에서 한 차례씩 비틀거림 속에서 사부님은 우리를 비판한 적이 없고, 우리를 질책하신 적이 없으며, 우주를 관통하며 “어쨌든 나는 당신을 구도할 것인데” (《2003년 정월 대보름설법》) 은은하게 우리의 본성을 부르고, 우리의 정념을 더하고, 자신의 엄청난 노력으로 우리를 보호하며 마난에서 헤쳐나가고, 자신의 무한한 자비로 우리를 대법 중에서 성장, 성숙하게 대하신다!
자기의 작은 수련 체득을 써서 동수와 교류하니, 법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동수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허스!
제자는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사부님께 신년을 경축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새해에 동수들이, 동고동락하고, 함께 정진하길 바랍니다! 허스!
후기: 이 수련 심득을 보낼 때, ‘홈페이지’를 누르기만 하면 홈페이지가 사라지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마가 한 자 높으면, 도는 한 장이 높다’를 생각하고 사악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자 홈페이지가 단번에 좋아졌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