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능오(淩悟)
【정견망】
(39)
이 회[98회]에서 당승 사도 4명은 정말로 보배로운 땅인 영산(靈山)에 도착했다. 영산 기슭에 있는 옥진관(玉真觀)의 금정대선(金頂大仙)이 이들을 맞이한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도관 중당(中堂 가운데 채) 뒷문으로 나가 스스로 여래불조(如來佛祖)께 참배하러 가라고 했다. 네 사람이 오륙 리 걸어가니 콸콸 흐르는 한 줄기 폭이 넓고 깊은 강을 만났다. 위에는 오직 외나무다리 하나만 있었다. 손오공을 제외한 당승과 저팔계 누구도 외나무 다리를 건너가지 못한다. 바로 이때 접인불조(接引佛祖)가 바닥이 없는 배를 몰고 ‘능운도(淩雲渡)’로 와서 그들을 맞이해 반대편 피안에 순조롭게 도착해 여래지존(如來至尊) 석가모니부처님을 직접 뵙는다.
여래불께서 친히 당승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삼장(三藏)이 있나니 하늘을 말하는 법(法)장, 땅을 말하는 논(論)장, 귀신을 제도하는 경(經)장이 하나씩 있다. 총 35부 15,144권이다. 진실로 진(真)을 닦는 경전이요 올바른 선[正善]의 문이다.”
그런 다음 아난과 가섭 두 제자에게 당승 일행을 안내해 경전을 가져가도록 했다. 처음에 당승이 아난에게 선물을 가져오지 않자 5048권 모두 글자가 없는 무자진경(無字真經)을 주었다. 당승 일행은 이를 모르고 가다가 중도에 연등고불(燃燈古佛)이 파견한 백웅존자(白雄尊者)가 한바탕 큰 바람을 일으켜 경전을 흩어지게 한 후에야 모든 책에 글자가 없음을 알아챈다.
이에 영산으로 돌아와 여래불조께 하소연한다. 불조(佛祖)는 이를 똑똑히 알고, 다시 아난과 가섭에게 네 사람을 인도해 글자가 적힌 진경을 주게 했다.
이번에도 아난이 당승에게 선물을 요청하자 어쩔 수 없이 된 상황에서 당승은 자금발우(紫金缽盂)를 아난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만사가 순조롭고 진행되어 진경(真經)을 얻어 대당고토(大唐故土)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당승 사도 네 성승(聖僧)이 목욕한 일부터 말해보자. 이것은 그들이 이미 환골탈태해서 순정무사(純淨無邪)해졌음을 보여준다.
“먼지를 씻어내 전혀 때가 묻지 않으니 근본으로 돌아가 불괴(不壞)의 몸이 되었네.
[洗塵滌垢全無染,反本還原不壞身]”
두 번째 ‘능운도(淩雲渡)’ 입구에서 먼저 외나무다리는 건너가기 어렵자 나중에 또 바닥이 없는 배로 인도하는데 책에서는 총괄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소위 광대한 지혜로 피안 무극(無極)의 법에 오른 것이다.
[此誠所謂廣大智慧,登彼岸無極之法]”
이는 아마 수련자가 공을 이루고 원만한 후 다시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첫 번째 문턱임을 암시할 수 있다. 또 강 상류에서 시체 한 구가 떠내려오니 손오공이 말한다.
“사부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것이 원래 당신입니다.”
팔계, 사승, 상앗대를 젓는 이 역시 모두 따라서 말한다.
“바로 당신, 바로 당신입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해!”
이는 당승이 이미 범태(凡胎)를 벗어나 가아(假我)의 업이 이미 죽고 진아(真我)가 이미 부활해 자신의 본래 면모를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바로 각자(覺者)의 형상으로 우주와 천지 사이에 우뚝 서서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다.
또한 여래불조께서 전수하신 삼장(三藏)은 법(法), 논(論), 경(經)으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불교의 경, 율, 논과는 다른데 전혀 별개의 것이니 똑같이 볼 수 없다.
또한 아난이 당승에게 물건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재물을 탐한 게 아니라 기왕 각자(覺者)라면 가장 먼저 자급자족하며 다른 사람에게 구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난의 이런 행동은 사실 수련의 최후 단계에 놓여 있던 당승에게 최후에 남아 있는 고만한 집착심마저 깡그리 없애버리고 새롭게 누락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또한 후세에 참불하고 예불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규범과 공양 방식을 남겨주려는 것이다. 지금 사찰에서 하는 향을 사르고 제사를 지내는 행동들은 바로 출가한 승려들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다.
마지막으로 무자진경(無字真經)과 유자진경(有字真經)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자. 유자진경은 당승이 서천에서 대당에 가져온 진경이다. 무릇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고 거기에서 진법(真法)과 진도(真道)를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우리 여래불의 호탕하신 불은(佛恩)으로 큰 자비를 내시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을 맹세하고 편리한 문을 크게 열어주신 것이다. 반면 무자진경은 비록 《서유기》에는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 전해지지 않은(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기왕에 널리 제도[普度]함을 말한다면 문자를 확립해 문자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자는 세간(世間)의 물질이자, 세간의 언어라 억지로 하려 해도 어려운 고충이 있다. 즉 가장 낮은 층 물질 언어로 어찌 고층차의 불법(佛法)을 똑똑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장애와 장벽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인간 세상의 광대한 중생들 모두 불법을 들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비로소 유자진경이란 방식을 채택해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미륵불(彌勒佛)께서 세상에 내려와 법을 바로잡고 사람을 구하시도록 초석을 다지는 작용을 했다. 불법무변(佛法無邊)이라 대각자에게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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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까지 당승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암암리에 도와준 오방게체, 사치공조, 육정육갑, 호교가람(護教伽藍)이 관음보살에게 재난 장부를 건넨다. 여기에는 당승이 10만 8천리를 걸으며 겪은 80가지 재난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구구귀진(九九歸真 구구 81의 수를 채워야 귀진할 수 있다는 의미)’이란 설이 있어서 관음보살이 다시 그들에게 명령해 사도 네 사람에게 난(難)을 하나 추가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구름 위로 날아가다가 갑자기 땅에 떨어뜨려진 이유다.
아울러 통천하(通天河)를 건널 때 흰 자라가 당승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그들을 데리고 강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들이 강가에 올라왔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안개가 일어나더니 돌이 구르고 모래가 날렸다. 사실 이들은 네 음마(陰魔)가 일으킨 것으로 경전을 탈취하려는 속셈이었다. 그것들을 밤새 시끄럽게 떠들다 날이 샌 후에야 그쳤다.
손오공이 이렇게 해석했다.
“사부님은 모르십니다. 저희가 당신을 보호해 이 경을 얻은 것은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고, 귀신이 꺼리는 것이라 몰래 와서 빼앗으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첫째 이 경(經)이 물에 젖었고 둘째, 당신 정법의 몸(正法身)이 누르고 있어 우레도 울리지 못하고 번개도 비추지 못했으며 안개도 가릴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 몸이 철봉(금고봉)을 들고 순양(純陽)의 성정으로 지켜드렸습니다. 그러다 날이 밝아 양기(陽氣)가 또 성해지니 빼앗아 가지 못한 것입니다.”
통천하를 건넌 후 다시 진가장(陳家莊) 사람들을 만났다. 진징(陳澄)과 진청(陳淸) 두 노인이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잘 대접했고, 또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당승 네 사람을 위해 사찰을 짓고는 이름을 구생사(救生寺)라 짓고 사찰안에 네 사람의 조각상을 세웠다. 늦은 밤 당승 일행은 조용히 산문을 빠져나왔고 다시 팔대금강을 만나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여기서 우선 “구구귀진(九九歸真)”의 함의를 말해보자. 구구귀진은 사실 구구귀일(九九歸一)이다. 일(一)이란 지존(至尊)이다. 하나가 있어서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으며 셋이 만물을 낳는다는 설이 있다. 수련에서도 늘 불이법문(不二法門)과 마음이 전일(專一)해야 함을 말한다. 진실로 일심(一心)으로 수련 성취되면 일체(一體)로 합해진다. 일념이 올바르면 진(真)에 이르고 성(性)에 이름을 알 수 있다.
또 비록 통천하를 건너다 흰 자라가 일부러 그들을 물에 빠뜨렸고 하지만, 이는 사실 반본환원(返本還元)의 뜻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인데 하물며 하늘과 통하는 강물[通天河 통천하를 직역하면 하늘과 통하는 강이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하나의 난 역시 그들이 각기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행동하며 법을 얻어 선천 본래의 경지로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 바람, 안개, 천둥, 번개 네 음마가 경을 빼앗으려 한 것은 바로 수련하고 도를 깨달음이 쉽지 않음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상사(上師)의 보호가 없이 공(功)을 이루고 원만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또한 생명이 위험한 것이다.
또 진가장 사람들이 당승의 사도들을 위해 구생사란 사찰을 짓고 네 개의 조각상을 세운 것은 대각자(大覺者)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세인을 구도해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하면 구도 받은 중생과 세인들은 반드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신불(神佛)의 무량한 자비와 호탕한 불은(佛恩)에 보답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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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貞觀) 27년 어느 날, 당 태종이 어가를 몰고 망경루(望經樓)에 올라가 보니 문득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과 향기로운 바람이 가득한 것을 보았는데 당승 일행이 망경루 옆에 내려온다. 진경을 갖고 돌아와 불법(佛法)의 진정한 주인 당 태종 이세민에게 바쳤다. 이에 이르러 중화 대지에 불법이 성대히 전해졌고 후세 진정한 홍법(洪法)을 위한 튼실한 기초를 다졌다. 당 태종은 감개가 무량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성교서(聖敎序 대당삼장성교서)’란 문장을 지어 기념으로 삼는다.
당승이 이렇게 건의했다.
“주공(主公)께서 진짜 경전을 천하에 전하시려면 모름지기 부본을 만들어 배포하셔야 합니다. 원본은 소중히 보관해야지 함부로 더럽혀선 안 됩니다.”
당 태종이 이에 동의해 한림원과 중서성의 관리들을 불러 진경을 필사하게 하고 장안성 동쪽에 사찰을 하나 짓고 등황사(謄黃寺)라 불렀다.
당 태종은 또 당승에게 안탑사(雁塔寺)에 가서 진경을 읽게 하자 공중에 팔대금강이 나타나 당승 일행을 안고 날아갔다. 당승 사도 4인의 수련 시간은 바로 5048일과 맞아 떨어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공(功)을 이루고 원만해 다섯 성인(五聖 당승 사도 4인과 백룡마)이 진인(真人)이 되었다.
여래불조는 논공행상을 하면서 당승을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에 봉하고, 손오공은 투전승불(鬥戰勝佛)에 봉했으며, 저팔계는 정단사자(淨壇使者), 사오정은 금신나한(金身羅漢) 백룡마는 팔부천룡(八部天龍)에 봉했다. 이들은 모두 과위(果位)를 얻었고 또한 진여(真如)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받은 과위에 대해 말해보자.
당승은 전단공덕불이 되었다. 당승은 주원신이자 본원(本願)으로, 불념(佛念)을 성취했다. 수련이란 마음을 닦는 것으로, 공덕이 원만하면 자연히 각자(覺者)가 되는데 소위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 하며 선천의 본래를 깨닫는다.
손오공은 먼저 도를 닦아 본래 이미 자각(自覺 스스로 깨달음)했고 또 당승의 서천취경을 보호해 대승불법을 널리 알렸으니 각타(覺他 남을 깨닫게 함)가 되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구했다. 투전승불은 이미 하나의 불심(佛心)을 성취한 것으로 그는 불법을 위해 나고 죽으며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존재가 되었다. 즉, 우주 진리의 수호자란 뜻이다. 그는 정법이 사람을 구하는 길에서 관건적인 역할을 했다.
저오능이 정단사자에 봉해진 여기에 중대한 의미가 있다. 더 깊은 차원에서 설명하면, 우주 대궁(大穹) 시방세계(十方世界) 정법(正法)의 본질은 바로 청리해서 마당을 깨끗하게 만들고, 일체 바르지 못한 생명 및 그 요소들을 바로 잡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대궁을 재조합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자(使者)란 바로 사명을 지니고 왔음을 의미한다. 그는 불능(佛能)이니 즉 지혜와 능력의 여의(如意)한 체현이다.
사오정이 금신나한에 봉해졌으니 그는 불성(佛性)의 체현이다.
백룡마가 팔부천룡 호법에 봉해진 것은 그가 불의(佛意)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자아를 희생해 자아를 원만하게 성취하고 정행(正行)해 정과(正果)를 얻었다. 하늘은 마음이 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데, 얼마만큼 경작했으면 그만큼 수확하고 얼마만큼 대가를 치렀으면 그만큼 얻는다. 수련이란 큰 길(大道) 위에서 여러분은 모두 용맹정진해서 하루 빨리 원각(圓覺)하고 정과(正果)를 얻어 최초의 가장 아름답고 성결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천하에 경을 전하니 은혜의 빛이 충만하고 다섯 성인이 불이문(不二門)의 높은 곳에 살게 되었네(經傳天下恩光闊,五聖高居不二門)”라는 것이다.
(전체 완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7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