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5년 넘게 대법을 수련해 왔는데, 심성과 경지의 제고가 느렸다. 또한 최근 2년에야 비로소 안으로 자신을 보는데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치 대법에 막 입문한 신수련생이 법리를 어느 정도 알고 나면 법으로 남을 가늠하고 눈을 밖으로 보면서 늘 남의 잘못을 찾으려 하면서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은 것과 같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더욱이 아주 심각했다. 여기서 나는 자신이 어떻게 남의 잘못을 바로잡다가 결국 자신이 제고해 올라오게 되었는지 수련 과정을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은퇴한 교사다. 담임을 오래 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단점을 찾아 시정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늘 학생들을 직접 만나 잘못이나 부족을 지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다행히 당시의 아이들은 그래도 단순하고 거친 내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수련하면서 이 습관은 자연스레 동수들에게 적용되었다. 우리 법 공부 소조에 동수 A가 있는데, 3년 넘게 수련한 신수련생이다. 나는 그녀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대하며, 책임감이 강하고 경사경법(敬師敬法)하며 법 공부를 진지하게 하며 늘 우리에게 “대법은 엄숙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부득이할 때면 거짓말로 응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이를 알지 못하는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또 당당하게 자신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한동안 참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또 (동수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그녀에게 직접 지적했다.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마땅히 참말을 해야 하는데 어찌 ‘진(真)’에서 어긋날 수 있습니까?”
그녀의 반응은 “나는 억울하고 아주 무고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에 화가 나서 그녀가 거짓말을 한 몇 가지 사실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침묵만 지켰고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이에 몹시 실망했다! 나중에 나는 줄곧 이를 마음에 품고 생각했다.
‘당신더러 잘못을 빨리 없애라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정진하는 동수가 이런 단점을 지니고 어떻게 원만할 수 있겠는가? 크게 틀린 것이다. 만약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면 잘못을 시정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속으로 그녀 때문에 조급했고 또 화가 났다. 이 문제는 줄곧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이 문제를 바로잡을지 몰랐다.
한번은 두 동수가 잡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동수들은 남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기꺼이 말해주려 합니다. 그게 병을 보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전법륜법해》〈지난 설법 문답풀이〉에서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보았다.
“당신이 한의사가 아니고 당신이 또 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곧 남에게 병을 봐주려 한다면, 당신은 이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이 단락을 본 후 나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즉 남의 실수를 ‘시정하길’ 좋아하는 것은 집착심으로 내가 늘 남의 결점을 마음에 두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질투심, 복수심, 과시심 등 다른 사람의 결점이 나를 괴롭힐 때 흔히 남과 ‘다툼’을 벌이며 불복하고 이에 원망하고 남을 무시한다.
어느 날 딸(동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딸이 나를 비난하면서 말했다.
“엄마, 이 일의 처리는 전혀 법에 있지 않아요. 자신을 아주 높이 올려놓았는데 자신이 높은 곳에서 남의 단점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모르세요? 이건 엄마의 ‘성질 규정[定性]’을 동수 A에게 강요한 게 아닌가요? 게다가 엄마가 규정한 ‘거짓말’이 옳은지 여부도 아직 불분명하잖아요! 그러니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또 엄마가 남들에게 실수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 자신을 실증하려는 것입니다. 엄마가 ‘옳고’ 엄마 관점과 일치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이것은 남에게 당 문화를 강요하는 겁니다.”
나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딸의 비판은 이치도 있었고 나보다 더 깊이가 있었다. 그렇다! 설사 그녀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동수 A를 지도하려 하는가? 게다가 다른 방면에서 나는 그녀만큼 못하고 그녀는 수련의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낫다. 이 문제는 나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녀의 집착에 집착한 것이다! 명백해진 후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우연히 〈광저우 설법 문답풀이〉를 읽는데 또 이런 문답을 보았다.
“제자: 어떤 때 진(真)과 인(忍)이 충돌되는데, 예컨대 어떤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 진(真)에 의해 지적해야 합니까, 아니면 참아야 합니까?
사부: 여전히 내가 한 그 한마디 말이다. 한 연공인으로서 더(德)를 지키지, 더(德)를 잃지 않는다. 현재의 속인은 이미 모두 이렇다.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변했다. 이것은 속인의 일이기에 당신 역시 상관할 수 없다. 당신이 그에게 지적하여 그의 아픈 곳을 말했다면, 그는 정말로 당신을 미워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잘 수련하는가 하는 이것이 첫째이다.”
법에서 깨달은 후 나는 잘못을 바로잡을 때 화를 낸 것은 덕을 지키지 못해 덕을 잃은 것이며 또 자신의 제고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동수 A는 속인이 아니니 내가 선의로 지적한 것은 마땅히 잘못이 없지만 어느 정도 선이 있어야 하며 굳이 남이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남이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때 화를 내면서 오랫동안 담아두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불교 중에서는 당신이 만약 밖에서 구한다면 그는 당신이 마도(魔道)를 걷는다고 한다.”(《전법륜》)
나는 남을 개변시키려는 것은 밖으로 구하는 것으로 곧 마도를 걷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했다.
이를 알고 나서 나는 다음 날 동수 A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내가 안으로 찾은 “남에게 강요하는 마음,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 ‘잘못을 시정하길’ 좋아하는 마음, 남을 지적하는 마음” 등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흉금이 넓어서 정말로 내게 화를 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것은 모두 저를 위한 것이고 좋은 마음이니 당신을 이해합니다! 앞으로는 수구하겠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는지 고치는지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을 주로 자신을 수련하는데 놓고 무조건 자신을 바로잡는 데 놓았다. 왜냐하면 수련의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으로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불공평한 일에 맞서 싸우기를 좋아한다. 나는 속인들이 보기에 불공평한 일을 만나면 나서서 싸울 줄 아는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남들을 탄복시켜 왔고 스스로도 줄곧 옳다고 여겨왔다. 내가 남의 잘못을 시정하길 좋아하는 것 역시 이런 관념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대법에서는 이렇게 보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인연관계를 보지 못해 나쁜 일을 하기 쉽고, 이렇게 하여 德(더)를 잃는다는 것이다.”(《전법륜》)
나는 사실 ‘불평하는 것’은 사실은 멋대로 남의 일에 간섭한 것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결론
내게 올라갈 ‘사다리’를 만들어 준 동수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동수들에게 더욱 감사드린다. 가장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잘못을 바로잡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옳다’는 속인의 관념을 없애도록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와 오묘한 배치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假理)를 위해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지금 나는 “잘못을 바로잡고 불의에 맞서 싸운다”는 후천적인 관념이 내 인생의 전반생에 뼛속 깊이 들어가 닦아내기가 정말 어려운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한 것에서부터 한 층 한 층 제거하는 것 역시 정말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님과 대법의 인도하에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잘 해왔다. 감사합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8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