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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베끼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중국 대법제자 정련(淨蓮)

【정견망】

최근에 나는 줄곧 《전법륜》을 베껴 쓰고 있다.

어느 날 제3강 92페이지 5번째 줄까지 베껴 썼는데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원래 판면은 가로 22칸, 세로 24줄로 설계했지만 끝까지 베낀 후에야 비로소 한 줄이 남는 것을 발견했다. 원서의 판면과 똑같이 하려면 한 줄을 지우고 다시 써야 했다. 전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늘 이렇게 처리하고 새로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재의식에서 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우고 새로 쓰면 지면이 너무 깔끔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에 앞으로는 한 글자도 틀리게 적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실수한 곳을 무시하고 계속 베껴 썼다.

결국 5줄만에 즉 세 번째 단락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까지 썼을 때 동일한 문제가 다시 나타났다.

이때 나는 각성했다. 수련에 우연한 일이란 없는데 법을 베끼는 중에 빈번하게 문제가 나타났다면 마땅히 자신이 마땅히 어떤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지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

우선, 베끼다 실수한 단락을 살펴보았다.

“이 사람은 반드시, 그가 진정으로 수련하기로 확정함과 동시에 그는 비로소 공능이 나올 수 있는데, 주요한 목적으로 삼아 수련해서는 안 된다.”

이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놀랐다. 설마 내가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를 포함해 오늘까지 걸어온 동수들은 모두 끝까지 진수(真修)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한 것은 어떠한가? 자신을 돌아보면, 매일 출근하면 일이 있든 없든 하루 종일 앉아 있고, 퇴근 후 밥을 먹고 집안을 청소한 후 잠자기 전까지 남는 짧은 시간에 1강을 간신히 공부한다. 시간이 좀 더 많으면 《각지 설법》을 좀 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더욱 인연에 따르는데 근본적으로 사부님께서 《홍음 4》〈우리가 약속했기에〉에서 요구하신 “사람을 구하려 우리는 분초를 다투고 있고”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십수 년을 수련했지만 명혜 교류 문장에서 동수들이 서술한 그런 법리(法理) 승화와 신통법력(神通法力) 방면에서 심신을 진감(震撼)시키는 체현과 깨달음이 아주 적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동수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변칙적으로 또 일종 공능을 추구하는 구하는 마음이 이끌려 나왔음에도 나는 오히려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형 중에서, 잠재의식에서 또 공능으로 수련을 잘하고 못함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았으니 이는 잘못에 잘못을 더한 것이다.

또 다른 문장을 보자.

“사부가 그에게 잠가준 것은, 그가 잘 파악하지 못해 자신이 나쁜 일을 할까 봐 염려해서다. 그러므로 줄곧 그에게 그의 신통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사람이 상당히 많다.”

내가 이 법을 베낄 때 심태를 되돌아보고 다시 이 구절 법문과 결합해서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또 깜짝 놀랐다.

우선 이는 애초 법을 베낄 때의 초심을 위배한 것이고, 더 깊은 층차에서 말하자면 서약을 위반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로 매 한 글자 뒤에 모두 무수한 층층첩첩 불(佛)ㆍ도(道)ㆍ신(神)이 있기 때문인데 얼마나 있는지 헤아릴 수 없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나는 매 한 글자와 구두점의 위치까지가 모두 우연이 아니며 모두 정법에 필요하고 사부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니 모두 엄숙히 대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처음 법을 베낄 준비를 할 때 마음속으로 《전법륜》 인쇄본의 형식에 따라 신중하게 필사하겠다고 암암리에 결심했던 것이다. 법에서 내원한 매 하나의 정념(正念)은 다른 공간에서 모두 기록이 있는 것으로 이는 소원을 발한 것과 같으니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실천해야 한다. 사부님 법신께서는 내가 발한 소원에 따라 수련의 길을 배치하실 것이다. 내가 법을 베끼는 실천 중에서 나태해져서 초심을 위배했다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법에서 제고하는 길에서 벗어난 것이자 더 미시적으로 조사해 본다면 이는 서약을 위배한 게 아닌가? 이는 사부님을 속이는 요소가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감히 더 자세히 생각해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평소에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늦잠을 자고, 주말이 되면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법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종종 다른 일상생활에 바쁜 등등. 이는 또한 내가 지금까지 진정으로 걸어나와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서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법을 한창 베끼다 틀린 글자나 구절을 발견했을 때 내 사상에서는 이런 법이 반응되어 나왔다.

“물론 속인의 말로 하면, 예컨대, 아득히 긴 세월 속에서 우주 중생이 법을 벗어나게 되면 많고도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인데, 만약 우주의 중생 그가 우주 중에 법이 있음을 안다면, 그럼 어떤 생명은 아마 이 법을 고치려 할 것이다. 그것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마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대법이 존재하는 형식은 어느 층의 생명이든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북미 대호수지구 법회 설법》)

구우주 생명이 패괴(敗壞)한 표현의 하나는 자아를 수호하고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이 문제에서 인쇄본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지 않음은 바로 이런 구우주의 요소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부님께서 방법을 찾아내 제자를 점화(點化)하신 것이다.

사부님의 점오(點悟)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의 경험을 써내어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