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줄곧 살면서 ‘올가미’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가족은 모두 수련인이라 서로 법(法)으로 자신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때때로 모순과 교란이 나타나곤 했으며 게다가 사전에 모순이 발생할 아무런 원인도 없었다. 나와 남편을 예로 들자면 서로 호흡이 맞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내가 남편이 못마땅하거나 아니면 그가 나를 싫어했는데 이렇게 들쭉날쭉한 상태가 나도 지겨웠다. 때로는 그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후속 장면이 바로 머릿속에 나타나곤 했다. 왜냐하면 사람 이 층에서 말하자면 내가 그를 너무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인데 아마 남편 역시 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언행에 대해 나도 비슷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는 이미 우리를 크게 교란했다.
첫째, 우리가 서로를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대법의 그런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했으며, 이는 대법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가정 분위기도 좋지 않고, 아이도 안정적으로 교란받지 않는 환경을 갖지 못했다.
셋째, 둘 다 수련인이니 이런 내부 마찰은 많은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수련 상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며칠 전 한 차례 모순 중에서 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왜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나타난 모순과 문제도 하나의 틀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아도 보고, 발정념으로 교란도 제거하고, 가급적 상대방에게 좋은 말투와 선심(善心)으로 말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은 마치 견고한 얼음과 같았다. 위에 있는 얇은 한 층만 긁혔을 뿐 얼음 아래의 물은 전혀 건드릴 수 없었다. 즉, 내가 한 것은 단지 남편의 감성만 좀 건드렸을 뿐 본성의 일면은 건드리지 못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 예전 상태가 반복되었다.
이때 짜증, 경멸, 원한의 감정이 계속 나타났고 동시에 마치 남편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상대방의 단점이 온통 내 머리를 지배했으며 일종 희망이 없다며 실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남편을 받아들일 공간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법(法)에서 가늠하면 역시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바르지 못한 염두를 통제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올가미’란 단어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가 법에 있지 않은 이런 상태는 바로 ‘올가미’에 걸린 것이 아닌가?
남편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는 구세력이 하는 수법이 아닌가? 겉으로는 남편의 성격 때문으로 보이고 이 점이 사람을 미혹시킨다. 사실 남편이 한 일들 중 많은 것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또 불합리한데 그렇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는 자기 고집을 견지했다. 마치 누군가 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처럼 일단 작동하면 순서에 따라 실행될 뿐 다른 것들은 그에 대해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구우주의 기제가 아닌가?
남편의 행동은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때로 그의 이지적이지 못한 행동이 안전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악의 박해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 일은 반드시 이지적으로 해야 하는데 남편은 이런 것에 주의하지 않았고 안전의식이 아주 희박했다. 이런 기점에서 때로 그에게 마땅히 주의할 것을 알려주어도 그는 대부분 듣지 않았고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몹시 실망했고 마음의 문도 닫혔다. 나는 그와 관점이 달라서 대화도 매우 불쾌했기 때문에 그와 교류하거나 소통하고 싶지 않았고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간격이 있으면 모순이 생기고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지금 보면 이 교란은 사실 사악이 한 것으로 대법제자들의 수련 의지를 약화시키고 서로간에 내부에서 소모하며 대법제자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망치려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후 마음속에 정념이 올라왔고, 원래 모순과 문제 배후에는 사악의 요소가 숨어 있는 것을 똑똑히 발견했다. 나는 20여 년간 수련했음에도 아직 사악의 이런 수법을 간파하지 못했고 또 그 속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상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사람이 여전히 신을 믿을 수 있고, 또 사회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또한 모순 중에서, 곤란과 불공정을 마주하는 중에서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고, 우선 자신을 바르게 놓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어떤 신이 보더라도 모두 승복할 것인데, 그러므로 비로소 원만할 수 있는바, 당신들은 바로 이러한 생명이다.”
(《유럽법회에 참가한 대법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의 설법은 제자를 일깨워주었고 마땅히 무조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로 놓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지 않았고 밖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으려 했다. 이것은 법의 궤도에서 벗어났음에도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지 못한 것으로 이런 식으로 가면 점차 마도(魔道)로 가는 것이 아닌가?
공산사령(共産邪靈)의 무신론, 유물론 독해를 받아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눈앞의 거짓 현실이었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 어디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가를 볼 뿐 법에 대조해 자신의 어느 부분이 옳지 않은지 보지 않았다. 때문에 비록 자신이 상대방에게 한 말이 아주 옳다고 여겼음에도 상대방은 관심이 없었고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법의 기점에 서지 않았고 길을 바르게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의 가지(加持)가 없으니 상대방 본성의 그 일면을 흔들 능력이 없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문득 밝아졌고, 이전의 우울했던 마음이 법에 의해 소통되었다. 마침내 오랫동안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한 것이다. 원래 나는 진정으로 자신을 잘 닦지 않았고,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했으며, 강제적인 수단으로 남을 개변하려 했고, 위치를 바로 놓지 못했으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벗어났다. 진정으로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지 못했으며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남을 개변하려 했다. 이는 바로 구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특성이 아닌가? 이런 상태는 마치 올가미에 걸린 것과 같지 않은가?
수련에는 모범도 없고 또 지름길도 없다. 오직 착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하고, 법을 잘 배우며, 진지하게 법으로 가늠하고 신중하게 법으로 대조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법에 동화할 수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법 속에 녹아들어 가야만 비로소 법의 장엄함과 신성함을 깨달을 수 있고, 법에 의해 깨끗이 씻긴 후의 생명의 수승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