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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소하게 여긴 일

청죽(清竹)

【정견망】

나는 RTC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하는데 통화 중에 겪었던 일부 불쾌하지만 작은 일들, 특히 일부 속인이나 심지어 어린 아이의 욕설, 모욕 등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진상 전화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아, 전화를 받자마자 한 속인이 욕설을 퍼부었는데 아주 심할 때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당신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진상을 알려 당신을 구하려 하는 것으로 다 당신을 위한 것이다. 근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무지하고 옳고 그른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마음속에 원망, 증오로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어린 아이가 욕을 할 때면 사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부모나 교사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했다. 나는 자신을 완전히 속인으로 여기며 자신을 찾지 않았고 오직 다른 사람만 바라보았다.

나는 수련인이니 수련에는 그 어떤 우연한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러한 사람들과 이러한 일들이 나타난 것은 나의 소업(消業)을 돕고 원한, 분노, 쟁투 등 나의 사람 마음을 제거해 나더러 제고해 올라가도록 돕기 위해선다. 이 점을 인식한 이후 전화 통화에서 이런 일을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곧 경각심을 갖고 그런 사람 마음이 파문을 일으키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했다. 그가 욕을 다 끝낼 때까지 기다린 후 나는 평온하게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욕을 하는 것을 업을 짓는 것으로 당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나는 당시 그가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사람은 다 명백(明白)한 일면이 있어서 그의 명백한 일면이 알아듣고는 곧 욕을 멈췄다. 이 관(關)도 넘어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화를 걸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시스템에서 순서대로 전화번호를 부여받는데 종종 한참을 기다려도 번호를 배정 받지 못한다. 이렇게 기분이 이미 나쁜 상태에서 어렵게 전화번호를 얻어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마침 아주 관건적인 시점에 갑자기 협조하는 동수가 자리를 뜬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진상을 알린다. 나중에 시스템에서 알려준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지만 다시 전화번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아주 많이 겪지만 흔히 이런 일을 만날 때면 늘 자신도 모르게 동수를 원망한다. 그녀는 왜 이 모양인가? 내 시간은 아주 바쁘고 어렵게 시간을 짜내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하면 내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닌가?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이는 내가 사람 구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라 전화 진상을 하는 많은 동수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 즉, 이는 비교적 흔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단지 사람을 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수련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소홀히 한다면 그럼 제고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수련은 영원히 제1위인 것으로 오직 수련을 잘해야만 비로소 중생을 더 잘 구도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도리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문제는 다만 말로만 해선 안 되며 실제 행동으로 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하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렇듯 제고해 올라와서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정진요지》〈재인식〉)

사부님의 이 단락 법에 대조해 본 후 나는 명백해졌다. 수련인으로서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 그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은 다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더욱 신성한 일이라 여길수록 오히려 우리의 사람 마음을 더욱 폭로한다. 가령 동수가 갑자기 자리를 뜨는 행동은 사부님 안배로 나의 사람 마음을 폭로해서 내 집착을 제거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자신을 찾지 않고 반대로 동수를 원망했으니 다른 방면에서 말하자면 내가 사부님을 원망한 것이 아닌가? 자세히 생각해보라, 이것이 사소한 일인가? 이는 아주 엄숙하고 큰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반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수련의 일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속인 중의 기능도 아니며, 매우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心性(씬씽)을 어떻게 제고하는가에 달렸다.”(《전법륜》)

마지막으로, 나처럼 잘못된 인식을 지닌 동수들이 반드시 경각심을 갖고 이러한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고 자신을 잘 닦아 원만해서 사부님 따라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