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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

임동(林棟)

【정견망】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더욱이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다. 바로 일부 동수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역주: 고보자봉(固步自封)이란 작은 성과에 자만해 자신을 봉폐하고 전진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가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정법(正法)한 지도 이미 20여 년이 지났다. 이치에 따라 말하자면, 대법제자들은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마땅히 우리의 임무를 알아야 하는데 즉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 당신에게 대법제자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부분 다 알 것이다. 즉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 잡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사유를 마땅히 어떻게 바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노정을 따라잡아야 하는지는 오히려 제자마다 다 명백히 아는 것은 아니다.

개인 수련에서 정법 수련까지 인식이 명확하지 않았다

정법 수련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관련 법을 많이 말씀하셨고, 동수들 사이에 교류 문장도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 동수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는데 즉 자신의 몸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여전히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문제를 본다.

예를 들면, 우리 수련인은 순정(純淨)한 몸인데, 만약 외래의 진흙(집착심)이 우리 이 순정한 몸에 왔다고 하자. 만약 정법의 각도에서 인식한다면 이 진흙은 내 것이 아니니 그것을 제거하면 곧 일이 끝난다. 만약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인식한다면 나는 어찌하여 이런 더러운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이 더러운 것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내가 어떻게 해야 그것을 닦아버릴 수 있는가? 즉 본래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연구한 다음 그것을 없앨 것이다.

본래 정법 수련에서 일심(一念)으로 해결할 일을 결국 기어코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연구하고 연구한 후 제거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법 수련과 개인 수련의 차이다. 개인 수련은 느릴 뿐만 아니라 정법 노정도 따라잡을 수 없다.

법을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한다

요즘 어떤 동수들은 평소 법 공부와 연공에 아주 적극적이고 법도 많이 공부하지만 법을 얻지 못한다. 구체적인 표현은 바로 마난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여전히 사람의 관념에 지배당하고, 어떤 사람은 육체적인 교란이 심각하고, 어떤 사람은 사소한 가정 문제에 얽매이고, 어떤 사람은 2~3명 작은 공부 모임에만 만족한다.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홍음》〈착실한 수련〉에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 동수들은 법은 많이 배웠지만 법을 얻지 못했다. 즉 법리(法理)를 명백히 깨닫지 못했고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방법이 없으며”(《전법륜》), 살면서 관(關)을 넘길 일을 만날 때면 여전히 사람 생각이다. 관건은 또 일부 동수들이 그들과 교류할 때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스레 자신은 사부님 말씀을 따른다고 여기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으면 어떻게 한다고 말한다. 표면상으로는 마치 법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법에 있지 않다. 바로 ‘제자리걸음’인데 사상이 너무 협애해서 조성된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우리 자신이 모두 깨달을 수 있다. 어떤 구체적인 일은 사부님께서 모두 말씀해 주실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되돌아가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즉,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이다.”(《시드니 법회 설법》)

개인적인 깨달음은, 수련이란 1 더하기 1은 2처럼 고정된 방식이 아니며, 모든 일을 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이런 동수들은 법 공부를 매일 하는 임무로 간주하고 법을 다 읽기만 하면 끝이라 여긴다. 법을 공부한 후 법에서 무슨 법리를 깨달았는지 마음에 두지 않고 또 깨닫지도 않는다. 늘 생각하는 것은 어쨌든 사부님께서 계시니 때가 되면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실 거라 여기고 주동적으로 법을 깨닫고 법을 얻지 않는다. 이것이 맞는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이 법문은 주의식(主意識)을 수련하는 것으로 주의식을 수련하려면 당신이 명명백백하게 수련해야 하며 속인 중의 고생을 겪고 손해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법리에서 제고해야 하는데, 모두 마땅히 당신이 명명백백하게 닦아야 한다. 당신이 마땅히 닦아야 할 부분을 사부님께 미룬다면 옳겠는가? 경사경법(敬師敬法)이든 아니면 개인 제고든 모두 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정체 의식이 없다

어떤 동수들은 자신의 작은 집단에 국한되어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교류할 때 종종 내 수련만 잘하면 될 뿐, 남을 도울 능력은 없다고 말한다. 이런 동수는 엄격히 말하면 위사(爲私)한 것으로 근본 원인은 두려움과 자사(自私)다. 생각해 보라! 애초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연공장을 파괴한 것이다. 즉 사악은 우리가 정체를 형성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 동수들은 뜻밖에도 사악이 파괴할 필요조차 없이 스스로 자신이 흩어진다.

구체적인 표현은 동수 사이에 서로 믿지 못하고 어떤 동수는 오직 자신이 괜찮다고 인정하는 사람만 찾는데 다른 동수가 그의 집에 가서 공부하려 해도 거부한다. 어떤 동수는 한두 명의 동수를 찾아 함께 하는 것이 정체를 이룬 것이라 여긴다. 어떤 동수의 상태를 보면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높은 사부님, 이렇게 큰 법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지만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비참하지 않은가?

또 어떤 동수들은 사부님의 법(法)을 방어막으로 삼는다. 사부님께서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자신이 제고하지 않는 구실을 찾으며 주동적으로 법을 깨닫지 않고 법을 실증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큰 법을 당신에게 주셨건만, 예를 들어 당신은 완전히 수련해서 대학원생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법리가 분명하지 않아 제자리에 머물며 수련해서 겨우 중학교만 졸업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정체 의식이 없는 것은 지금도 표현되는데 예를 들어, 지금 션윈과 서방 대법제자들의 매체가 한창 사악한 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륙 대법제자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관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니 마땅히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당초 대륙에서 사악이 미친 듯이 탄압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 국외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폭로하고 사악을 해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 그들이 교란받고 있으니 우리 역시 마땅히 마음을 모아 협력하고 공동으로 발정념해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그런 사악한 요소를 해체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사악의 뿌리는 여전히 대륙에 있다.

현재 개인의 깨달음이니 옳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