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1. 신(神)의 삼위일체
신(神)은 삼위일체(三位一體) 상태가 있는데 하나는 진신(真神)이고, 둘은 진신(真身)이며, 셋은 사상(思想)이다. 반고(盤古)를 예로 들어 이 삼위일체 개념을 이해해 보자.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있는 소우주는 반고라 불린다. 소우주는 바로 작은 천체(天體)이며, 즉 반고의 신체(身體)인바 즉 그의 진신(真身)이다. 그의 사상은 바로 그의 그 한 층 우주를 구성하고 창조한 최고의 법리다. 그의 몸 어딘가에 또 그의 원신(元神)이 있으니 바로 그의 진신(真神)이며 진신이 머무는 곳이 바로 그의 신위(神位)다.
진신(真神)은 신위와 신체를 떠나 도처로 다닐 수 있거나 자신의 형상(形象)이 있다. 반고 진신(真神)의 형상이 바로 몸을 덮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의 형상이다. 진신(真神)이 신위로 돌아올 때를 가리켜 귀위(歸位)라 한다. 삼위일체는 더 고층차로 가면 사상과 진신(真身)이 합일한다. 진신(真神)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가 우주 어느 곳에 가서 놀든 늘 자신이 들어간 곳의 풍속에 따라야 하는데 그 한 곳 우주 공간의 사상(思想)에 따라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지니고 간다면 곧 다른 사람의 우주를 교란하고 개변(改變)할 것이다. 하지만 삼계 밖에는 미혹이 없기에, 그는 언제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그의 진신(真神)이 미혹의 인간 세상에 온다면, 그도 자신의 사상과 신체(身體)를 잊을 수 있는데, 자신이 신(神)이었음을 망각하고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만약 반고가 정말 인간 세상에 왔다면, 역시 우리가 그를 깨워주어야 한다.
우리가 법(法)에서 알다시피 대법제자는 일단 법을 얻으면 곧 신(神)이 된다.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이들은 사부님께서 모두 원래 위치로 밀어주셨다. 간단히 말해, 대법제자는 세 부류 중 어느 부분에 속하든 모두 신인바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 법을 얻으면 곧 과위(果位)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으로서 우리 역시 삼위일체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삼위일체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우리의 진신(真身)은 바로 나의 천체(天體)이자 나의 우주이며, 사부님께서 신우주로 밀어주셨기에 신우주의 구성 부분이 되었다. 모든 대법제자들의 우주를 한데 합하면 신우주 전부(全部)가 된다.
그러면 신우주를 만든 대법(大法)이 바로 우리 신의 사상이다. 간단히 말해, 나의 진신(真身)은 바로 신우주의 일부다. 나의 사상은 바로 신우주에서 내가 있는 층차에서 가장 높은 법리(法理)다. 신우주에는 나의 신위(神位)가 있지만, 우리의 진신(真神) 즉 주원신(主元神)은 그곳에 있지 않고 여전히 미혹의 인간 세상 속에 있다. 만약 우리가 중생을 구도할 책임이 없다면, 귀위(歸位)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사명을 완수해야만 귀위할 수 있다. 그러므로 720이 전환점인바 즉 이때부터 우리는 정체적으로 사람과 신의 전변(轉變)을 완성했고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과위(果位)의 최고점에 도달했다. 이 과정은 우리가 닦아낸 것이 아니며, 우리를 제 위치까지 밀어주신 분은 사부님이시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신의 삼위일체로 즉 하나의 정체(整體)이며 한 신(神)을 말하면 곧 삼위(三位)가 있다. 세 개체(個體)가 아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바로 주원신과 신체(身體) 및 사상(思想)이 한 사람을 구성하지만 세 개는 아니다. 간단히 이해하자면 내 신(神)의 3분의 1은 사람 속에 있고, 3분의 2는 신우주 속에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진신이 사람 속에 머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극히 작지만 완전한 한층의 사람 마음을 남겨 주셨고, 우리에게 하나의 사람 몸[人身] 및 사람 몸 위에 우리의 천목을 가리는 육안을 주셨다.
2. 구세력의 참여
구세력은 구도 받기 위해 우주 층층(層層)의 20%를 삼계로 밀어 넣었다. 구우주 신의 진신(真神), 즉 즉 신의 진명(真命)은 사부님께서 거둬가셨기에 모두 사부님 그곳에 있다. 그렇다면 삼계로 눌려 들어온 것은 구신(舊神)의 삼위일체 중 양위(兩位)인, 진신(真身)과 사상이다.
이런 것을 삼계의 범위에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구신은 삼위일체 중 삼계에 진신(真神)이 없고, 신우주의 신(神)인 우리는 삼계에 사상과 진신(真身)이 없다. 이에 이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충해 새롭게 하나의 정체(整體)를 만들었으니 즉 우리의 진신(真神) 즉 주원신과 구신의 사상과 진신(真身)으로 새로운 조합을 구성했다. 이에 삼계에서 우리는 구신의 법에서 벗어난 사상과 패괴(敗壞)된 후의 그들의 낡은 신체가 생겼는데 우리 사람 몸의 표면에서 반응되어 나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감수하는 집착과 업력이다.
신우주의 진신(真神)과 구우주 구신(舊神)의 사상과 사람의 진신(真身)은 본래 아무 연계가 없었다. 이 둘이 하나로 연계된 것이 바로 우리 사람 몸이다. 그렇다면 사람 몸은 바로 신구(新舊) 우주 생명을 공동으로 운반하는 매체가 되며 하나의 사람 몸을 같이 쓴다. 우리 사람 몸이 느끼는 사람 마음의 집착과 업력의 표현은 모두 구신(舊神)의 법에서 벗어난 사상과 그것의 패괴된 신체에서 온 것이다. 이는 또 다른 큰 착각을 조성하는데 이런 집착과 업력을 모두 자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람 표면의 각도에서 보면, 우리 사상 내원의 뿌리는 바로 두 개인데, 하나는 우리 진정한 자기에서 오는 것으로 바로 정념(正念)이다. 또 하나는 사람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것으로 바로 구세력(舊勢力)이다. 일념의 차이로 정사(正邪)가 크게 달라린다. 그러므로 법을 잘 공부하고 정념(正念)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주원신이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사람 이 층의 이치를 사용해 문제를 보면 곧 미혹당한다.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선해(善解)하는 배치 중에서 대법제자는 그렇게 미혹되지 않아 모두 자신이 신(神)임을 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작은 사람 마음을 남겨주셨어도 주도 작용을 할 수 없었지만 구세력이 참여하면서 개변되었다.
3. 사부님의 장계취계(將計就計)
구세력은 우리가 그들을 구도하려면 그들의 모든 업력을 감당해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은, 720 때 구세력은 우주 20퍼센트의 신(神)을, 우주의 모든 업력을 지닌 채 삼계로 밀어 넣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거대한 업력을 9개월 동안 감당하셨다. 만약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감당하지 않으셨다면, 눌려 내려온 이 업력은 곧 20%의 신들과 대법제자 전부를 훼멸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세력이 보기에 우주는 업(業)이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우주 정법의 방식이다. 이는 마치 죽어가던 노인이 목욕하고 깨끗이 세탁한 낡은 옷을 입고 신우주로 들어가려는 것과 같다. 더러운 물(구세력이 인정하는 우주 100%의 업력)을 삼계에 쏟아붓기만 하면 일이 끝난다.
이 시기는 대법제자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었고, 수련생이 생사를 내려놓고 걸어나와 법을 실증할 수 있는지 고험(考驗)이었다. 합격한 사람은 수련생에서 장차 반드시 원만할 대법제자(大法弟子)로 되었다. 불합격한 사람은 이후 수련에서 다시 보충 시험을 치러야 했다, 정체적인 한 차례 보충 시험이 바로 장쩌민(江澤民) 고소[訴江]였다. 생사를 내려놓음은 수련생이 대법제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이자 가장 기본적인 요구였다. 이는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해서 구세력의 배치를 이용해 대법제자 정체가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검증하신 것이다.
사부님의 정법은 중생을 갱신(更新)한 후 신우주(新宇宙) 성(成) 시기의 장엄하고 위덕(威德)을 지닌 신(神)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구우주 생명의 낡고 노화한 신체와 그들의 패괴된 이 일체 자체가 정법시기의 업력(業力)이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천체 중 80%를 하셨고, 전체 제자들이 삼계에 눌려 들어온 20%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들이 그들을 구도할 때 마주할 업력이다.
구세력의 배치는 우리 주원신을 구신(舊神)의 사상과 신체(身體)를 지니도록 조성했다. 우리더러 그것들의 변이된 일체 업력을 감당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거대한 관(關)과 거대한 난(難)의 내원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로 우리더러 그들을 이끌어 수련하게 하셨다. 이 양자의 차이는 저층차에서 즉 사람이 신(神)으로 수련하는 이 한 층차에서 사람 표면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구별하기 아주 어려운데, 정법 수련과 개인 수련이 구별되는 곳이다. 모두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저층차에서 보면 같지만, 고층차 중생구도의 기점에서 보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목적이 같지 않다.
구세력은 우리더러 사람 마음을 없애고 우리가 그들의 층차까지 제고해 그들의 모든 업력을 감당할 능력이 생겨서 그들이 구도 받는 목적에 도달하길 원한다. 구세력이 보기에 구도 받는 표준은 바로 예수가 그의 중생의 업력을 감당한 것으로, 구도 받는 중생의 업력이 사라져야만 그들이 구도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 마음을 제거해 진정한 자기(自己)를 찾고, 대법이 부여한 우리의 정념을 사용해, 구우주 뭇신[衆神]들의 일체를 바로잡아,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하게 해서, 그들을 신우주로 구도하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구세력은 우리가 업력을 감당하길 원하고,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길 원하신다.
여기서 가장 관건적인 부분은 바로 진정한 자기를 찾아야 한다. 이는 수련 중에서 하나의 전환점이다. 진정한 자기를 찾은 후, 당신은 자신이 정말로 사부님께서 제 위치로 밀어주신 신(神)임을 발견할 것이다. 이 기점에 서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 집착과 업력의 내원은 모두 구세력에서 온 것이며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업력이 없고 집착은 더욱 없다.
그러면 구세력은 우리에게 무엇을 배치했는가? 바로 구우주 중 구신(舊神)의 변이된 사상과 패괴한 신체를 우리 사람 몸위에 눌렀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집착과 업력은 모두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것이다. 우리가 어리석게도 이를 간파하지 못할 때, 업력과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집착을 자기(自己)로 간주하면, 그럼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이끌어 수련하고, 층차를 제고해서, 신우주의 요구에 도달하게 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구도해 신우주에 들어가 우리 세계를 충실하게 하길 원하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오직 심성 제고에 필요한 고만큼의 업력만 감당하면 된다. 실질적인 업력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하는 내함(內涵) 역시 달라지는데, 더는 개인 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는 문제이다. 구세력이 삼계에 눌러 넣은 신(神)들은 사부님에 의해 몇천만으로 나뉘었고, 몇천만 대법제자들에게 각자 한 부분씩 나눠주셨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를 잘 수련하면, 바로 우리가 분배받은 무량무제(無量無際)한 신들을 구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착이 없고 업력이 없으니, 진정한 자기와 우리 사람 몸이 느끼는 구신(舊神)의 집착과 업력을 구별해, 구세력이 우리에게 억지로 강요한 집착과 업력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업력과 집착이 있다고 승인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구세력의 박해를 받는 가장 큰 누락이자, 구세력이 우리를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면서 박해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당 문화 속에서 사악한 당을 욕하는 것처럼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우리는 업력과 집착이 없고, 표면 사람 몸의 사람 마음과 세상에 살아가면서 지은 업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생 구도는 대법제자의 사명이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편득(偏得 역주: 유일하게 얻거나 남보다 많이 얻음)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기를 찾고 사람 속에서 우리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진정한 자기에서, 신(神)의 기점에서 보면, 일부 법리(法理)의 내함에 대한 이해가 전과는 달라진다.
4. 수련제고 후 변화한 내함
정법 수련 중에는 개인 수련과 상반되는 이치가 있다. 즉 개인 수련 중에서 우리는 더러운 사람이며, 우리는 신(神)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이는 바로 구세력의 바람과 부합한다. 구세력은 사부님께서 제 위치까지 밀어주신 우리의 진신(真身)과 사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곧 우리를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우리가 당신에게 수련을 배치해 당신이 우리와 같아져야만 우리를 구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우주의 거대한 신(神)이라, 그렇게 높이 수련해야 하니, 그럼 당신에게 그렇게 큰 난을 배치해 당신을 신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의 사상이 여전히 사람이 신으로 되는 단계에서 문제를 생각할 때, 그럼 우리는 그것들의 배치 속에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수련해서 신(神)이 되기 위한 과정 중에, 구구(九九) 81난을 겪어야 한다고 인정했다. 우리는 또 거대한 고통을 겪고 심각하게 박해받은 그런 동수들을 떠받들었다. 이는 소도(小道)가 인간 세상에 남겨놓은 수련문화로, 뼛속 깊은 곳까지 사람의 관념이다. 이 이치는 죽어라고 우리를 사람의 사상 속에 자리매김한다. 정법 수련 과정 속에서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은 바로 법(法)을 얻는 그 순간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5》〈2018년 워싱턴DC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당신의 생명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성취되었다. 모든 대법제자는 삼계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당신 자신이 수련하겠다고 발심(發心)한 그 날부터 시작해, 당신은 바로 지옥에서 제명되었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만약 대법제자가 사망하면, 전생하지 않는데, 삼계의 관할에 속하지 않으므로 그는 삼계 중에서 전생하지 않는다. 또 지옥의 관할에 속하지 않기에, 지옥도 당신을 징벌하지 못한다. 당신은 오직 대법의 관할에 속할 뿐이다.”
우리가 진심(真心)으로 수련하기로 한 그날부터 우리는 바로 삼계(三界)를 떠났고 우리는 가장 순정(純正)한 신이 되었다. 720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과위의 가장 높은 곳으로 밀어주셨다.
우리는 신우주의 신(神)이니 구신(舊神)이 와서 우리를 수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신들을 잘 수련시켜 우리 중생으로 만드는 것이고 이는 개인 수련과는 정반대다. 신우주 왕(王)의 기점에 서면,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이 바로 우리 중생을 잘 수련시키는 것이다. 이는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데, 우리의 진신(真身)이 바로 신우주의 구성 성분이며 우리가 바로 우주(宇宙)다. 구도 받는 이런 신들이, 제아무리 크고 제아무리 높아도, 모두 우리 진신(真身)의 일부분, 즉 신우주 천체(天體)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우주의 기점에 서 있고 우리가 연마하는 것은 우주이지만 우리가 닦는 것은 여전히 자기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2》 〈대법은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다〉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당신의 일체는 곧 대법(大法)이 구성해 준 것이며 가장 바른 것으로서, 오로지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시정할 수 있을 뿐인데, 어찌 사악에 머리를 숙일 수 있겠는가? 어찌 사악에 그 무엇을 보증할 수 있겠는가?”
이때부터 우리의 상태와 자기를 수련하는 내함은 이미 중생에 의해 수련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수련하는 것으로 반대로 되었다.
안으로 찾고 집착하는 마음을 찾으면서, 진정한 자기와 대비(對比)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것의 내원이 구신(舊神)의 뿌리에서 온 것을 보고,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은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고, 사람 마음을 따라가면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신(神)이 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신(神)의 위치로 수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기 신(神)의 위치로 밀려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오직 제 위치까지 수련하는 것만 인정한다면 우리는 사부님께서 제 위치까지 우리를 밀어주셨다는 사실을 접수할 수 없다.
어떤 동수는 말한다.
“비록 우리가 제 위치까지 밀려 올라갔어도 우리는 아직 노력해서 수련해야만 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가 신(神)이라면, 왜 무슨 집착이 있고 병업(病業)이 있고 박해가 있는가?”
이것들은 모두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한 표현이다. 대법은 만능(萬能)이고 사부님께서는 만능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신(神)이 되는 것은 우리 수련의 목적이 아니고 서약 실현만이 목적이다.
5. 우리의 용량을 확대하자
만약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심성(心性)과 층차를 제고해, 우리 신우주의 용량(容量)을 확대해서, 구도 받는 생명들이 신우주에 들어가게 한다면, 구도 받은 이들 생명들의 업력은 두 부분으로 사라질 것이다. 한 부분은 우리의 심성을 제고해 우리의 용량을 확대하는 데 사용되는데, 우리는 수련 과정에서 오직 심성을 제고하는 고만큼의 업력만 감당한다. 우리의 용량이 확대된 후 신우주는 확대되어 보다 많은 중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후, 중생의 절대부분의 업력은 사부님께서 중생이 구도 되어 신우주로 진입하는 과정 중에 감당하신다. 만약 우리가 지속적으로 심성을 제고한다면 사부님께서 지속적으로 없애주신다. 중생이 끊임없이 신우주로 들어가도 업력이 쌓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업력이 어떻게 쌓이는지 살펴보자. 이는 세 가지 일을 히는 과정에 잘하지 못해 쌓인 것이다.
간단하게 진상을 알리는 일만 말해보자. 삼퇴(三退)에 동의한 사람들 그들 배후 우주체계(宇宙體系)의 거대한 부처와 거대한 신(神) 등이 우리 신우주의 천국세계로 들어가길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의 심성이 제고되지 못해서 여전히 뭇신들을 이끌어 잘 수련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 우리 신우주의 대문인 우리의 흉금이 용량이 부족하면 이런 신들이 장차 편히 쉴 곳이 없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난(難)을 가해 우리의 용량을 확대하려 하는데 우리 개체 표면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병업이다. 이것이 바로 왜 많은 노동수(老同修)들이 진상을 아주 잘했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삼퇴시켰음에도,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거나 어떤 이는 차량에 치어 병원에 입원하는 원인이다. 이것은 우리의 용량이 충분히 크지 못해서, 즉 심성을 제고하는 속도가 사람을 구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대법제자는 생생세세(生生世世) 업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더 많아졌지만, 심성 제고가 따라가지 못해 그렇게 많은 생명을 수용하지 못해서 업력이 더 많이 쌓인 것이다.
한 지역의 용량이 충분히 커지지 못하면 곧 납치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만약 정체 대법제자들의 용량이 충분하지 않고 심성 제고가 너무 느리면, 절망한 뭇신들은 장차 쌓인 15%의 업력을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눌러 정법을 파괴할 것이다. 바로 이때, 사부님께서 우리 앞을 가로막으셨다. 때문에 무량무제(無量無際)한 구신(舊神)들이 사부님께 창끝을 겨눈 것이다. 이 업력은 중생 구도 자체에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못하고, 자신의 용량을 확대하지 못해, 수용하지 못한 뭇신들이 쌓은 것이다. 물론 그래도 가장 주요한 것은 대량의 대법제자들이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인데, 이는 720을 지나온 노제자들을 가리킨다.
[역주: 720을 지나온 노제자들 중 상당수가 대열에서 떨어져 나감에 따라 그들이 수용했어야 할 뭇신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이렇게 쌓인 업력을 남은 대법제자들에게 압박했다는 의미]
천체(天體)의 정법은 이미 완성되었고 남은 천체 중 80%는 이미 사부님께서 완성하셨다. 삼계로 눌려 들어온 20% 중 대법제자들이 서약을 완성한 것이 5%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이 15%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15%의 업력이란 바로 우리 대법제자 정체에 분배하신 삼계에 눌려 들어온 20%의 4분의 3 즉 75%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탓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거대한 업력을 감당하실 때조차 우리가 대법에 견정(堅定)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상황이 여기에 이른 것에 우리 매 사람 모두 책임이 있으니 서로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뼈를 깎는 마음으로 안으로 찾아 절망적인 뭇신들에게 구도 받을 희망을 보여줘, 뭇신들이 평온해져서 사부님께 업력을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오로지 심성을 제고해 뭇신들이 탄복하게 만들어 대법의 구도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 자체가 바로 우리의 책임이자 뭇신을 구도하는 것에 대한 약속이다. 구도할 수 없는 패물(敗物)에 대해서는, 대법의 위엄으로 단호하게 정념(正念)으로 근절해야 한다.
다년간 수련해 온 대법제자들은 다시 정진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생사를 내려놓았으니 다시 몇 번이 온다 해도 개의치 말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연장해 주신 시간을 더는 낭비해선 안 된다.
우리 매 하나 사람 마음의 배후에는 모두 구도를 기다리는 무량무제한 중생이 있다.
그럼,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아직도 ‘우리’가 불만을 품은 사람과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와 속인 사이에, ‘우리’와 동수 사이에 풀리지 않는 마음의 매듭이 또 얼마나 많이 있는가?
대법에 대해 ‘우리’가 여전히 풀지 못한 의문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사람 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할 것이 얼마나 되는가? 언제까지 밖으로 볼 것인가?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박해 중에 떨어져 내려갔는가?
우리 진정한 자기가 우리의 사람 표면을 주재해 본래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집착을 닦아 버리게 하자. 대법으로 구성된 우리의 본성,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한 진정한 자기가 와서 사람 표면을 주재하게 하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즉시 어떤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현재 있는 층차에서, 우리 층차가 아무리 높든 아무리 낮든, 모두 진지하게 법을 공부하고 착실하게 안으로 찾아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제고하고, 한 걸음 더 제고해서 대법 노정과의 거리를 단축한다면 신우주는 끝없이 확대될 것이다.
나는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방식을 막론하고, 나는 늘 담담히 사지(死地)로 나아갈 것이다. 단지 사람 생명만이 아니라, 신(神)의 생명을 사용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 중에서 용감하게 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주 중생에 대한 대법제자의 자비와 위엄이며, 사부님에 대한 더 깊은 참회이다.
본문에서 교류한 것은 세 가지 일 중 첫 번째 일, 즉 법공부를 잘하고 자기를 잘 닦는 것에 대한 개인의 작은 인식과 생각이다. 진상 알림과 발정념 두 가지 일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두 가지 일을 중시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본문 중에 법(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주: 필자의 삼위일체에 관한 깨달음은 사부님의 다음 두 설법에서 왔다.
1. 《각지 설법 2》〈2003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설법〉
2. 《각지 설법 3》〈대뉴욕지역 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