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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법을 경계해 미연에 방지

신우(晨雨 새벽 비)

【정견망】

많은 대법제자들이 공능(功能)을 드러낼 수 있는데 나 역시 일부 공능이 나타났다. 이런 상태는 수련에 대한 나의 신심(信心)과 정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또 일종의 고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공능에 대해 과시심, 환희심, 구하는 마음, 자신을 높이는 마음, 특수한 마음, 숭배심 등의 집착심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주 중에는 도처가 다 신(神)이고, 모두 신통(神通)을 지닌다. 우주 중의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공능을 지니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다. 심지어 작은 식물조차도 인류와는 달리 타심통(他心通) 공능이 있으니 수련인은 공능을 담담하게 보아야 하며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천목으로 본 것은 진짜와 거짓, 옳고 그름, 정사(正邪)를 구별해야 하며 절대화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하여 어느 한 층차 중에 이른 사람, 그는 단지 그 한 층차 중의 광경을 볼 수 있을 뿐, 이 층차를 넘어선 진상을 그는 보지 못하며 믿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 한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전법륜》)

대법제자들은 아직 수련 단계에 있고 완전히 개공개오(開功開悟)한 것이 아니라서 자신이 본 우주 상황에는 한계가 있다. 설사 진상(真相)이라 해도 국부의 진상이며 보다 고층차 또는 보다 큰 범위에서 보면 꼭 진상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보다 많고 보다 높은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자신이 본 것만을 믿는다면 그 속에 빠지기 쉬우며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다.

사악한 생명도 교란할 수 있으며 의도적으로 가상(假象)을 만들어 우리를 미혹시킬 것이다. 집착심이 있을 때면 가상이 오는 것도 더 많아지는데, 아마 우리 자신이 여전히 의식하지 못한 그런 집착심이라도, 사악은 오히려 이미 보고 가상을 만들 수 있다. 진짜와 가짜가 한데 섞여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천목이 열린 사람은 경계심을 조금도 늦출 수 없으며 청성(淸醒)과 이지를 유지하고 조심해서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때로 공능을 통해 본 일부 법리(法理)나 또는 스스로 ‘고층 법리’라고 여기는 깨달음에 대해, 수련인은 자중(自重)해야 하며 함부로 남에게 말하고 의도적으로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아주 높고 우주의 진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수련을 지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아울러 다른 사람을 쉽게 오도해 난법(亂法)하는 죄를 짓기 쉽기 때문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물론 일부 사람이 종교를 창립했는데, 초기 목적은 그가 정교(正敎)를 파괴하는 마(魔)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동한 층차에서 개공개오하여 조그마한 이치를 보았지만, 그는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覺者)와는 차이가 너무 크며 그는 아주 낮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은 다 말씀하셨고, 법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으니 대법제자들이 법 공부를 통해 심성을 제고하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모두 얻을 수 있고 일부러 밖으로 구할 필요는 없다.

난법 이런 일은 성격이 아주 나쁜 것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지만 때로는 쉽게 관찰하기 어렵다. 내 기억에 전에 공능이 있는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는 공능으로 본 내 수련의 일부 정황을 말해 주었다. 사실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당시 내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고 법리도 명확하지 않아 그의 말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얼마 후 한몫의 돈을 잃었다. 나는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지만 사부님께서 내가 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점화해주셨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모두 말씀하셨다.

“개변 후의 당신의 이 길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이 본 후에 당신의 어느 일보에 난이 있음을 당신에게 다 말해 준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그러므로 전혀 보지 못하게 한다. 다른 법문의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하고, 동문(同門) 중의 제자도 모두 보지 못하게 하기에 누구도 맞게 말하지 못한다.”(《전법륜》)

공능을 사용해 함부로 다른 사람의 수련 상황을 보고 또 일부러 이를 전하는 것이 바로 난법이다. 다른 한편, 대법제자는 마땅히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공능을 지닌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이는 원칙 문제이며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엄격하게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할 수 없다면 곧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이고, 이는 누락이 있는 것이라 사악이 곧 틈을 탈 수 있다.

나는 자칭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한 명 아는데 자신이 깨달은 “고층차의 법리”를 자랑스레 말했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교류하다가 나중에 큰 면적으로 교류했지만 오히려 진상은 알리지 않았다. 현재 그는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강연 난법자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자칭 반개오(半開悟)해서 수련하는데 겉으로 보면 사부님을 아주 존경하는 것 같지만 말을 함부로 했다. 자칭 가장 높은 구세력을 볼 수 있다거나, 자신이 본 것은 모두 진상이라고 하는 등등. 그는 다른 공간에서 사마(邪魔)의 엄중한 교란을 받았으나 벗어나지 못했고 늘 일부 명백한 잘못을 하면서도 자신은 모른다. 또 다른 두 명의 공능을 지닌 사람들이 대법을 파괴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공능이 있는 사람이든 강연을 들은 사람이든, 모두 이성을 지키고 난법을 경계해서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정법(正法)에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