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월(曉月)
【정견망】
얼마 전 유모를 고용했다가 나중에 어떤 이유로 그만두었다. 유모가 자신이 쓰던 옷과 다른 물건들을 가지러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보모에게 전에 쓰던 전기담요, 손난로 등을 다 주었다. 하지만 유독 전기포트만은 줄 수 없었다.
며칠 전 전기포트를 사무실로 가져가 물을 끓여 차 세트와 기타 물품을 닦았다. 마지막에 전기포트도 청소했는데 결국 앉아 있는데 ‘펑’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났다. 확인해 보니 전기포트를 청소할 때 실수로 물에 넣어 전기포트가 합선된 것이다. 결국 고칠 수 없어서 버려야 했다. 차라리 그때 보모에게 주었더라면 아마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마음속으로 후회가 가득 찼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의해》 〈창춘 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가 왜 여러분에게 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석가모니는 이천오백 년 전에 그들이 돈과 재물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을 거느리고 심산 수림에 가서 수련하였다. 오로지 동냥하는 사발 하나만 있었을 뿐인데, 또 이 동냥 사발에 대해 한 차례 설법하였다. 동냥 사발마저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련인은 마땅히 득(得)과 실(實)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지금 나는 뜻밖에도 (전기포트가 내게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전기포트조차 내려놓지 못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속인이라도 늘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일을 너무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보다시피 많은 공무원들이 일단 무엇을 집착하게 되면 모두 자신을 끌어내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옥석(玉石)에 집착하고 서예나 그림에 집착하거나 또는 다른 무슨 풍수 등에 집착하는 등이다. 무엇이든 중시하면 다 번거로움이 된다.
나는 무엇에 집착하는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은 다 내가 쓸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주고 싶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점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전히 자사(自私)한 표현임을 발견했다.
수련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자연스러움에 따라 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3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