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니(曼妮)
【정견망 2005년 12월 23일】
동수의 고무와 격려 하에 나는 《낡은 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가정관계를 잘 원용하자》라는 문장에서 언급한 꿈에 대해 좀 상세히 정리해보았다. 이 꿈은 나로 하여금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이 다 우연한 것이 아님을 점화해주었고 더구나 부부의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대법 수련인으로서 부부간에 부딪히는 매 하나의 모순은 모두 자신의 씬씽(心性)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는 2002년 남편과 결혼한 후에 사부님께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저는 반드시 미래에 한 갈래 길을 남겨놓겠습니다”. 법신상 앞에서 사부님의 법신을 뵈니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계셨고 연화수인 속에는 한 떨기 수정으로 만든 연꽃 봉오리가 있었다.
내 기억에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수련생이 이혼 문제를 제기하자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미래에는 이런 일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아태지역 수련생회의에서의 설법) 나는 이 문장을 보고 격동되었고 또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알고 계신다.
그 당시 우리 부부가 모순이 컸을 때 남편은 심지어 내게 손찌검까지 했다. 나는 극도로 마음이 상했고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친정에 돌아간 그날 밤에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때는 14세기에서 16세기의 영국으로 의복은 모두 그 시대의 것이었다. 당시에 여자들은 받침이 있는 치마를 입었고 남자들은 연미복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다. 남편은 그때 나의 약혼자였다. 알렉스 알렉산더(Alex Alexander)라는 이름의 공작이었는데 아주 오만하고 자긍심이 강했다. 나는 황실의 딸이었으며 가정교육이 매우 엄하여 성격은 아주 전통적이고 성실하여 꾸미는 말이나 교묘한 말을 할 줄 몰랐다. 나는 조용히 독서하거나 꽃밭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내 이름은 지금 나의 영문 이름과 같은 마리온(Marion)이었다. 당시 양가 집안이 엇비슷해서 그와는 일찍이 정혼한 사이였다.
어느 날 약혼자의 장원에서 그는 한 무리 상류사회 남녀들을 초대하였다. 이층 무대위에서 나는 아주 섹시한 여인을 보았는데 그녀는 남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사교계의 꽃이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녀는 내 약혼자와 아주 친밀하게 굴었다. 약혼자가 장차 결혼할 사람으로 나를 소개하자, 그녀는 아주 득의만만한 눈빛으로 약혼자가 좋아하는 것은 자신처럼 육감적인 여인이지 나처럼 고리타분한 여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이 사갈 같이 독한 마음을 지녔으며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기 보다는 그의 지위와 명예를 이용해 자신이 아주 거만한 남자도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이 상해 그곳을 떠났다. 나는 언젠가 약혼자가 이 여인의 진면목을 똑똑히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며 반드시 후회할 것임을 알았다.
그 후 나는 줄곧 울면서 거리를 배회했다. 나는 갑자기 닥친 이 곤란을 어떻게 타개해야할지,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할지 몰랐으며 마음속에는 온통 수치심과 분노로 가득 찼다. 당시 상류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수치스런 것에 속했다. 마침 내가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때 나는 황궁 부근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광대는 키가 매우 컸으며 불을 토해냈다. 그 옆에서는 또 한 사람이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다. 단지 나만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지금 현생의 모습과 똑같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나는 이렇게 상심하지 말고 당연히 사부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당시 나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잠시 보다가 곧 그곳을 떠나버렸다. 고요한 템즈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이때 약혼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내 기억에 그가 타고 온 것은 아주 예쁜 마차였으며 그는 나를 데리고 장원으로 돌아갔다.
장원에 들어가자 나는 거대한 조각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받침대만 해도 사람 키 높이 정도였다. 받침 위에는 한 기사가 큰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고 조각상 전체에는 금을 입혀 아주 웅장하게 보였다. 받침에는 Marion Alex Alexandar라는 세 단어가 새겨져있었다. 나는 당시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 이름과 그의 성을 함께 새겼을까?” 장원 안에는 또 다른 많은 조각들이 있었으며 받침에는 모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장원 곳곳에 내 이름이 없는 곳이 없었다.
꽃밭 중심에는 큰 분수대가 있었으며 분수대에는 많은 꽃이 피어 있었으며 또 조각이 많이 있었다. 분수대는 금을 입힌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분수대 뒤편에는 아주 큰 빌라가 있었다. 장원 안에서 바삐 움직이던 수많은 하인들과 정원사들이 바삐 나를 보자 약혼자는 그들에게 나를 부인으로 부르게 했고 진짜 부인처럼 존경하라고 했다.
하인들은 마치 일찍이 공작의 일을 아는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공작이 자신의 행동을 매우 후회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그 여자의 진면목을 알아차렸지만 벗어날 수 없었고 이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 정원을 내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하인들은 나를 매우 동정했으며 또 매우 존중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으며 내가 이 일체를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당시에는 한 여인의 명예가 그렇게 중요했다.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상심해서 그곳을 떠났다. 나는 걸어가는 한편 눈물을 흘렸는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때 장원 안에서 또 네댓 명의 악사들이 나를 위해 음악을 연주했는데 모두 은은하면서 슬픈 곡조였다.
꿈에서 깬 후에 내 마음은 또 아파왔는데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다.
1993년 10월 나는 위에루산(岳麓山) 사찰에서 처음으로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께서 저를 보우하사 금생에 정과(正果)로 수련성취 할 수 있기를 비옵니다.”
당시 내가 눈을 감았을 때 거대한 부처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고 허허 웃으시면서 손에는 염주를 들고 계셨다. 큰 부처님이 엄지손을 내게 향하자 염주가 한 알씩 내게 날아왔는데 모두 9알이었다.
1993년 11월(당시에는 내가 법을 얻기 전이다) 나는 사업차 영국 런던을 방문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놀러갈 기회가 있었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 나는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벽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도 전부 낯이 익었으며 마치 모두 내 친척처럼 느껴졌다. 런던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길을 잘못들 지도 않았으며 마치 내 집 정원을 거니는 것 같았다. 버킹검궁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자신이 이미 그곳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일찍이 내게 우리들의 전생 이야기를 약간 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는 중화민국시기(국민당 정부 시절)였는데 그는 국민당의 고급군관이었으며 한국에 들어가 일본인을 암살했다. 이 일이 발각되어 추격을 당하다가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한 대갓집의 후문이 열리면서 한 소저(小姐)가 나와 그를 구원했다. 그 소저가 바로 나였다. 당시 소저는 군관을 사랑했으며 그가 그곳에 남기를 원했다. 군관 역시 소저에 대해 애모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항일(抗日)을 위해서는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고, 그는 그녀에게 내생을 기약하자고 말했다.
2003년 중국국가안전부의 추적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구이린(桂林)에 간 적이 있다. 한 차례 발정념을 한 후에 나는 천상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편은 거대한 용마(龍馬)였는데 머리는 말이고 몸은 용이었다. 은빛 나는 용마의 몸은 몇 리에 이를 정도로 아주 길었다. 나는 신체가 없는 무형의 생명이었지만 구름을 모은 것처럼 형상을 만들어 용마와 함께 놀았다. 용마는 내 몸을 뚫고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었다. 또 작은 구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 아이였다. 용마는 아이와 함께 아주 즐겁게 놀았다.
(영문위치 : http://www.pureinsight.org/pi/index.php?news=3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