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캐나다에 도착했고, 신세기의 영화와 TV에서 딱 1년 1개월의 세월을 보냈다. 작년 5월 말에 이 땅에 처음 상륙했을 때의 어리벙벙함, 처음 신세기 영화사에 온 낯설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미소와 사랑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천천히, 이 신성한 환경 속에서 나는 점차 스며들었고, 신세기 영화사의 동수들과 아침저녁으로 함께하는 친구가 되어 여러분과 함께 수련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하게 되어 영광이다. 때때로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치 꿈처럼 따뜻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힘이 넘치는 것을 느낀다.
1. 마음속 깊은 곳의 집착을 발견하다
해외에 있으면서 자유로운 공기는 우리가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더 이상 여기저기 숨지 않아도 되었고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깊은 곳에 숨겨둔 나의 몇 가지 집착도 드러냈다.
1995년, 엄마가 법을 얻어 몸과 마음에 이익을 보았고, 우리 가족도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그 당시 나는 막 여섯 살이었는데 이제 나도 36살이다. 30년 동안 법을 배워 “진선인”은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흔들리지 않는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은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천안문 거짓 분신 사건’을 짜깁기 해냈다.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뉴스를 보고 나서 첫 반응으로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은 법에서 자살의 결과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같은 초등학생도 다 알고 있는 이치인데, 진정한 성년의 대법제자가 어떻게 분신이나 자살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순진하게 다른 사람들도 이 이치를 이해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속은 세상 사람들은 이 일의 신뢰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중국 공산당을 따라서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사부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히 했다. 왜냐하면 나는 중국 공산당의 재생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이 발생한 후 법리에 서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대법에 따라 해야하며, 조금의 나태함도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르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세월 법을 배우면서, 나는 결코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단지 속인들의 “정”을 수련해서 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다투는 것은 다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비교적 친한 동료 중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만약 언젠가 우리 둘이 경쟁 관계라면, 나는 반드시 너를 밟고 올라갈 거야.”
저는 그때 듣고 진심으로 말했다.
”당신은 나를 밟고 올라갈 필요 없어요. 제가 양보할 수 있어요.”
사실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항상 약간의 “우월감”이 있었다: “나는 여러분과 다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깊숙이 깔려 있다는 걸 나도 몰랐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동생에게 <진수>를 외우라고 해서 잘 외웠고, 경문에 나오는 대로 다 외운 것 같았다. 수련을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고, 사부님의 보살핌이기도 했다. 어떤 좋은 일들은 내가 다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비록 내 나이는 많지 않지만, 승진은 매우 빨랐다. 이미 국내 3급 병원에서 중간 관리를 하고 있으며, 과장하지 않고 말하면 밀어내려고 해도 도저히 밀어낼 수 없었다.
내가 해외에 나온 1년 동안 국내에선 상관도, 동료도 내가 있던 날을 그리워했고, 심지어 내가 공직에서 물러난 그해 말에는 좋은 영예를 안겨줬다. 그래서 가끔 엄마와 아빠와 통화할 때, 나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곧이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움에 빠지게 되었다. 때로는 낙담하고 허전해지고, 심지어 그 속에 빠져 나오기 싫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그만 좀 말해, 이건 너를 끌어내리는 거 아니야?” 그날 밤, 나는 갑자기 많은 것을 깨달았고, 심지어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명리심까지 찾았다. 사부님은 경문 ‘진수’에서 말씀하셨다:
“수련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신들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들은 비로소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마침내 내가 왜 해외에 왔을 때 늘 힘들고, 슬프고, 소외감을 느끼는지를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전의 모든 것이 꿈처럼 물거품처럼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의 명예와 이익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사부님은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전법륜>)라고 하셨다. 이것은 정말로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제고해야 한다고 느꼈다. 비록 마음 깊은 곳에서 완전히 내려놓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이것 또한 내가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다. 내가 진정한 대법제자라면 반드시 제고해 올라올 것이며, 나는 반드시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직업 때문에 주변의 친척과 친구들과 몇몇 아는 사람들이 아프거나 늙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몇몇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후의 경험, 특히 일반 사람들의 다양한 소설을 볼 때, 마치 내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느낌이 들고 가족이나 친구가 떠난 것에 대한 슬픔에 잠기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내가 그녀를 따라갈” 그런 강한 감정이 아니라, 단지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짧다는 것을 감탄하고, 사망 후 직면해야 할 어두운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러한 감정에 휩싸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해야 할 때도 있었다. 사색 중에 나는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수련을 잘해야 하며 나는 원만하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우연히 이 집착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깨달았다.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생사를 벗어나려는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사리사욕이 아닐 수 없다. 수련은 순수해야지, 바라는 바가 있어서는 안된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을 했는데, 수련할수록 점점 더 ‘구하는 마음이 있는지’ 너무 무섭다!
사부님은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말씀하셨다:
“집착을 가지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 인식하여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의 사후에 관한 엉망진창인 소설들을 절대 보지 않았고, 내 앞길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내 모든 것은 대법에 맡겼고, 나는 단지 잘 수련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2. 아름다운 수련 환경
신세기 영화사와 함께 보낸 이 1년 1개월 동안, 이 동료 배우들을 보며 매일 열심히 수련하고, 진상을 이야기하며, 좋은 역할을 열심히 연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늘 부끄러웠다. 여기서 나는 천천히 내 몸 속에 싸인 자기 보호 물질을 열었다. 나는 신세기의 배우들과 함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연습하며, 가끔 극 중 역할에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신세기 영화사 제작의 일원이 되어 일부 영상 제작의 기초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결코 이것이 부담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속에서 즐거웠고, 내가 맡은 일을 매우 즐겼다. 나는 내가 속한 부서에 매우 감사한다. 동료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고, 아낌없이 학습 지식을 알려주어서 빠르게 업무 환경에 적응하고 융합할 수 있었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무에서 유로, 이야기의 초기 형태에서 완전한 예술 작품 형성까지, 모든 사람의 부지런한 노력, 완벽한 협력, 상호 이해, 공동의 목표가 스크린에 나타나게 하여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다. 이 대가족은 따뜻한 우정과 팀워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촬영 중 완벽을 추구하거나 시청자에게 최상의 시각적 효과를 주기 위해 일부 장면은 여러 번 재촬영할 수 있다. 여기에는 배우들만 수고하는 게 아니라 촬영 스태프들의 노력도 담겨 있으며, 각 장비의 무게가 가볍지 않아 지속적으로 장비를 들고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야외 촬영을 할 때, 혹한이든 혹서든 모두가 그 속에서 기뻐하며 불평 없는데 가장 아름다운 진상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나태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면 스스로 마음속으로 부끄러워진다. 알고 보니, 좋은 환경은 정말로 한 사람의 심경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훌륭해지고 싶다면, 당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은연중에 영향을 미치면, 당신도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촬영팀의 생활은 평범하지만, 하나하나씩 비범함을 창조하고 있다. 각 작품이 개봉을 마치고 엔딩의 선율이 울려 퍼질 때, 머릿속에는 항상 처음 찍은 순간들이 맴돌았다. 신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한다. 한때, 나도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신세기 영화사와 같은 선량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을까? 해외에 왔으니 앞으로 수련의 길을 더욱 굳건히 걸어야 한다.
3. 맺는 말
수련의 발걸음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사부님은 ‘법 중에 용해되자’에서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의 한마디가 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 오늘날 인류는 그 함의를 진정하게 아는 사람이 이미 없다. 당신들은 아는가? 한 사람의 사상 속에 이미 법을 담았다면, 법을 담은 그 일부분은 법에 동화(同化)된 것이 아닌가? 도(道)를 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 그 한 부분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집착심을 많이 제거하여 사람의 각종 관념을 내려놓으라고 함은, 당신들에게 일부분만 갖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 원만하라는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숨겨진 집착을 버리고 더 순정하게 수련하여 내 세포 하나하나가 ‘진, 선, 인’에 녹아들도록 하고 나는 항상 스스로를 격려할 것이다. 사부님의 ‘진수’ 속의 한 구절로 여러분과 함께 한다.
“부처(佛)는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해 일찍이 속인 중에서 동냥했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大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어도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함께 손잡고 노력하여 사명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최후의 최후에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님들 감사합니다! 이상의 교류에 부적절한 점이 있으면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2025 신세기 영화사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원고)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6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