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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의 길을 굳건히

옥초(玉草)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대법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노대법제자다. 당시 나이는 젊었지만 온몸이 병들어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고, 빨래와 밥 짓는 일까지 모두 남편이 했다. 법을 얻은 지 한 달 만에 모든 병이 나았고, 걸을 때 몸이 가벼워졌으며 자전거를 탈 때는 정말 누군가 밀어주는 것 같았다. 집안일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이 대법은 너무나 훌륭하니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당시 법을 얻은 사람이 많았지만 글을 아는 동수(同修)들이 적어서, 나는 현지 보도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는 당시 수천 명이 수련하고 있었다. 모두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당시 환경은 매우 아름다웠고, 모두가 화기애애했다.

1999년 4월 25일 상방(上訪)에서 돌아온 후 7월 20일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우리 집은 한시도 평온하지 못했다. 파출소에서 이삼 일에 한 번씩 집에 찾아와 괴롭혔고, 아이들은 늘 불안해했다. 세인들이 거짓에 속지 않도록, 대법 진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 견정한 대법제자들은 천안문에 가서 법을 증명했다. 세인들에게 진상을 전면적으로 알린 후, 우리는 대대적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9평》을 배포하며, 대법 현수막을 걸었다. 한번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고발당해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딸은 겨우 일곱 살이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정말 오늘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 구 당위원회 610 사무실이 세뇌반이라는 불법 감옥에서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던 때가 기억난다. ‘전향’을 피하기 위해 우리 몇몇 대법제자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동굴에 숨었다. 여름이었는데 동굴 안에는 모기가 아주 많았다. 우리는 동굴에서 연공했는데 얼굴에 모기가 달라붙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점화해 주셔서 우리는 산을 내려와 어느 대법제자의 집으로 옮겼다. 나중에 누군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집에 도착해 목욕을 했는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곳은 이미 경찰에 포위되어 있었다. 그들은 총과 사냥개까지 데리고 왔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북경에 가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날마다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다시 고발당해 국보와 610사무실에 의해 불법 체포되었다. 당시 나는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나는 그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을 배우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대법 사부님께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라고 가르치신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렇게 다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등 수많은 마난을 헤쳐 나왔다. 지금 나는 평온하게 정법의 길에서 걷고 있다. 비록 수련을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 나는 반드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