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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범(揚帆)

【정견망】

사부님께서 《전법륜》 세 곳에서 ‘집’을 언급하셨으니, 수련인에게 집이 얼마나 큰 집착인지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말로 내려놓아야 한다. 우선 《전법륜》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함께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직장에서 지금 집을 분배하고 있는데, 이 집들 중에 내 것이 있을까? 집을 분배하는 사람은 어떠어떠하게 나와 알력이 있다.’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난다. ‘그는 틀림없이 나에게 집을 주지 않을 텐데, 나는 그와 어떻게 한바탕 해볼까…….’무슨 염두이든 다 있다.”(제5강 사법연마)

“당신이 단전을 내시하면 그 단(丹)이 반짝반짝 빛나 대단히 좋게 보이다가, 잠깐 사이에 이 단(丹)이 변하는데, 곧 집으로 변해버린다. ‘이 방은 내 아들의 결혼에 쓰고, 이 방은 내 딸이 있고, 우리 늙은 부부는 이 방에 있자. 중간은 거실인데 참 좋구나! 이 집을 나에게 줄 수 있을까? 나는 방법을 대어 그것을 가져야 되겠는데, 어떻게 할까?’”(제9강 청정심)

“예를 하나 들자면, 어느 날 직장에서 집을 분배하는데, 상사가 말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모두 와서 조건을 내놓도록 하라. 개인적으로 어떻게 집이 필요한지 말하라.” 제각기 자기 말을 하지만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상사가 보니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곤란해 마땅히 그에게 집을 줘야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안 된다. 집을 그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나에게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떠어떠하게 집이 없다.” 그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이 가져라.” 만약 속인이 본다면 이 사람은 바보다. 어떤 사람이 그가 연공인(煉功人)임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 연공(煉功)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데,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가?” 그가 말했다. “남들이 무엇을 가지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가지겠다.” 사실 그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으며 상당히 똑똑하다. 바로 개인의 절실한 이익상에서 그는 곧 이렇게 대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되묻는다. “지금의 사람이 무엇인들 가지지 않겠는가?” 그가 말했다. “땅 위의 돌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가지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 나는 그 돌을 줍겠다.” 속인은 불가사의하다고 여기는데, 속인은 연공인(煉功人)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방법이 없으며, 사상경지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고, 벌어진 층차가 너무나도 크다. 물론 그는 그 돌을 줍지는 않을 것인데, 그는 속인이 깨닫지 못하는 이치를 말했다. “나는 속인 중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이 돌을 말해 보자. 여러분이 알다시피 불경(佛經) 중에 쓰여 있다. “극락세계의 나무는 금이며, 땅이 금이며, 새가 금이며, 꽃이 금이며, 집도 역시 금이며, 불체(佛體)마저도 모두 금빛으로 반짝인다.” 거기에 가면 돌 하나 찾지 못하는바, 듣기로는 돈으로 쓰는 것이 돌이라 하지만, 그가 돌을 거기로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다만 이런 이치를 말한 것인데, 속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연공인은 확실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제9강 깨달음)

[역주: 이 글의 저자가 말하는 ‘집’은 중문에서 ‘방자(房子)’를 가리키며 3곳에 걸쳐 총 12번 나온다. 그 외 한글 번역본에 ‘집’으로 표기된 것 중에는 ‘가(家)’도 있다. 한글로는 구별할 수 없지만 중문에서 방자(房子)는 유형적인 건물을 가리키고 가(家)는 가정이나 가족을 가리키므로 의미가 다르다.]

나도 때로 ‘집’에 집착했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난 후 보니 암암리에 저절로 배치가 있었고 사부님 배치가 훨씬 좋았다.

이 일을 말하자면 어떤 동수가 내 딸이 해외 유학 중인 것을 알고 “돈이 충분한가요? 부족하면 빌려줄 수 있는데.”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사부님께서 다 배치해 놓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는가? 이 일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혼할 때부터 우리 부부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남편은 국영 기업에서 일했고 나는 은행에서 일했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 50여 제곱미터(역주: 약 15평)의 방 하나, 거실 하나짜리 집을 샀다. 1999년 박해를 받은 후 내가 간접적으로 실직하자, 남편 월급만으로 세 식구를 부양하기란 다소 무리였다. 당시 나는 또 자료를 만들어야 했는데, 여기에도 돈이 들었다. 남편은 결국 국영기업을 사직하고 민간 회사에 취직했다. 민간 회사는 월급은 많았지만 업무 부담이 더 컸다.

남편이 몇 년 일하고 나서, 우리는 약간의 저축이 생겼다. 딸이 어릴 때는 방을 같이 써도 괜찮았다. 하지만 딸이 자라면서 자기 방을 원해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방 하나, 거실 하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 가지 않았다. 집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생겼지만 이내 다시 사그라들곤 했다. 다행히, 우리는 늘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고, 이사에 집착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집을 사고 싶었던 때는 2018년이었다. 언니가 괜찮은 지역에 새집을 하나 샀는데, 나중에 자매끼리 서로 돌봐줄 수 있으니 나더러 근처에 집을 사라고 권했다. 나도 마음이 끌렸다. 그동안 저축한 돈과 기존 집을 팔고 가능한 주택 담보 대출을 계산해 살 수 있는 가격을 정했다. 당시 딸이 막 대학 시험을 보았는데, 미술 전공이라 학비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저축한 돈을 집 사는데 다 쓰면 딸 교육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게다가 남편과 나는 곧 50이 된다. 만약 매달 1,000위안에서 2,000위안을 갚아야 하는 주택 담보 대출을 받는다면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아주 절약해서 살아야 했다. 게다가 나중에 딸이 결혼하면 우리 부부가 살기에는 50제곱미터짜리 아파트면 충분했다. 큰 집은 청소가 정말 번거롭다. 모든 걸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나는 남편에게 그냥 이사 가지 말고 지금 집에서 계속 살자고 말했다.

2년 후, 당시 결정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발견했다. 2020년 팬데믹이 3년간 지속되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임금을 지급할 수 없었다. 우리 회사도 몇 달 동안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빚이 없어서 부담이 적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돈이 없어서 대출을 갚지 못했고, 결국 은행에서 집을 압류했다. 결국 집과 저축을 다 날렸다. 나는 다행히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더 중요한 일은 그 다음에 발생했다. 2022년, 대학을 졸업한 딸이 직장을 구했는데 세 사람이 일하는 작은 작업실이었다. 팬데믹 때문에 급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3개월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자 딸이 사직을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얼마 후, 한 동수가 해외 유학 방법을 알려주었다. 딸도 유학을 가고 싶어서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아주 신기했다.

마침 딸이 가고 싶었던 명문대학이 있었는데, 평소 작업한 것을 작품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영어 성적이 없어도 일단 지원하고 나중에 어학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침 내가 여행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비자 신청을 알았고, 또한 나는 연수를 위해 해외 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항공권 예약법도 알고 있었다. 또 마침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잔고 증명, 환율, 국제 송금, 신용카드에 대한 지식도 있어서 유학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었다. 또 마침 우리가 집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예금 잔고가 있어서 딸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유학원을 끼지 않고 직접 지원서를 제출해, 입학 허가를 받고, 비자를 받고, 항공편을 예약하고, 짐을 싸는 데까지 겨우 4개월이 걸렸다. 2023년, 딸은 무사히 출국해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특기를 발휘해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나는 사부님 말씀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보기에 질서가 없으나 실제로는 아주 질서가 있다”(《도항》〈워싱턴 DC 국제법회 설법〉)

2024년, 시아주버니(수련하지 않음)가 우리 집이 너무 작은 걸 보더니 우리가 시부모님을 모시면 두 분이 돌아가신 후 집을 우리에게 주자고 제안했다. 시부모님도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집을 넘겨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남편에게 기어코 소유권을 넘겨주셨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집이 두 채가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