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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학과 관련된 기이한 인연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정견망에서 중의(中醫) 및 한약에 관한 몇편의 글을 읽고 중화 전통문화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에 탄복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1. 유래

1972년, 나는 열일곱 살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졸업생들은 모두 농촌으로 내려가 가난한 농민이 되어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 처음 농촌에 갔을 때, 우리는 모두 결의문을 써서 큰 글씨로 벽에 붙였다. “60년간 농촌에 뿌리를 내리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고 몰래 책 몇 권을 챙겨 틈틈이 복습했다.

내가 하방(下放)된 마을의 대대(大隊) 서기는 농사 경험이 없는 열일곱 살 도시 아이를 불쌍히 여겨 비교적 쉬운 일을 맡겼다. 1973년 봄, 나는 대대 종자 실험 밭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당시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후(侯 가명) 선생님이었다. 30~40대로 보이는 아주 유능한 선생님이셨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실험 밭에서 농사를 짓게 되셨다. 다른 한 명은 범(範 가명)씨 성을 가진 젊은이였다. 그는 현지 주민이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 돌아왔다.

우리 셋은 같이 일하면서 사이가 아주 좋았다. 소범(小範)은 순박하고 총명했으며 학업에 열심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들은 다 결혼해서 아무도 그를 돌봐주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만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편 후 선생님은 매우 재능 있는 분이셨다. 우리가 공부를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퇴근 후에 풀이할 문제를 자주 주셨다. 재미있는 문제들이었는데, 예를 들어 ‘한 줄에 네 그루씩, 다섯 가지 모양으로 열 그루의 나무를 심는 방법’, ‘4 – 1 = 5’ 등이었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은 우리의 사고를 넓혀 주고 학습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대부분 쉬운 문제였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신의 병력 점검”이었다. 요점은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설 때, 앞줄과 뒷줄의 병사 수만 알면 전체 병력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풀지 못했지만, 소범은 집에 가서 밤을 새워가며 방정식을 풀었다. 후 선생님은 기뻐하시며 소범의 총명함을 칭찬하시며 “하늘이 사람을 내셨으니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다.”라고 격려하셨다.

그 당시 우리는 마치 스승과 학생처럼 아주 잘 지냈다. 소범과 나는 동창과 같았다. 우리가 함께한 기간은 채 두 달도 되지 못했고 실험 밭 작업이 끝나면서 헤어졌다.

소범은 그 후 마을로 돌아가 저수지를 수리하고 측량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저수지에서 일하며 시골 아이들은 다 개 헤엄을 칠줄 알아 물에서 자주 물놀이를 했다. 한번은 수영을 하고 나서 팔뚝이 부어올랐다. 붓기가 점점 커지고 통증이 심해졌다. 공사(公社) 병원에 갔지만 의사는 현(縣)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현 병원에서 의사는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소범은 경악했다. 부모님도 없고 돈도 없는 십 대 소년이 절단 수술을 받으면 불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한 평생을 어떻게 산단 말인가?

그는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찾아가 울며 하소연했다. 그중 한 친척이 말했다.

“어떤 마을에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중의사[郎中]가 한 분 계시니, 그분을 한번 찾아가 보거라.”

소범이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집 대문이 다 잠겨 있었고 집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그곳에 그런 인물이 있었지만 “소 귀신 뱀귀신”으로 “4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해 지금은 공사(公社)에서 운영하는 “학습반”에서 노동 개조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낮에는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소범은 그날 저녁 다시 찾아가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병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다 ‘4부류 분자’란 딱지가 붙었네. 그들은 내가 봉건 미신을 선전했으니 “4가지 낡은 것”의 하나라고 했지. 내가 자네 병을 봐주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지 않겠나? 아마 나를 때려죽일지도 몰리!”

소범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아저씨,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겨우 열여덟입니다. 만약 팔다리를 절단한다면 제 인생이 망가질 겁니다.”

소범은 애절하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속담에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가 우는 것을 보면서 가엽게 여긴 그 의사가 어딘가에서 작은 약재 가루 세 봉지를 꺼내 주면서 설명했다.

“이것이 ‘고람독(挎籃毒)’이다. 바구니를 매는 팔 부분에 생기는 독이라서 이렇게 부른다.”

의사는 송곳으로 소범의 팔에 구멍을 뚫고 종이 한 장을 말아 튜브 모양으로 만든 다음, 약을 붓고 구멍에 튜브를 꽂았다. 그리고 입김을 불어 약이 팔에 스며들게 한 후, 그냥 봉했다. 의사는 소범에게 나머지 두 봉지를 주며 하루에 한 번씩 이 과정을 반복하라고 했다. 대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며칠 후, 소범의 팔 부기가 가라앉고 통증도 사라졌다. 소범은 친척들이 모아둔 백 위안을 의사에게 주면서 감사 표시를 했다. 당시에는 백 위안 지폐가 없었고, 기껏해야 10위안, 5위안, 2위안, 1위안이었다. 당시 우리는 하루에 10전밖에 벌지 못했다. 100위안이면 일반 시골 주민들에게는 아주 큰돈이었다. 하지만 그 의사는 돈을 받지 않고 덕(德)만 베풀려 했다. 소범이 거듭 간청하자 할 수 없이 원가에 해당하는 5위안만 받았다.

1975년, 나는 도시로 돌아왔고 월급 19위안짜리 일자리를 구했다. 이 돈이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1976년에 대학 입시가 부활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응시하지 않았다. 소범은 대입에 응시했다. 시험이 끝난 후, 그가 나의 직장으로 찾아와 왜 응시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학교에 갈 돈도 없고, 나는 지금 상황에 만족해.”라고 말했다. 그는 “돈이 없으면 사범학교에 지원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나를 불쌍히 여겼다. 그 이후 우리는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2. 기이한 만남

시간은 아주 빨리 흘러갔고, 2005년이 되자, 나는 직장에서 은퇴해 외지(外地)로 이사했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고 나는 인터넷 사용법을 배워, QQ 채팅을 시작했고, ‘왕이(网易)’에 가입해 블로그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소범과 나는 QQ 채팅을 하다 만났다. 이미 30년이 지났고, 우리는 둘 다 50이 넘었다.

지난 30년 동안 나는 인생의 굴곡과 쓴맛을 보았다.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처음에는 병치료와 건강을 추구했지만, 점차 대법이 반본귀진(反本歸真)하고 사람을 미혹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하늘 사다리임을 깨달았다. 대법제자는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을 도와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았다.

서로를 알아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 감격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즐겁게 이야기하며 그 힘겨웠던 시절의 쓰라린 기억을 되새겼다. QQ 채팅만으로는 더 이상 서로를 알아가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에 충분하지 않자 우리는 이메일로 교류했다.

소범은 자신의 노력으로 고급 지식인이 되었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나는 10년간 대법을 수련하면서 이런 것들은 다 표상일 뿐임을 안다. 그의 진정한 목적은 진상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인터넷 감시가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히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전통문화를 말했다. 5천 년 전통문화는 모두 하늘을 공경하고 부처님을 공경했으며 선악(善惡)에 보응이 있음을 믿었다. 그러니 우리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 양심을 가진 중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등등. 소범은 시골 출신이라 순박하고 선량했으며 전통문화에 대한 기초가 있었기에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비록 그가 연구하는 주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게 도리를 말했다.

“과학은 마땅히 인류에게 이로워야 해. 원자폭탄은 뛰어난 기술이지만 인류를 훼멸할 수 있으니 이것은 모순이 아닐까?”

또 “자동차가 발명된 이래로 인류에게 편안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제2차 세계 대전보다 더 많아졌으니 현대 과학은 그리 과학적인 것이 아니야.” 그 역시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나중에 명혜망 기술 포럼에서 중국 이메일 계정은 안전하지 않으며 직접적인 진상을 알리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해외 이메일 계정에 등록했다.

나중에 나는 “동태망(動態網 인터넷 장벽 돌파 프로그램)” 링크를 이메일에 첨부해 그에게 보냈다. 그가 처음 이메일을 열었을 때 한 말은 “정말 놀랐어! 모두 본 적이 없는 것들이야.” 비록 처음 본 것이긴 했지만 그는 필경 고급 지식인이라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했다. 나는 그에게 《9평(九平)》 링크를 보내주면서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며칠 후,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젯밤에 네가 보내준 좋은 술을 여섯 병 반이나 마셨는데, 마실수록 머리가 맑아졌어.”

처음 메시지를 읽을 때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세 번을 읽고 나니 대략 이해되었다. 어젯밤에 《9평》을 6평까지 읽고 나서 머리가 청성해졌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의 지혜와 이지(理智)에 찬사를 보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9평》에 나오는 모든 내용은 사실이야. 우리 할아버지는 토지 개혁 당시 공산당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았지. 내가 어느 정도 성공한 후, 내가 있는 부서에서 계속 입당하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어. 나중에 또 여러 차례 찾아와서 더 이상의 문제를 피하려 민주당파(民主黨派)에 가입하고 나서야 문제가 일단락되었지.”

그는 현재 학술은 거짓이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면서, 진정으로 전면적인 부패라고 했다.

며칠 후, 소범은 이메일로 내게 “4퇴 성명”을 보내왔다. 그는 이렇게 성명했다.

“나는 공청단, 소년선봉대뿐만 아니라 내가 가입했던 민주당파와 홍위병까지 모두 탈퇴해 철저하게 사악한 당과 갈라서겠다.” 그는 또한 이 메시지를 읽은 후 즉시 삭제하고 저장하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나는 그가 진정으로 진상을 알게 된 것을 축복하며 탈당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그에게 가족들에게도 진상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소범과 어느 생에 인연을 맺었는지 모르겠지만 말법(末法)말겁(末劫)의 순간에 그는 자신이 세상에 온 숙원을 이뤘고 나도 내가 일찍이 했던 약속을 실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감당으로 정법 시간을 연장하셨고, 제자들이 잘 수련해서 수련 성취하고,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도하기를 바라신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제자는 더욱 정진해서, 자신을 잘 수련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도해, 서약을 실현하고,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