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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는 영성이 있다(상):누리신과 가축의 역신

만물에는 영성이 있다(상):누리신과 가축의 역신

작자:자열(紫悅)

【정견망】

중국 성어 중에 관규려측(管窺蠡測)이란 말이 있다. 의미는 작은 대나무 관을 통해 하늘을 본다는 것으로 달리 표현하면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측량한다고도 한다. 쉽게 말해 소견이 좁고 식견이 얕으며 비루한 것을 비유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 말이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이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 여긴다.

사실 호한(浩澣)한 우주, 홍대(洪大한 천체의 미시적인 물질은 우리 인류의 육안으로 철저히 탐구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체 조직구조는 오묘하여 현대의학의 첨단기술로도 남김없이 파헤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의 다양성과 존재형식 역시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인간이 이해하고 파헤칠 수 있는 미혹이 아니다.

신구(新舊) 우주가 교체하는 이 역사적인 시각, 대궁(大穹)의 주(主)께서 자비롭게 구도하는 관건적인 시기에 대법제자들은 다행히 진리를 얻어 지혜가 열렸고 천기를 알았으며 약간이나마 우주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비록 창해(滄海)의 좁쌀 하나에 불과하지만 시야를 크게넓혔으며 적어도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의 다채로움이 절대 우리가 표면적으로 관찰하는 것처럼 이렇게 얕은 것이 아님을 알았다.

사실 많은 패관(稗官) 야사의 기록이나 구전되는 민간전설 중에도 일찍이 어렴풋한 단서를 찾을 수 있으며 일찍이 한담거리로 널리 퍼져 있다. 필자는 힘 닿는 대로 몇 가지 일을 수집해 백화로 옮겼다. 여기서 인연이 있고 흥취가 있는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첫 번째 이야기: 누리신

명나라 때 있었던 일이다. 산동(山東)의 청주(青州)와 곤주(袞州) 두 지역에 누리떼 피해(蝗災)가 극심했는데 얼마 안가 점차 흔현(沂縣)에 집중되었다. 흔현 현령(縣令)은 걱정이 되어 순시한 후 관청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몽롱한 가운데 꿈에 어떤 서생이 손에 명함을 들고 그를 배알하러 왔다. 큰 관을 쓰고 녹색 옷을 입었는데 체격이 크고 장대하게 생겼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에게 누리피해를 예방할 좋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현령이 크게 기뻐하여 자세히 물어보니 그가 대답했다. “내일 서남쪽 길에서 어느 부녀가 배부른 어미 당나귀에 앉아 있을 겁니다. 그 분이 바로 누리신(蝗神)인데 그분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면 이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현령은 깨어난 후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현 전체의 재앙을 면하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해선 의심스럽긴 해도 한번 믿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사희생을 준비해 남쪽으로 출발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과연 한 여자가 나타났는데 높은 상투 머리에 갈색치마를 입고 혼자 늙은 당나귀를 몰고 천천히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현령은 비록 꿈속에 서생이 말한 바와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태만할 수 없어 얼른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며 공경하게 맞이하며 두 손으로 나귀의 고삐를 잡아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부인이 물었다. “대인께선 무슨 일이신지요?”

현령은 성심을 다해 간절히 애걸했다. “제가 관할하는 곳은 단지 작은 현에 불과합니다. 부디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누리 피해에서 구해주십시오.”

부인이 말했다. “그 류(柳 버드나무의 영) 서생은 말이 많아 탈이로군. 내 비밀을 누설하다니, 그럼 그 스스로 악의 보응을 받도록 하되 이 현의 곡식은 다치지 않도록 하리라.” 하면서 석 잔의 술을 마셨다. 현령이 다시 쳐다보니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없었다.

나중에 누리떼가 과연 이곳에 몰려들어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절대 논밭에는 내려앉지 않았고 오직 버드나무만 갉아 먹었다. 누리떼가 지나간 곳의 버드나무는 모두 잎을 뜯겨 가지만 남았다. 현령은 이때야 비로소 그 꿈속의 서생이 바로 버드나무 신(柳神)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 두 번째 이야기-가축의 돌림병을 주관하는 가축신

진화봉(陳華封)은 산동 몽산 사람이다. 한여름 더위에 목이 심하게 말라 부득이 들판의 나무 아래 누워 좀 시원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목에는 수건을 두른 어떤 사람이 질풍같이 달려오는데 나무 그늘 아래로 재빨리 달려와 돌 위에 앉더니 끊임없이 손에 든 부채를 부쳤다. 그러나 여전히 땀을 비오 듯이 흘렸다.

진 씨가 그 모습을 보고는 일어나 똑바로 앉아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목에 수건을 벗는다면 부채질을 하지 않아도 시원해질 텐데요.”

그러자 손님이 대답했다. “이것을 벗기는 쉽지만 다시 두르기는 매우 어렵소.”

이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자못 의기투합함을 느꼈다. 손님은 이어서 말했다. “지금 별다른 생각이 없으나 그저 한잔 시원한 술이나 맛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또 한줄기 샘물이 있어 머리에 부어 시원하게 한다면 여름의 더위가 반쯤은 간 것이나 다름 없겠군요.”

진화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소원이라면 이루기 쉽지요. 제가 당장 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손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시원한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한번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손님이 웃으며 따랐다.

집에 도착하자 진화봉이 동굴에 숨겨놓았던 오래된 술을 꺼내왔는데 그 시원한 맛은 이를 시리게 할 정도였다. 손님은 크게 기뻐하며 한번 마시자 연달아 열 잔을 마셨다. 이때 해는 이미 황혼이 되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내에 등을 켰다. 손님은 이제 목도리를 풀고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는 중에 진화봉은 몇 차례 손님의 머리 뒤에 등불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의혹이 그치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손님은 크게 취해 자리에 누워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래서 진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등불로 그의 머리 뒤를 몰래 비춰보았더니 그의 귀 뒤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그 사이로 몇 갈래 두터운 막이 마치 창문의 창살 같았다. 창살 밖에는 연한 가죽이 드리워져 있어 가리고 있어 머릿속에는 마치 텅 빈 것 같았다. 진은 쳐다본 후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몰래 자기 머리의 비녀를 뽑아 연한 막을 조사해보았다. 그 속에 어떤 것이 있었는데 모양은 작은 소 같은 것이 즉시 날아 나와 창문을 부수고 나갔다. 그는 더욱 두려워 감히 다시는 건드리지 못했다.

막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손님이 이미 깨어있었다. 그러면서 무섭게 말했다. “당신이 내 비밀을 알았고 그 우황(牛癀 소에 돌림병을 퍼뜨리는 것)을 놓아주었으니 어떻게 할 거요?”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엎드려 절을 하며 사죄하면서 그 연유를 물었다. 손님이 말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더 숨길 수 있겠소? 사실대로 다 알려드리리다. 나는 가축의 역신이오. 당신이 방금 실수로 방출한 것이 우황인데 이는 정말 비참한 일이요. 백리 내의 소가 새끼를 낳지 못할 것이오!”

진화봉은 마침 소를 키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 크게 놀라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해결책을 구했다.

손님은 “내가 돌아간 후 내가 여기서 술을 마셔 일을 그르친 죄도 면할 수 없는데 당신의 소 문제를 해결해준단 말이오? 오직 고삼가루만이 효과가 가장 뛰어나니 이 처방을 널리 전하되 혼자 사사로이 사용할 생각을 버려야 하오.” 하고는 진가에게 작별하고 문을 나갔다. 그러다 또 흙을 한줌 들고는 벽 위에 쌓고는 말했다. “이렇게 한 번씩 하면 효과가 있을 거요.” 그러면서 손으로 읍을 하더니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소들이 과연 병이 들어 쓰러지고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 진화봉은 사심(私心)이 일어나 독점하려고 생각하여 비방을 몰래 숨겨놓고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동생에게만 전했다. 그의 동생이 시험해보니 효과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진화봉이 자기 소에게 고삼가루를 먹였으나 아무 효과가 없어 200여 마리의 소가 거의 다 쓰러지고 몇 마리 늙은 어미소들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역시 생기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 가축신이 흙을 쌓던 것이 생각났다. 반드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방법이 없으니 한번 시도해보자. 그러자 하룻밤이 지나 그 병든 어미소들이 전부 일어났다. 이때야 비로소 자신이 약을 써도 소용이 없던 까닭은 신이 자신의 사심이 팽창한 까닭에 이를 처벌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후 몇 년이 지나 남은 그 몇 마리 어미소들이 점차 번식해 그의 목축업은 다시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발표시간 : 2010년 7월 3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7/3/671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