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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대법으로 대조

토론토 수련생

【정견망】

나는 1996년 7월, 친구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할 인연이 있었다. 당시 나는 시험 삼아 해보자는 심태로 5가지 공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날마다 파룬궁을 연마했지만 나는 일종 신체 단련이라 여겼다. 나중에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보니 내함(內涵)이 이해하기 어렵고 또 아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해서 내가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神)의 보살핌을 구하진 않았지만, 인과(因果)의 순환을 믿기에 좋은 일을 좀 많이 하고 덕(德)을 좀 쌓고 싶었다.

1996년 7월 중순, 나는 9일 학습반에 참석해 스승님의 설법 비디오를 시청했다. 스승님 말씀이 너무 아득해서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말씀하신 사례들은 아주 진실했다. 나는 연마하려면 의심하는 심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명리정(名利情) 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스승님은 “수련 자체는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당신이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괴롭다고 느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진정한 파룬따파 제자가 되려면 모든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것은 내게 있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곧 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만약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한 달에 300불밖에 받지 못한다. 그럼 내 수입이 약 500불 정도 줄어들기에, 사상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날마다 연공은 견지했지만, 법 공부 시간은 많지 않았다.

1996년 10월, 나는 뉴욕에 가서 스승님의 설법[역주: 이때 사부님께서 뉴욕에서 하신 설법은 정식 발표되지 않았음. 같은 해 10월에 하신 《미국 제1차 설법》과 《휴스턴 법회 설법》이 발표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을 들었고 돌아온 후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마치 신체가 변한 듯했고, 사상도 바뀐 듯했다. 《전법륜》을 다시 읽으면서 법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수련에서 만약 명리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가짜 수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갈림길에서 나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마침내 수련의 길을 선택했고, 명리정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1997년 초, 나는 20년 넘게 보관하고 있던 돈을 빌려간 친구의 차용증과 그녀의 직장에 보내려고 했던 편지들을 모두 청리(淸理)했다. 또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편지들도 싹 다 청리했다. 모든 기공 서적과 의학 서적도 다 청리했다. 이전에 버스를 탈 때 사용했던 경로우대권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나는 아직 65세가 되지 않았다).

또한 조만간 받을 노인 연금에 대해서도 더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온갖 방법을 동원해(가령 돈을 옮기는 것)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내 수입이 크게 줄어들 것을 알았다. 하지만 수련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기에 당연히 이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잃는 것은 이익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얻음을 믿는다.

지금 나는 아무 욕심 없이 아주 간단하게 살고 있다. 무엇을 누리려 하지 않고 그저 배만 부르면 그만이다. 만족함을 알고 가난해도 즐겁다. 내 생활은 전보다 더 행복해졌고 몸도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리 스승님은 《무엇이 수련인가》에서 “오로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으며 아울러 원만하는 수단 ― 연공(煉功)을 하여 확실하게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고 층차가 제고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약 반년 동안 나는 진정으로 법 공부와 연공을 했고, 확실히 자신이 본질적으로 변화한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대퇴골두의 염증 때문에 튀어나왔던 두 개의 뼈가 거의 평평해졌다. 검버섯도 옅어지고, 두통도 없어졌다. 전보다 훨씬 젊어졌고, 내심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내게 고난을 주면 참지 못하고 다투고 싸우며 화를 냈지만,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참는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때로 마난을 겪을 때 화가 나고 분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스승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

나는 곧바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오직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가기만 하면 화나고 억울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최근 어머니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간병인이 필요하다. 나는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고, 또 약이나 탕을 달이고 따로 식사를 차려드려야 한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차갑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노인을 모시기란 정말 번거롭다.

나는 노인이 쓸모가 있으면 집안의 보물이지만, 쓸모가 없으면 잡초처럼 버려질 운명임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처지와 오빠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 모두 언젠가 늙어 버릴 것이고, 버려지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생각했다. 우리는 왜 사람이 되었는가? 사람 노릇을 하기란 이렇게 고생스러운데. 우리는 마땅히 빨리 수련해서 반본귀진(反本歸真)해야 한다. 오직 진정한 수련자가 되어야만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앞으로 수련에 정진할 것이다.

나는 법을 배우면서 망설이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수련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스승님께서는 《전법륜》 6강에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한 사람이 무척 애써 수련하여 나한(羅漢)으로 성취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정과를 얻고, 나한으로 수련 성취하게 되었는데, 그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삼계(三界)를 벗어나게 되었다! 이 기뻐함이 바로 집착심이고 환희심이다. 나한은 마땅히 무위(無爲)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는 떨어졌으며 수련이 헛되었다.”

수련의 길에서 조금도 어긋날 수 없는데 나 같은 사람이 수련할 수 있을까? 나는 신심(信心)이 별로 없었다. 기왕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면 왜 날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수련해야 하는가? 살아 있는 동안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 죽으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생각은 흔들렸지만 그래도 날마다 수련을 견지했다. 모든 단체 수련과 법 공부에도 참여했지만, 혼자 책을 읽는 것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종종 연공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중국에서 있었던 생생한 실화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국 수련생들은 《전법륜》을 외울 수 있다는데, 나는 각 강의 소제목조차 외우지 못하니 내가 정말 대법제자인가? 나는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 소제목부터 외우기로 결심했다. 얼마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외웠다. 이어서 《정진요지》와 《전법륜》의 일부 내용을 꼭 외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외울 수 있었다.

〈진수(眞修)〉 경문을 외우면서 너무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다. 정말로 스승님의 고달픈 마음쓰심이 담겨 있었다! 빨리 수련하지 않으면 시간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다. 작년에 집중적으로 법을 공부한 후, 나는 날마다 책을 읽고 법을 공부한다. 가끔은 스승님의 녹음 테이프도 듣는다. 마음을 써서 책을 읽으니 《전법륜》을 공부할 때 책 내용이 예전보다 이해하기 쉽고 공부하는 것도 흥미로워졌다.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홍음》 〈착실한 수련〉)

나는 매사에 대법(大法)으로 자신을 대조한다. 어느 날, 모 회사에서 중국으로 5분간 무료 통화가 가능한 카드를 보내왔다. 나는 그 회사에 계정이 없어서 관심이 없었고, 내가 그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탐욕심이라고 여겼다. 3주 후, 이 회사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만약 내가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이 카드를 이용했을 것이다. 춘절에 중국에 전화할 계획이었고, 당연히 장거리 통화를 무료로 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하지만 대법으로 가늠하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올해 겨울, 나는 사심 때문에 연공장에 가서 법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에 마음을 움직여 모두 돌아가면서 하자고 제안하려고 생각했다.

그때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속인의 고락 생각하지 않음이 수련자요”(《홍음》 〈삼계를 벗어나다〉)

나는 왜 개인의 득실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나는 수련자인가? 나는 또 모두 참여하는 법 공부를 위해 큰 집을 빌린 수련생을 생각했다. 이런 경지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차이가 너무 멀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했다.

내가 인연이 있어 대법을 접하게 된 것은 정말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리 스승님과 대법에 감사드린다. 나도 명실상부한 수련자가 될 것이다.

(1998년 5월 캐나다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발표 원고)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6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