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수련생
【정견망】
1. 법을 얻은 경위
1997년 초, 내가 미국에 방문학자로 갔을 때, 아내가 중국에서 편지를 보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아내는 파룬궁이 훌륭하다면서, 나도 함께 수련하자며 책 한 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이미 여러 종류의 기공을 수련했었고, 어느 기공이든 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997년 말, 내가 미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하자 아내는 중국에서 《전법륜》을 비롯한 대법 서적들을 가지고 왔다. 이 책들을 읽자마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며칠 동안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었다. 내 삶에서 궁금했던 많은 중요한 질문들이 이 책들 속에서 해답을 얻었다. 마침내 사람이 왜 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반본귀진(反本歸真)하리라 서원하고 수련하려 했다.
97년 10월 중순, 몬트리올 연공장에서 《미국법회설법》이라는 책을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홉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책을 사러 갔다. 연공장에서 우연히 단체 연공하는 수련생들을 만났다. 그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나도 아들과 함께 연공했다. 그렇게 우리 온 가족이 파룬따파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2. 고험(考驗)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종 고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첫째, 아들이 심한 기침을 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아들이 병업(病業)을 없애고 있음을 알기에 약을 주지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 약을 먹을지 물어보니 본인이 먹지 않겠다고 했다. 열흘 넘게 기침을 하고 나서 기침이 가라앉았다. 기침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이 뿌리에 지름 1cm 정도의 농포(膿疱 고름 주머니)가 생겼다. 아들이 힘껏 빨면 고름과 피가 나왔는데 보기만 해도 정말 무서웠다. 약을 주진 않았지만, 며칠 후 종기가 가라앉았다.
기침이 가라앉은 지 며칠 후, 아들은 다시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온몸이 멍으로 뒤덮일 때까지 긁다가 결국 얼굴, 목, 손까지 멍이 들었다. 피부에는 작고 붉은 반점들이 가득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마침내 이 증상을 발견했다. 전염병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선생님은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전염성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옴이라고 진단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원을 나온 후, 나는 약국에 가서 약을 사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아들에게 약을 먹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고, 원한다면 사다 주겠다고 하자 아들이 거절했다. 하지만 아들은 다른 방법으로 업을 없애는 게 낫지, 가려움증으로 이렇게 소업(消業)하는 건 너무 괴롭다고 했다. 나도 10대 시절 옴으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아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이 고험은 한 달 넘게 지속되었고, 결국 아들의 온몸에서 피부가 한층 벗겨졌다.
아들의 온몸 피부가 벗겨지면서 목에선 또 혹이 자라기 시작했다. 혹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였는데, 나중에는 달걀만 한 크기로 커졌다. 아들은 39.8도의 고열도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약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마침내 아들의 혹을 발견하고 전염병일지 모른다면서 즉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결국 나는 다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진찰 후 이 병은 아주 위험하며 암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추가 검사를 위해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은 11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결국 의사는 박테리아나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마지못해 퇴원시켰다. 퇴원 전 의사는 2주 치 약을 처방하고 약을 복용한 후 추적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퇴원 후 나는 처방전을 버렸고 2주 후 아들을 데려가지도 않았다. 한 달 후, 아들 목의 혹은 저절로 가라앉았다. 이상은 아들이 소업과 내가 관을 넘긴 것이다.
아래에 내가 소업관을 넘긴 과정을 말해보겠다.
최초 소업 반응은 한 달 넘게 하루에 대여섯 번씩 나오는 설사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치통이 생겼는데, 매번 며칠씩 지속되어 식사하기 어려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는 기침이 났는데 아주 건조했고 목과 기관에 통증이 생겨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약을 먹지 않았고 약 20일 동안 기침을 했다.
그러던 5월 7일 아침,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침대에서 뒤척이며 불편했다. 점심은 조금 먹었지만, 구토는 계속되었다. 저녁은 아예 먹지 못했다. 나는 예전에 위궤양을 앓아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병이 뒤집혀 나온 것임을 알기에 참기로 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했고, 통증을 완화하고 지속 기간을 줄이기 위해 병원에 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나의 불성(佛性)이 마성(魔性)을 싸워 이겼다. 나는 열 시간이 넘게 고통을 참아냈고, 마침내 이 난을 통과했다. 고험을 견뎌낸 것이다.
3. 가부좌의 관을 넘다
처음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 30분 동안 다리를 풀고 앉아 있는 것조차 엄청나게 힘들었다. 다리가 무슨 고사포처럼 높이 들려 있었다. 반가부좌를 트는 것도 힘들었는데, 하물며 두 다리를 결가부좌 하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다리가 너무 뻣뻣하고 짧아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게 있어 가부좌는 마치 눈앞에 솟아 있는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나는 60, 70대 수련생들이 처음에는 다리를 가부좌 틀지 못하다 다리를 누르고[壓腿 역주: 다리를 높이 걸고 위에서 누르면서 스트레칭하는 것] 나서 겨우 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들과 차이를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저분들은 저렇게 많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하지 못하는가?’
그때부터 다리를 풀기 시작했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마침내 대법을 수련한 후 한달 만에, 나도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2분도 버티지 못하고 통증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은, 30분 정도 다리를 충분히 풀고 나서 가부좌를 틀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다리를 내리고 싶었지만,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참기 힘든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힘든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難行能行].”
이를 악물고 30분 정도 버텼는데, 마치 반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다리를 풀고 다시 일어서는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발목, 관절, 엉덩이가 여전히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자다가도 종종 통증으로 깨곤 했고, 다음 날 걸을 때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셋째 날, 가부좌를 하기 전에 발목이 붓고 다리가 너무 아파서 다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결국 이를 악물고 다리를 틀었다. 다리를 트는 순간, 마치 형벌처럼 느껴졌고,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승님의 경문을 외우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이렇게 30분을 더 참자 발바닥이 온통 검보라색으로 변했다. 이후 나는 가부좌할 때마다 스승님의 경문을 외웠다. 고통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스승님 경문을 외지 않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날마다 30분씩 가부좌를 했지만 준비하는 시간 및 나중에 몸이 회복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더하면 총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이렇게 두 달 정도 계속하다 가부좌 시간을 30분에서 한 시간으로 늘렸다. 여전히 스승님의 경문을 외우면서 고통스러운 한 시간을 견뎌냈다. 한 시간이 지나 내려놓으니 두 발은 여전히 검보라색으로, 전과 같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리 관절의 통증도 여전했다.
98년 4월 초부터 가부좌할 때 스승님의 경문을 외우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연공 음악만 듣기 시작했다. 10분 남짓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데 너무 아파서 그만두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격렬한 사상 투쟁을 했다.
스승님의 말씀이 다시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난(難)이 올 때, 당신이 만약 그것을 아주 크게 본다면 당신은 이 한 관을 넘어가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아주 작게 본다면 당신은 단번에 지나갈 수 있다.”
[역주: 이 법은 현재 발표된 경문 중에는 찾을 수 없다. 글쓴이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가부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당신이 그것을 두려워하면 당신이 그것보다 훨씬 작아지고 넘어갈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자신이 아주 크고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통증이 아주 작게 변했다. 그것은 단지 내 다리에 있을 뿐이고 나는 높은 곳에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것이 내 마음을 공격하지 못하게 했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 나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 도리를 명확히 알고 나니 견지(堅持)할 수 있었다.
4월 하순부터 나는 단번에 가부좌 시간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으로 늘렸다. 이 또한 내게는 엄청난 고험이었다. 제고의 폭이 아주 컸다. 예전에는 10분만 다리를 틀어도 멈추고 싶을 정도로 아팠고, 또 한 시간을 버티는 것도 몹시 힘들었는데, 한 시간 반은 더욱 힘들었다.
게다가 연공음악 테이프가 한 시간이라 한 시간 동안은 어느 정도 견딜 만했지만, 음악이 끝나고 나니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스승님 말씀 덕분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스승님께서는 “수련에는 끝나는 시간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법을 늦게 얻었으니 원만(圓滿)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 하며 다른 선택은 없다.
[역주: 사부님 법에 “수련의 시간은 확실히 매우 긴박하다. 무슨 겁난은 없다. 그러나 수련은 끝나는 날이 있다. 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무엇이나 모두 끝나는데, 그러면 곧 당신이 더 수련함을 허용하지 않는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는 부분이 있다.]
한 시간 가부좌를 하고 나니 통증이 아주 견딜 수 없었지만 나는 ‘고통이 뭐 나쁠 게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스승님께서는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홍음》〈파룬따파〉)라고 말씀하셨다.
고생을 겪어야만 소업할 수 있고, 겪는 고생이 클수록 소업도 더 많고 더 빨라지며 원만도 더 가까워진다. 이렇게 생각하자 기꺼이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다. 나중에는 뒤로 갈수록 고통이 즐거워졌다. 내가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중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미소를 짓자 심지어 동수인 아내마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내게 가부좌를 하면서 왜 웃는지 물었다. “혹시 달걀 껍질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인가요?
나는 마치 바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고 뜨거운 냄비 위에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괴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90~100분 정도 가부좌를 틀 수 있지만, 가부좌하기 전 반드시 10분 정도 다리를 풀어야 한다. 가부좌를 마치고도 일어설 때까지 20분 이상 걸린다. 발바닥은 여전히 검보라색이지만, 색깔이 좀 옅어졌다. 평소 길을 걸을 때는 여전히 아팠지만, 그래도 전보다 많이 줄었고 절뚝거리지도 않는다. 가부좌는 내게 있어 여전히 큰 난관(難關)이다. 하지만 내 결심은 그것보다 더 크다. 비록 다리 세 곳에 물집이 여전히 남아 있고, 또 전보다 더 커졌지만, 나의 가부좌는 이미 두 시간을 돌파했다.
4. 心性(씬씽) 닦기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닦는 것보다 연마에 집중했다. 나는 모든 대법 책을 다 읽었고 또 그 속의 이치를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진선인(真善忍)’을 닦는 것이 아닌가? 스승님은 “마음에 진선인(真善忍)을 품으면 파룬궁을 성취할 수 있다[心懷真善忍,法輪功可成]”라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또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마음을 닦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명리정(名利情)에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 공부, 책 읽기, 心性(씬씽) 수련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 결과 두 번이나 크게 곤두박질쳤다.
작년 10월 말, 생계를 위해 팔괘권(八卦券)을 가르치는 가정 무술 사범 자리에 지원했다. 하지만 겨우 하루 가르치고 나서 사람이 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스승님이 저를 깨우쳐 주시는 줄도 몰랐다. 나는 원래 팔괘권을 수년간 수련해 왔고, 그 문파의 대제자(大弟子)라고 생각했다. 중국에 있을 때도 팔괘권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갈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고객이 오지 않자 조금 실망했다. 나중에 대법 책을 더 읽어보니 팔괘권 역시 기공의 한 형태이며 섞어서 수련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팔괘권 책을 곧장 쓰레기통에 버렸다.
두 번째 곤두박질은 병을 치료한 것이다. 몇 년 전, 장모님한태 낙침(落枕 역주: 중의학 용어로 갑자기 목 근육이 굳어서 돌아가지 않고 뻣뻣해지는 증상을 말한다.)을 치료하는 비법을 배웠다. 누군가 목이 뻣뻣하면 엄지손가락으로 그 사람의 손등을 꾹 눌러주면 바로 낫는 것이다.
올해 2월, 동창의 목이 뻣뻣해지자, 과시심이 솟구쳤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지만, 생각해보니 공능이나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스승님의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념의 차이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치료했다. 치료를 하고 나서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과시심이 너무 강한 제 자신이 미워졌다. 나는 스승님께 실수를 용서해 주십사 빌면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는 비록 병원에 가지도 않고 직접 약을 먹지도 않았지만, 우리 집에는 여전히 많은 약품, 부항, 괄사판, 의학 서적들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해외에 나올 때 가져온 것들인데, 수백 위안어치였다. 나중에 우리는 모두 처분했다. 올해 3월 말 뉴욕에서 열린 전미(全美) 파룬따파 수련 심득 교류회에 참석한 후, 나는 진정으로 법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心性(심성)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뉴욕 교류회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수련에 아주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끄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스승님의 자상하신 얼굴을 바라보며 스승님의 따스한 손을 잡으면서 나는 울며 스승님께 말씀드렸다.
“다른 수련생들은 저렇게 잘 수련했는데 저는 이렇게 차이가 나니 스승님께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스승님을 뵙거나 악수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뉴욕에서 돌아온 후, 나는 매일 서너 시간, 심지어 그 이상의 시간을 법 공부와 연공에 쓴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心性(씬씽) 수련에 더욱 주의한다.
해외로 나가기 전에 나는 어느 대학에서 부교수 겸 학과장을 했다. 큰 사업을 해보려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수련만이 내게 가장 큰일이다. 돈은 더 이상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고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예전에 나는 정치, 경제, 사회 동향을 살피는 등 많은 속인의 취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법을 공부하고 연공한다. 속인 일에는 기본적으로 별 관심이 없다.
법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미 정(情)이 담담해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법 공부가 깊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정을 그저 애정, 육친 정과 우정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런 방면에서는 확실히 담담해졌지만,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정은 이렇게 좁은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전법륜》)
정에는 이렇게 넓은 함의가 있다. 지금에야 나는 자신이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주 많음을 안다. 남이 내게 좋은 말을 해 주면 희희낙락하지만 나를 비난하면 속이 상한다. 남이 내 단점을 지적하면 마음이 괴롭다. 남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화가 나고 남이 내 시간을 빼앗으면 참지 못한다. 아이나 아내가 너무 많은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나고,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봐도 화가 난다.
또한 내가 너무 빨리 수련해서 먼저 떠나면 아내와 아이는 어떻게 될지 걱정한다. 아이가 프랑스어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숙제를 도와주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친지들에게 홍법(弘法)하다 그들이 잠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이 괴롭다. 친구들이 화를 낼까 봐 그들이 내게 준 성경을 간직하고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정이다.
나는 모두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야 나는 정이야말로 가장 내려놓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정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나는 줄곧 보관해 오던 성경을 버렸다.
5. 꿈속의 고험
첫 번째 고험은 약을 먹는 것이었다. 꿈에 내가 설사를 하자 아내가 약을 먹으라고 주었다. 아내가 내 손에 약을 쥐어주는 순간, 나는 갑자기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수련인인데 어떻게 약을 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즉시 약을 버렸다.
두 번째 고험은 색관(色關)을 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지키지 못했지만, 두 번째 고험은 순조롭게 통과했다.
세 번째 고험은 살생관(殺生關)이었다. 첫 번째 고험은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벽을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죽였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몹시 후회했다. 두 번째 고험에서는 또 다른 작은 벌레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막 죽이려던 순간, 갑자기 살생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나서 그냥 놓아주었다.
네 번째 고험은 쟁투심(爭鬪心)이었다. 첫 번째는 꿈에 한 어린 소녀가 어느 일에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불복하면서 그녀와 말다툼을 시작했다. 두 번째 고험에서는 한 키 큰 남자가 내게 결투를 신청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그와 싸워서 그에게 부상을 입혔다. 두 가지 고험 모두 나는 쟁투심을 넘기지 못했고, 스스로 매우 부끄러웠다.
나는 이제 대법을 수련한 지 7개월이 되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전히 버리지 못한 많은 집착심들이 있다. 앞으로 내 앞에 놓인 수련의 길은 여전히 매우 힘들 것이다. 나는 이미 이 길에 들어섰으니, 원만(圓滿)에 도달할 때까지 끝까지 정진하며 노력할 것이다.
(1998년 5월 캐나다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원고)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6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