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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워 수련의 병목을 지나가다

중생(重生)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했다. 지난 27년 동안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늘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늘 사부님께서 당부하신 세 가지 일, 즉 법 공부, 연공,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일을 해왔고 줄곧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으며,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20여 년 동안 心性(씬씽) 제고 방면이든, 신체 방면이든,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늘 정념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 나는 마치 수련의 병목[瓶頸]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 육체적인 병목

2023년 5월,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10월에 총총히 세상을 떠났다. 원래 안정적이었던 나의 수련 환경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던 딸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집 안팎으로 일이 많아졌는데, 많은 집안일을 해야 했고, 아이를 등하교 시키는 데만 매일 네 시간 이상 걸렸다. 날마다 빨래하고, 청소하며, 매주 필요한 식료품과 과일을 준비해야 했다. 장을 보는 일은 일요일에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수련에 쓸 시간이 아주 빠듯했다.

나는 오직 휴식 시간을 이용해야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날마다 연공은 5가지 공법을 한 번에 마치고, 한 시간 동안 법을 외우고, 매일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하고, 또 시간을 짜내어 다른 설법도 공부하는 것을 견지해 왔다. 네 차례 동시 발정념도 반드시 정각에 준수했다. 특히 사부님과 션윈이 공격당하고 대법 항목이 비방을 당한 이후 날마다 발정념 시간을 한 시간 늘렸다. 이렇게 하다 보니 쉴 시간이 더욱 줄었다. 원래 하루 다섯 시간도 안 되던 휴식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고, 짜낸 시간을 이용해 대법제자가 마땅히 할 일을 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나는 늘 자신의 수련이 병목에 도달한 것을 느꼈다. 처음 딸과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도 혼자 남편을 간병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특히 마지막에 남편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는 날마다 남편의 식사와 배변을 내가 돌봤다. 두 시간마다 남편 체위를 바꿔주고 씻겨 주어야 했다. 나중에는 남편의 대변을 손으로 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연공하고 법 공부를 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이 기간에 나는 때때로 心性(씬씽)을 지키지 못해 병이 심한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또한 남편이 건강할 때 법 공부와 연공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원망하며 불평하기도 했다. 때문에 구세력이 빈틈을 탔다.

어느 날 저녁, 자정에 발정념을 하던 중 갑자기 한 가닥 힘이 나를 침대 아래로 밀었다. 머리가 강철 가구에 부딪혀 바닥에 피가 흥건히 흘렀다. 나는 두렵거나 아프진 않았다. 당시 남편이 나를 도와줄 수 없어 내 스스로 직접 머리를 감고 바닥을 닦은 후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내가 할 일을 했다. 그날 오후, 머리에 피가 묻어 있었기에 샤워하고 머리를 감았다. 일주일 후, 머리의 멍은 거의 아물었다. 사부님의 보살핌에 깊이 감사드린다.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머리를 만져보니 뼈가 여전히 부드러워 두개골이 골절되었음을 속으로 알았다.

이 관을 지나간 후 작년 5월 1일부터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또한 걷는 데 지장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념이 아주 강했고, 그것을 무슨 “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이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걸으면 몹시 아팠지만, 일부러 발에 체중을 실어 걸었고 발정념을 강화했다. 이렇게 했음에도 다리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이와 동시에 또 설사가 나는 부정확한 증상이 시작되었다. 1년 반 동안 매일 십여 차례 변을 보았다. 작년부터 올해 5월 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변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도 않았고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원래 설사하면 체중이 줄어야 하는데, 실제로 당시 내 체중은 5kg 이상 늘었다.

2025년 정월부터 수련 전에 앓던 치질(수련하기 전에 치질이 있었다)이 악화되어 대변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에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하루에 열 번 이상 배변을 했고, 그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다. 처음에는 가벼웠지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청명절 무렵에는 배변할 때마다 변기에 피가 묻어 붉게 변했다. 때로는 선혈(鮮血)이 나왔고, 때로는 검고 끈적끈적한 변이 나왔다. 나는 비록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지만ㅡ 매일 설사를 했고, 변은 항상 똑같았다. 때로는 약간 걸쭉한 변조차도 마치 항문과 장이 물만 배출하는 것처럼 배출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해, 항문과 장이 너무 꽉 차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고 물설사만 나왔다. 배도 끊임없이 부풀어 올랐다(시골 속담에 “배가 부풀면 150일을 간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 배가 부풀어 올랐고, 묽은 변을 보기 전에 많은 양의 가스를 배출해야 했다. 이런 부정확한 상태가 꼬박 일 년 반 동안 지속되었다.

나중에는 또 한 가지 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끔 오른쪽 허벅지에 갑자기 바늘로 찌르는 듯한 국소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물론 발정념을 하자마자 통증은 곧 사라졌다. 가끔 하복부 팽만감과 통증을 느꼈다. 마치 안에 기(氣)가 움직이는 것처럼 통증과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일단 발정념만 하면 사라졌다. 이런 상태는 몸 어디든 다 나타날 수 있다. 나중에 나는 이 상태를 줄곧 좋은 일로 여겼고 그것을 내 신체에서 공(功)이 나오는 것으로 여겼다. 이렇게 했음에도 육체는 줄곧 이런 부정확한 상태 속에서 고통받았다.

2. 정신적인 병목

딸과 8년 넘게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다시 함께 사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맞지 않았다. 매일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 같았다. 날마다 네 시간 넘게 아이들을 학교에 등하교시키고, 매일 청소를 하고, 가족들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딸은 늘 내가 장을 너무 많이 본다거나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른다고 불평하며 원망했다. 두 외손주의 잘못에 대해 나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말을 꺼내면 딸이 나를 비난할 것이 뻔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았는데 내가 손을 씻으라고 하면 딸은 오히려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학교 가기 전에 얼굴을 씻지 않았는데 내가 세수하라고 하면 “괜찮아요, 괜찮다고요.”라고 말한다. 한번은 아이에게 매일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보라고 했고, 아이도 순순히 따라 했다. 하지만 딸은 혼자 공부하도록 내버려두고 아이를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아이는 하려고 하지 않았다. 딸은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강요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는 암산을 포기했다.

가족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한 최종 결정권도 딸에게 있었다. 심지어 내가 먹는 것조차도 동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이곳에 온지 2년이 좀 넘는데 매년 12월이면 온 가족을 데리고 온천에 간다. 첫해에 딸은 내게 퉁명스런 목소리로 “엄마도 가세요?”라고 물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안 가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흔쾌히 “안 가시면 할 수 없죠”라고 대답했다 다음 해에도 여행 며칠 전에 내가 온천에 갈 건지 물었다. 내가 “갈 거면 같이 가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행 당일(음력 12월 27일),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정말 가세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럼, 나는 안 갈게.”라고 했다. 그녀는 “안 가시면 할 수 없죠.”라고 말하더니 네 식구만 온천에 갔다.

그날,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나는 충동적으로 집을 나갔다. 문을 나가자마자 정말 울고 싶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고, 주체할 수 없었다.

“흘러라! 흘러!”

나는 문을 나가 몇백 미터 인도를 걸으며 실컷 눈물을 흘렸다. 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정말 내게 빚을 받으러 왔구나.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으면 그래도 다 갚아야겠지. 하지만 어쩜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우는가?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이렇게 괴로운 것이 나란 말인가? 나는 수련인이다. 어떻게 속인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30분 넘게 울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괴로운 건 내가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고 괴로운 건 당연히 내가 아니다. 이것은 괴로워하는 그 생명이 내 공간장(空間場)에서 반응한 것으로 내가 그것을 나로 착각한 것이다.

이것을 똑똑히 안 순간 즉시 눈물이 멈췄다. 가슴속에서 한 가닥 따스한 흐름이 솟구쳤다. 나는 방금 그 일념(一念)은 사부님의 점화임을 알았고, 곧바로 속으로 “감사합니다, 사부님!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한 차례 폭풍이 이렇게 해소되었다.

그 후,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으로 찾으면서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당신은 그의 잘못을 왜 당신이 보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가? 그의 잘못이 왜 당신 마음속에서 그렇게 괴로운가? 그중에는 당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 일을 그리 크게 보는가? 여러 방면에서 무슨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모두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자신을 봐야 한다.”(《미국 서부법회 설법》)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면서 나는 20여 년간 수련했음에도 자신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가아(假我 가짜 나)를 진아(真我 진짜 나)로 착각했다. 특히 속인 사회 환경 속에서 가정 환경에서 매번 상대방의 행동이 내 관념이나 생각과 다를 때마다, 첫 일념(一念)이 자신을 찾지 않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자신과 대조해 내게도 이런 집착이 있진 않은지 보지 못했으며, 입만 열면 상대방이 어떠어떠하고 어떻게 틀렸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아주 많은 집착심이 생겼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의 관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또 원한심(怨恨心)이 생겼고, 결국 자신이 아주 괴롭다고 여겼다. 이는 사실 자신이 일을 크게 본 것이고, 자아가 팽창(膨脹)한 것으로, 가아(假我)는 또 이런 사람 마음의 집착을 강화해, 괴로운 것을 자신이 괴로운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진아(真我)가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이 생명이 괴로운 것인지 간파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수련하는 사람과 속인의 이치는 반대다. 사람은 편안하면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대법제자는 사람의 편안함을 제고하는데 있어 나쁜 일로 여기며, 제고를 말하자면 불편함이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그렇다, 나는 마땅히 이 불편함을 좋은 일로 여겨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로 마음이 풀어졌다. 만약 내가 이것이 진아(真我)가 아님을 간파하고, 괴로워하는 이 가아(假我)를 제거한다는 일념(一念)을 내보낼 수 있었다면 구세력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7년을 수련했음에도 이 방면의 수련이 크게 차(差)했다. 지금도 가정 환경에서 가족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대법의 법리(法理)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한다. 여전히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서 자신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괴로움 속에 있다. 어느 가정이나 각자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집에서 수련하지 않는 속인을 대할 때 더욱 그렇다. 확실히 날마다 내가 싫어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만약 내가 대법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않고,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이러한 것들을 내 心性(씬씽)을 제고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수련은 매우 고생스럽고 피곤할 것이며, 층차 역시 제고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그 어떤 복잡한 환경이든 다 일거사득(一擧四得)으로 여기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층차를 제고할 가장 좋은 환경으로 삼아야 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전법륜》)

기왕 이렇다면 나는 마땅히 가족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정말로 가족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마치 거울처럼 자신의 수많은 사람 마음의 집착을 비춰주었기에, 나는 비로소 신속하게 이런 사람 마음의 집착을 닦아낼 수 있고, 비로소 층차를 제고할 수 있으며, 비로소 공(功)이 자랄 수 있는데, 이는 너무나도 크고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정말로 그들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나는 마땅히 나를 “짜증나게” 한 딸에게 감사드려야 하는데 그녀는 나를 도와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을 찾게 했다.

나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자,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바로 5월 13일 전날, 내가 내 수련의 근본 집착을 찾아낸 후, 거의 1년 반 동안 나를 괴롭히던 설사를 포함한 내 몸의 모든 부정확한 상태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나는 설사를 하지 않고 정상적인 변을 볼 수 있으며, 대변 출혈도 멈췄고, 치질도 좋아졌다. 더 불가사의한 것은 배가 더 이상 부풀지 않고, 다른 부정확한 상태도 사라졌다. 더욱 기이한 것은 줄곧 있었던 화장실 변기의 누수 현상도 사라졌다. 정말 너무나도 신기했다. 집안 분위기도 화목해졌고, 딸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었다. 예전처럼 나를 대하지 않고, 말도 예의 바르게 한다. 20년 넘게 얼어붙었던 단단한 얼음이 마침내 녹아내렸다. 이 모든 것은 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내가 다년간 꾸준히 법을 외운 효과이다.

사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마침내 수련인의 병목에서 걸어나왔다.

이상은 최근의 작은 깨달음이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