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자녀와 모순이 생길 때 어떻게 안으로 찾을 것인지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교류를 들으면서 금세(今世)에 아이와 맺은 인연 및 부모로서 책임에 대해 떠올렸다. 오늘 이 주제를 글로 써서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법을 얻다
중국에서 기공 열풍이 한창 불던 사기, 나는 젊은 청년이었다. 중공의 무신론에 중독되어 기공은 미신이라 여겼고, 아예 믿지 않았으며, 알아볼 생각은 더욱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살던 도시에서 기공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기공을 배우라고 거듭 권하셨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저 ‘노인네들이 하는 신체 단련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여겼다.
그런데 1994년 말, 나는 갑자기 급성 황달성 B형 간염에 걸렸다. 며칠 만에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직장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서 더 큰 병원에 입원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북경에서 ‘파룬궁’을 배운 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내가 병에 걸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파룬궁》 수정본을 들고 병원에 오셨고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이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흔히 “아프면 어떤 방법이든 시도해 본다”고 말한다. 당시 나는 기공을 믿지 않았지만, 기공이 내 병을 낫게 해줄 지 궁금해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겨우 7~8세였던 딸도 나 때문에 간염에 걸려서 자연스럽게 딸도 나와 함께 파룬궁을 배우게 되었다. 나와 딸 모두 병 때문에 수련을 시작한 셈이다. 수련 후 나는 나와 딸이 우연히 법을 얻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부님 법신의 세심한 배치였다.
2. 딸과의 연분
딸이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딸이 내게 한 말이 있다. 나는 그것이 가부좌 중에 본 것인지 아니면 꿈인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지만, 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믿었다. 이 일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고, 수시로 자신의 책임과 아이와의 연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곤 했다.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딸이 말했다. “그때 저는 다른 공간에 있었어요. 사부님께서 출산(出山)해서 법을 전하신다는 말을 듣고 인간 세상에서 법을 얻고 싶었죠. 그래서 그곳에서 인간 세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태어날 집을 찾고 있었어요. 그때 인간 세상을 주관하는 한 신(神)이 제게 와서 말했어요.
“너는 두 집과 인연이 있는데 이 두 집 모두 법(法)을 얻어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 집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 집은 장래에 아주 부유하고 또 높은 관직에 오를 것이다. 네가 이 집에서 태어나면 인간 세상에서 행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 사람들은 명리(名利)의 교란을 받아 수련에는 그다지 정진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집, 즉 우리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집 가족들도 너와 인연이 있고 장래에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집은 아주 평범하지만 이 집 가족들은 수련에 아주 정진할 것이다.”
딸은 “신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에 이미 엄마 품으로 날아가서 태(胎)에 들어갔어요.”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많은 가정에는 흔히 아이가 있는데 그들은 틀림없이 평범한 아이가 아닐 수 있다. 환생하기 전부터 그는 이 가정 사람들이 장래에 대법을 배울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이 집에 가서 환생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배경이 보통이 아닐 수 있다.”(《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나는 나와 딸의 연분 및 그녀의 목적을 알았는데 딸은 법을 얻고 수련해서 반본귀진(反本歸真)하려고 온 것이다. 딸이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은 또한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 스스로 정진하는 것 외에, 딸의 수련에 대해서도 결코 느슨히 하지 않았다.
3. 수련 기초 다지기
나와 딸이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부님께서 우리 병을 고쳐 주셨다.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었고, 딸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부님과 법을 더욱 믿으며 정진실수(精進實修)했다.
나는 속인일 때, 성격이 까다로워서 자주 아이를 야단치고 때리는 방식으로 가르쳤다. 고인(古人)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듯이, 나의 나쁜 행동 때문에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다투는 버릇이 생겼다.
수련하고 나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나는 내 성격을 고치기 위해 방에 “인(忍)”이라고 적힌 종이를 여러 장 붙여 두었다.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아이는 벽에 적힌 “인(忍)”을 가리키며 “아빠, 아빠는 참아내지 못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끊임없는 법 공부와 수련을 통해 내 성격은 점차 좋아졌다. 딸도 그 변화를 보고 엄마와 다투는 나쁜 버릇을 버렸다.
딸은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고,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딸을 좋아했다. 하지만 옆자리 남자아이는 장난이 심해서 자주 딸을 괴롭혔다. 그는 딸의 연필이나 연필깎이를 부러뜨리곤 했다. 그래서 딸은 종종 울면서 집에 돌아와 나와 아내에게 불평하곤 했다. 나는 딸에게 법리(法理)에서 이끌어 잃음과 얻음, 백색 물질과 흑색 물질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했다. 딸도 끊임없이 법 공부와 수련하면서 心性(씬씽)도 계속 향상되었다. 나중에 남자아이에게 다시 괴롭힘을 당했을 때 인내심을 배워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딸은 기쁜 마음으로 내게 말했다.
“아빠, 오늘은 心性(씬씽)을 지켰어요. 그 아이가 저를 괴롭힐 때, 선생님께 말하거나 다투지 않았어요. 그 아이가 저한테 덕(德)을 주고 있다는 걸 알거든요.”
또 한 번은 딸이 갑자기 42도 정도 고열을 앓았다. 어린 딸의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이 화끈거렸다. 나는 딸이 소업(消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너 병원에 갈래?”라고 물었다.
딸은 “아니요, 저는 소업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좋아, 그럼 우리 사부님께 청하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났어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어쩌다 누님이 이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와서는 아내와 내게 잔소리를 하면서, 우리더러 자식의 생사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누님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나와 딸이 거절했다.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해냈기에 이 한 관(關)을 넘길 수 있었다.
아이의 정진실수(精進實修)는 장차 사회에 나가 수련하는데 든든한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중국 각지에서 많은 젊은 대법제자들이 법을 얻어 수련했지만, 오늘날까지 꾸준히 수련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딸이 여전히 수련에 정진하고 있고 여러 방면에서 아주 잘 수련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다진 기초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4. 부모의 책임
대법제자 집의 자녀들은 대부분 다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법을 얻었지만, 일단 인간 세상에 온 후 곧 미혹의 공간에 들어간다. 만약 부모인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자녀의 수련 기초를 튼튼히 다져주지 못하면, 자녀가 성장해 사회에 나가면 자신을 파악하기 어려워, 아주 쉽사리 속인 사회에 오염되거나, 심지어 떨어져 내려가 수련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은 아주 흔하다. 전에 법을 얻었던 소제자(小弟子)들이 일단 수련하지 않으면 그들이 장차 다시 수련할 기회는 없고, 돌아갈 수 없는데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생명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자녀가 법을 얻고도 수련하지 않는 것은 부모인 우리와 상관이 없겠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책임을 다했는가?
그러므로 많은 동수의 자녀들이 성질을 부리며 의도적으로 모순을 일으킬 때, 동수는 늘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잘못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자녀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아이의 명백한 일면이 자신이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원망 등을 어른인 우리에게 표출한 것이 아닌가?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은 단순히 연분일 뿐만 아니라, 또 우리에 대한 신뢰와 우리가 반드시 그들이 법을 얻어 수련하게 해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는가?
오늘 이 문제를 말하면서 나는 동수들이 부모 또는 조부모로서 자녀들과의 연분을 소중히 여기고 중시하도록 일깨우고자 한다. 단순히 아이가 법을 얻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들의 수련을 독촉해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끊임없이 그들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신성(神聖)한 책임이다!
교류 중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7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