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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현인언》으로 본 다툼의 목적

효월(曉月)

【정견망】

위진(魏晉) 시기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어느 사람이 《부현인언(傅玄引諺)–부현이 인용한 속담》이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아마도 민요였을 것이다. 그 안에는 다투지 말아야 할 이치가 담겨 있는데, 꽤 맞는 말이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면
틀린 쪽과 다툼은 마땅치 않고
상대가 옳고 내가 틀렸다면
틀린 쪽과 같아짐이 마땅치 않다

己是而彼非
不當與非爭
彼是而己非
不當與非平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아주 분명하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당연히 옳지 않은 사람과 다투지 말아야 하고, 만약 당신이 틀렸다면 당연히 분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즉, 당신이 옳든 틀리든 남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이치는 반대로 무신론(無神論)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볼 수 없으니 신은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누군가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증거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이런 태도는 또한 실증 과학의 특징이다.

만약 우리가 무신론을 깊이 연구해 보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무신론자가 신(神)을 볼 수 있다면, 그럼 신은 존재하는 것이다. 설사 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증 과학 자체가 자신이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다.

《부현인언》이 말한 것이 옳음에도 사람들은 왜 다투는가? 사실 다투는 사람들은 종종 옳고 그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옳아도 다투고, 틀려도 다툰다. 그들이 다투는 목적은 명예와 이익을 위한 것이며, 심지어 진실을 덮어 감추고서라도 다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현인언》에서 언급한 ‘다투지 않음’은 사실 이미 심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한 가지 표현이다.

우리 또 소동파의 시를 말해보자.

천중천에 절을 올리니
백호 광명으로 대천 세계 비추시네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주 금련(金蓮)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시네.

稽首天中天
毫光照大千
八風吹不動
端坐紫金蓮

소동파의 문채는 아주 뛰어났다. 겉보기에 입정력(定力)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불인(佛印) 화상이 “방귀”라고 한 마디를 내뱉자,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달려가 불인과 논쟁을 벌이려 했다.

불인이 말했다.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느다더니, 방귀 한 마디에 강을 건너오는군요.”

소동파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알았다.

소동파는 왜 불인과 다투러 갔는가? 바로 그의 경지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명예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다툼의 배후에는 모두 명예와 이익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명예와 이익을 다툰다”고 말한다. 사람이 다툴 때는 모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으로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문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누가 다투려 한다면, 그가 바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