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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나온 슬픔과 극에 몰입하는 뛰어난 연기 – 조조의 《단가행》 해석

청풍(淸風)

【정견망】

《단가행(短歌行)》은 동한(東漢) 말기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조조(曹操)가 고대 악부(樂府)를 소재로 지은 시로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술을 마주하고 노래하세 우리 인생 얼마나 되리!
아침 이슬 같은 인생 지난 세월 고생 많았지
탄식하며 슬퍼해도 맺힌 시름 떨치기 어렵구나
어찌 시름 풀어볼까? 오직 두강의 술만 있을 뿐
푸르른 그대 옷깃 내 마음에 아련한데
오직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나직이 읊조리네
“우우” 사슴소리 들판의 풀을 뜯는구나
귀한 손님 내게 온다면 비파 타고 생황 불리라
밝디밝은 저 달은 언제쯤 딸 수 있을까?
마음에 솟는 시름 끊을 수가 없구나
이리저리 먼 길 지나 황송하게 찾아와준다면
오랜만에 만나 잔치를 벌이고 옛정을 간직하리라
달은 밝고 별은 희미한데 까치가 남으로 날다가
나무주위를 세 바퀴 돌더니 어느 가지에 의탁할까?
산은 높다 거절 않고 바다는 깊어도 싫다 않네
식사도 멈추고 인재 구한 주공 천하 인심 얻으셨네

對酒當歌,人生幾何,
譬如朝露,去日苦多。
慨當以慷,憂思難忘。
何以解憂?唯有杜康。
青青子衿,悠悠我心。
但爲君故,沉吟至今。
呦呦鹿鳴,食野之萍
我有嘉賓,鼓瑟吹笙。
明明如月,何時可掇?
憂從中來,不可斷絕。
越陌度阡,枉用相存。
契闊談䜩,心念舊恩。
月明星稀,烏鵲南飛。
繞樹三匝,何枝可依?
山不厭高,海不厭深。
周公吐哺,天下歸心。

우리가 고시(古詩)를 읽을 때는 반드시 당시 사회 상황과 작가가 처한 층차에서의 심태(心態)를 이해해야만 진정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사회와 고대 사회는 이미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고대 사회의 분위기는 신(神)을 믿고 하늘을 공경한 것으로 현대인은 이미 이런 기본적인 개념조차 상실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겉으로는 신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뼛속 깊은 곳에서는 신을 믿지 않는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반드시 사회 환경에 기반해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즉 당시 사회는 수련의 분위기가 아주 강했고, 조조는 상당히 좋은 근기(根基)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수련에 관한 일을 깊이 믿었고 또한 도(道)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하지만 동시에 또 그 일생에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련할 수 없었다. 그는 인생이 짧고 고달파 수련할 시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깊이 탄식하며 근심했다. 따라서 이 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 몇 구절이 첫 번째 부분이다.

“술을 마주하고 노래하세 우리 인생 얼마나 되리!
아침 이슬 같은 인생 지난 세월 고생 많았지
탄식하며 슬퍼해도 맺힌 시름 떨치기 어렵구나
어찌 시름 풀어볼까? 오직 두강의 술만 있을 뿐”

이는 그 생명의 명백한 일면이 표현하는 감동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신(神)의 배치에 따라 반드시 극(劇)에 들어가 자신의 일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탄식하며 술로 시름을 달랜다. 이 몇 구절의 의미는 구체적이고 아주 명확하고, 역대로 많은 해석이 있기에 필자가 더 반복하진 않겠다.

뒷부분은 바로 극에 몰입하는 부분이다. 기왕 연기를 시작했으면 잘해야 한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어진 인재를 구하려는 갈증을 표현하는데, 구체적인 해석은 역대의 해석을 참고할 수 있다. 큰 극을 연기하려면 한 명의 리더만으로는 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주인공들과 여러 조연들이 있어야 한다. 속인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패업(霸業)을 이루려면 주변에 인재가 많아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그가 표현한 것은 인재에 대한 갈망이다. 역사적으로 크고 중요한 역할을 연기하자면 반드시 근기가 아주 좋아야지만 신(神)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층차는 기본적으로 그만 못하다.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조조를 주인공의 하나로 하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매 한 장면 아주 흥미로운 연기를 펼쳤다. 어떤 장면에서는 줄곧 승리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였으며, 어떤 장면은 우여곡절이 많았고, 어떤 장면은 순탄했으며, 어떤 장면은 가슴 아팠고, 어떤 장면은 미소를 짓게 했으며, 어떤 장면은 기개가 대단했고, 어떤 장면은 처참했다. 지혜롭지만 우둔하고 권력을 전횡했지만 또 관용도 베풀었으니 간단히 말해, 조조의 연기는 대단히 뛰어났고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전히 극에 몰입하지 않았고 때때로 극에서 나올 때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근기가 좋은 사람은 덕(德)의 성분이 큰데, 이는 다양한 방면에서 드러나며, 뛰어난 재능도 그중 하나다. 조조의 비범한 문학적 재능이 바로 그렇다. 《단가행》는 한 생명이 극에서 나올 때의 청성(淸醒)함을 표현했기 때문에 예술적인 설득력이 아주 강하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은 연극과 같다고 말하지만, 그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조조가 그중 하나였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정치적인 포부를 표현한 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속인 층차에서 인재를 구하는 갈망을 초월한 것이다.

“마음이 연극 속에 매료되니
현란함 그 얼마나 다채롭던가”(《홍음 2》 〈큰 무대)

정말로 그렇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