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석가모니 살아생전에 한번은 그가 목욕을 하려고 제자에게 목욕통을 씻어 놓으라고 했다. 제자는 목욕통 안에 벌레가 있는 것을 보고 돌아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다시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씻으라는 것은 목욕통이네.” 제자는 그제야 깨닫고 목욕통을 깨끗이 씻었다.”(《파룬궁》〈제3장〉)
매번 이 단락의 법을 읽을 때마다 매우 의아했다. 이 법의 내함(內涵)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제 이곳을 읽다가 비로소 깨달았는데, 개인적인 이해는 바로 기점(基點) 문제이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모두 목적, 즉 기점이 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생존 환경이 있어야 한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목욕하고, 거주하는 것 등은 모두 가장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다. 하지만 목욕을 하려면 벌레를 해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평소 청소를 하면서 벌레, 바퀴벌레, 개미 등의 생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이때는 당연히 청리할 대상이지 받들어 모실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점은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일을 하는 기점은 바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당연히 법을 수호해야 하며, 여기에는 인류의 생존 환경도 포함되는데, 즉 우주 법리의 가장 낮은 한 층이다.
그러므로 살생에 대한 견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살생해서는 안 되지만, 너무 소심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도 안 된다.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인간 세상의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와 같아야 한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는 또한 발정념으로 사악을 청리한다. 이 역시 자비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기점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있으며, 사람 속의 선량(善良)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나는 일찍이 소수 사람의 마음이 대법(大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무엇을 수호하기 위한 것임을 보았다. 만약 당신이 한 속인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류사회를 수호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정진요지》〈뿌리를 캐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어떤 일에서는, 사람이 되는 것과 법을 실증하는 기점이 겹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쓰는 ‘X’자처럼 교차점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전히 같지 않다.
법리에 대한 개인의 작은 인식을 말했으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