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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초찬의 기발한 계책으로 백성을 구하다

앙악

【정견망】

북송 《양가장전전(楊家將全傳)》 삽화 중 초찬, 1892년 광서 임진년 판본. (공유 영역)

양연소가 변방 관문을 지키던 어느 해, 기근이 발생해 이재민들이 생존을 위해 양식을 약탈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조정은 권신(權臣)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죽을 죄를 짓지 않은 이 백성들을 전부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수장(守將)이었던 양연소는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여, 부하 초찬(焦贊)의 ‘무모한’ ‘악명’을 이용해 이 위기를 해소했을까?

초찬은 북송 영웅 양연소 휘하의 장수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얼굴이 붉은 흙 같고, 눈은 놋쇠 방울 같으며, 등은 호랑이처럼, 허리는 곰처럼 생겼고, 정강(精鋼)으로 만든 쌍채찍(雙鞭, 때로는 철창을 들기도 한다)을 들고 있어 만 명을 감당할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의형제인 맹량(孟良)과 함께 원래 파초산(芭蕉山)의 산적 두목이었으나, 한 차례 전투에서 양연소에게 패배한 후 그의 휘하로 귀순했다. 이후 초찬과 맹량은 양연소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 함께 요(遼)에 항거하며 하북(河北) 일대에서 명성을 떨쳤다.

초찬은 무예가 뛰어났지만, 성격이 충동적이고 무모하여, 일찍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간신 사금오(謝金吾) 일가족을 살해하는 바람에 양가(楊家)가 멸문지화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무제의 《구무재이등조(求茂才異等詔)–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를 구하는 조》에서 말했듯이 “선비가 혹 세상의 관습을 거스르는 허물이 있을지라도 공명(功名)을 세운다”는 말처럼, 이른바 사람마다 특기가 있고, 지도자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어느 해, 양연소가 진수하던 삼관구(三關口)에 수십 년 만에 보기 드문 큰 가뭄이 닥쳤다. 농지는 한 조각 한 조각 점차 황폐해졌고, 굶주린 백성들은 들에 나가 나물 등을 캐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양연소는 가뭄 피해가 심각해지자 전시 비축 양곡을 풀어 재민들을 구제하기로 결정하고 상주하는 공문을 올렸으나, 조정에 도착한 공문은 돌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듯 오래도록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재해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양연소가 사사로이 곡식 창고를 열기로 결정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한 무리의 백성들이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떼를 지어 관청의 양식을 약탈한 것이다. 지방 관아는 이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조정에 상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전(衙役)들을 보내 사람들을 체포했다. 결국 양식을 약탈한 일에 가담한 1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는 이상하게도 신속하게 이 백성들을 처형하도록 요구했다. 양연소는 이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기근 상황을 조정에 상주하면서,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가볍게 해줄 것을 청했으며, 자신을 백성 대신 벌을 받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당시 조정 권력은 권신 반미(潘美)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양연소의 요청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흠차대신(欽差大臣)을 삼관구에 파견해, 지정된 장수를 보내 병력을 이끌고 죄수들을 서울(京城)로 압송하도록 명령했고,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양연소는 하는 수 없이 초찬에게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준비시켰다.

초찬 역시 당연히 백성들을 죽음으로 압송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명령을 받은 초찬은 홀로 울분을 달래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마침 양연소가 문병을 왔다. 초찬은 양연소를 보자마자 불평했다. “형님! 왜 제게 백성들을 죽음으로 압송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까! 우리 차라리 병사들을 데리고 이번 임무를 틈타 조정에 가서 반미 무리 같은 간적(奸賊)들을 죽이고, 아울러 군주 곁의 사악한 무리들을 제거합시다!”

양연소가 말했다. “아우님! 잠깐 진정하시게.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자네는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되네.” 그러고는 초찬에게 큰 비단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고, 나지막하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말을 다 듣고 난 초찬은 연신 “좋은 계책입니다! 좋은 계책이에요!”라고 감탄했다.

초찬은 명령을 받은 다음 날, 병사들을 이끌고 범죄자들을 압송하며 흠차대신의 수행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가는 길 내내 백성들은 연이어 슬피 울부짖었지만, 초찬은 오히려 계속해서 악담을 퍼부으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흠차대신의 수행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끊임없이 채찍으로 이들을 때렸다. 압송되는 사람들은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이때 초찬이 갑자기 쌍채찍을 들어 연신 크게 꾸짖었다. “너희 이 악랄한 백성들아! 더 이상 함부로 울부짖으면 내가 당장에서 너희를 모두 죽여버리겠다! 어차피 죽을죄인데, 이렇게 하면 나도 너희와 함께 길을 가는 수고를 덜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고는 쇠채찍을 힘껏 들어 내려쳤다. 이때 마치 한 갈래 검기(劍氣)가 곧장 솟아나더니, 수행원의 가죽 채찍이 손에서 튕겨 날아갔고, 수행원은 그 자리에서 너무 놀라 다리가 풀렸다. 초찬은 얼마 전 간신 사금오 일가족을 살해하여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수행원은 혹시라도 실수로 재앙을 불러올까 두려워 채찍을 주우러 가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것이 백성들을 구하여 더 이상 채찍질을 당하지 않게 했다.

일행은 한참을 걸었고, 큰 비를 만났으며, 날도 저물었다. 마침 주막 객잔을 만나자 초찬은 흠차대신에게 잠시 이 가게에서 쉬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피곤하고 배고픈 일행은 이 주막에 자리를 잡았다. 주막에 들어서자마자 초찬은 모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고 술과 음식을 주문하여 모두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 틈을 타 그는 부하를 시켜 백성들에게도 음식을 가져다주게 했다.

북송 《양가장전전》 삽화, 1892년 광서 임진년 판본. (공유 영역)

그리고 초찬은 술 기운을 빌려 주인장에게 은자를 꺼내주며 돼지, 양을 더 많이 잡고 술과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해 모두 먹고 마시게 하라고 분부했다. 그는 호탕하게 말했다.

“경성에 가서 견문을 넓힐 기회가 생겼으니, 이 한 끼는 내가 대접하겠소! 모두 마음껏 먹고 마시오. 이 한 끼는 모두 내가 계산하리다!”

초찬은 또 흠차 일행과 한 명 한 명 술잔을 돌리며 통쾌하게 마셨다. 술잔이 세 순배를 돌자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그는 화장실에 가는 핑계를 대고 백성들이 머무는 천막으로 가서 몰래 그들의 수갑과 발목 족쇄를 모두 풀어주고 그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그 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객잔으로 돌아와 모두와 계속 먹고 마셨다.

잠시 후, 천막 안의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음식이 부족하다고 외치더니, 점점 소리가 커졌다. 객잔 안에서 먹고 마시던 사람들은 초찬이 맹렬하게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일격의 힘으로 탁자가 크게 뚫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다! 너희 이 악랄한 백성들아, 정말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오는 길에 떠든 것으로 부족해서, 밤이 되니 또 소란을 피우다니! 내가 너희를 하나하나 때려죽이겠다! 어차피 조정에서도 너희에게 사형을 판결했으니, 여기서 너희를 다 죽여버리면 나으리가 압송할 수고를 덜겠다!”

말을 마치고는 쇠채찍을 휘두르며 비틀거리면서 탁자 몇 개를 부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희는 잘 들어라! 모두 내게서 비켜라! 아무도 움직이지 말고, 아무도 나오지 마라. 나는 지금 몇 사람을 죽여서 내 마음속의 울분을 해소하고 싶은데, 나를 건드렸다간 술에 취해 실수했다고 나를 탓하지 마라!”

흠차 일행은 그가 정말 취했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한쪽으로 피했고,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초찬은 밖으로 뛰쳐나갔고, 객잔 안의 사람들은 초찬의 분노에 찬 고함 소리를 들었다. “쾅! 쾅! 쾅!” 하는 연속된 큰 소리가 백성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자, 흠차 일행은 더욱 겁을 먹고 벽 모퉁이로 숨어 아무도 감히 나가서 보지 못했다.

얼마 후, 초찬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들어왔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쇠채찍으로 흠차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은 어서 경성으로 돌아가 이 죄수들이 도중에 소란을 피우다가 나에게 모두 맞아 죽었다고 보고하시오!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다시 삼관구로 돌아가 요나라 병사들을 지키겠소!”

모두가 나가서 보니, 그 100여 명의 백성들이 모두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는 모습만 보였다. 죄수들이 모두 살해된 것을 보자, 흠차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서둘러 말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성 방향으로 달려갔다.

흠차 일행이 멀리 떠나자, 핏물 속의 백성들이 하나둘씩 다시 기어 올라왔다. 사실 양연소가 준 큰 비단 주머니 안에는 붉은 염료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초찬은 주막에서 도살한 돼지와 양의 피도 많이 섞었던 것이다. 오는 길 내내 초찬이 백성들에게 퍼부은 악담이나 주막에서의 돼지, 양 도살은 모두 그들이 미리 계산해 둔 계책이었다.

백성들은 구원받은 후 초찬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그 후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어떤 이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근처 마을로 가서 생계를 도모했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초찬의 휘하로 들어가 병사가 되기도 했다.

경성으로 돌아온 흠차 일행은 죄수들이 모두 초찬에게 그 자리에서 즉결 심판으로 처형되었다고 반미에게 보고했다. 반미는 초찬을 너무 압박했다가 또 큰 난리를 일으킬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양연소는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여 초찬의 무모한 ‘악명’을 활용하여 이 100여 명의 백성들을 구해냈다.

참고 사료:
* 《양가부 세대 충용 통속 연의(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 명나라 작자 미상, 진회묵객(秦淮墨客) 교열
* 《양가장 외전》 허베이 소년 아동 출판사 1986년 출판 자오윈옌(趙雲雁) 수집 정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7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