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丹陽) 정리
【정견망】
마성(魔性)이 크게 폭발
서기 64년 7월 18일 밤, 로마 시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대화재는 39일 동안 지속되었고, 성안의 14개 구역 중 3개 구역이 전부 불탔고, 7개 구역이 심각하게 파괴되었으며, 겨우 4개 구역만 남았다. 로마 인민은 이 전례 없는 재난을 겪었으며,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돌았고, 몸 둘 곳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무시무시하게 성 전체를 휩쓰는 불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네로가 도리어 희극 의상을 입고, 높은 탑 위에 서서, 리라를 연주하며, 트로이 멸망에 관한 민요를 크게 노래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타오르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소문이 사방에 퍼졌는데, 네로가 방화범이며, 네로가 새로운 로마 시를 건설하기 위해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대화재 이후, 네로는 이재민들을 구제하러 가지 않고, 도리어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여 자신의 ‘금옥(金屋, 황금 궁전)’을 짓느라 바빴다. 그의 왕궁 내부는 황금, 보석, 진주로 장식되었으며, 식당에는 상아로 상감한 천장이 있었고, 회전하는 천장은 꽃과 향수를 아래로 뿌릴 수 있었다. 그의 왕궁은 로마의 가장 중심부에 있었고, 기이한 꽃과 풀, 호수와 산색이 있었으며, 내부의 욕실은 해수(海水)를 끌어들일 수도, 샘물(泉水)을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이 화려하고 호화로우며 독특한 건축물이 준공되었을 때, 네로는 기뻐하며 “이래야 사람이 살 만한 곳이지”라고 감탄했다.
방화 혐의에 직면한 네로는 기독교도들을 선택하여 책임을 지게 했으며, 처음에는 그들을 방화범으로 고발했고, 나중에는 그들을 ‘인류를 증오하는 자’로 고발했다. 당시 이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노예, 그리고 타향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박해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그러나 네로가 우쭐대며 기고만장해 있을 때, 이탈리아 중남부의 나폴리에서 갑자기 한 술사(術士)가 나타났다. 그는 성벽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네로가 잔혹하고 포악한 폭군임을 통렬히 비난했고, 또 브리타니쿠스의 원혼이 영원히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술사는 감옥에 잡혀 들어갔고, 모든 사람은 그가 고문을 당하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이 술사는 신통력이 광대하여, 반나절도 안 되어 이미 탈옥하여 도망쳤다. 그때부터 로마 사람들은 그를 복수자의 술사라고 불렀다. 분노하여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 네로는 사람을 보내 사방으로 그를 잡으려 했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다. 일 년 후, 이 술사는 죽었는데, 스스로 ‘병사(病死)’한 것이었\다. 그가 임종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네로가 황제를 하는 기간은 결코 15년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때, 네로는 이미 재위한 지 11년 반이었다.
술사가 죽은 후, 네로는 더욱 의심이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일 처리도 더욱 미쳐 날뛰었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을 살해했으며, 특히 기독교도들에게는 더욱 흉악하고 알랄했으며,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네로와 가까운 시종의 폭로에 따르면, 네로는 때때로 브리타니쿠스의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고, 네로는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일 처리가 더욱 사악함으로 가득 찼다.
네로의 잔혹한 기독교도 학살 행위는 결국 로마 인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네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의심을 품었으며, 그를 반대하는 하나의 음모 집단이 있다고 단정했다. 극도의 광란과 공포 속에서, 그는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전체 로마는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가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기만 하면, 그를 처형할 수 있었다. 많은 원로원 의원, 명사, 그리고 호위대 장교들이 처형되었다. 일부는 참수되었고, 일부는 자살을 명령받았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동맥 혈관이 잘렸다. 심지어 그의 스승이자 고문인 세네카(Seneca)조차 두 손이 잘렸다.
모두 등을 돌리다
네로의 극도의 사치와 향락, 공포 통치, 광란적인 학살, 그리고 기독교도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원로원의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국민들은 모두 그를 극도로 혐오했다. 일반 백성, 군인, 향신(鄕紳)과 현달(賢達)한 사람들로부터 원로원 의원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더 이상 그의 잔혹하고 가혹한 정치를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서기 68년, 스페인과 갈리아(Gaul) 속주의 총독들이 인민들에게 봉기할 것을 호소했다. 로마 군대는 갈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심지어 멀리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대군도 연이어 폭동을 일으키며, 각 방면의 군대가 로마를 향해 진군했고, 지방 관리들은 잇달아 네로에게 배반을 선포했다. 로마 원로원은 네로의 왕위를 폐하고, 그가 불법이며, 인민의 공적(公敵)이라고 선포했다.
군대와 백성들이 왕궁을 에워싸고 네로와 따져 물으려 했다. 이때에 이르러 네로는 이미 모두에게 등 돌림을 당했다. 네로는 궁정 호위대에게 자신이 도망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인민들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감히 궁정을 벗어나 인민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죄업이 깊음을 알았고, 결국 한밤중에 투포를 입고 네 명의 하인만을 데리고 말을 타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계속)
참고자료
1. 《고대 로마 초탐(初探)》
2.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
3. 《폭군 네로》
4. 《네로의 자업자득(自找斃命)》
5. 《로마 제국의 멸망》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2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