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
【정견망】
청(淸)나라 함풍(咸豐) 연간에, 호남(湖南) 영향(寧鄉) 출신의 장(張) 모(某)라는 인물이 순무(巡撫) 아문에서 서리(書吏)를 맡고 있었다. 그는 집안에서 여섯째였으며, 영양현 사도(四都)에 친척이 있었기에 매년 공무에서 틈이 날 때마다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
함풍 2년, 태평군(太平軍)이 호남성까지 공격해 들어오자 성도 장사(長沙)에는 계엄령이 내려졌다. 태평군은 정보 수집을 위해 밀정(密探)들을 사방에 파견하였는데, 이들 중 청나라 관아에 붙잡혀 심문을 받은 자가 밀정들의 몸에는 표시가 있다는 사실을 자백하였다. 그 표시는 문신, 원형 무늬, 혹은 꽃무늬 등이었으며, 손발이나 어깨, 등 어디에든 이러한 표식이 있는 자는 모두 암탐(暗探)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현령은 암탐 한 명을 잡을 때마다 일정량의 은자를 포상하겠다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아전(衙役)들은 포상금을 얻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져 체포에 나섰다.
당시 그 지역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었다. 평소 놀고먹거나, 술·도박·매춘을 일삼거나, 아편을 흡입하던 소년들이 아버지나 형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 뉘우침을 맹세하면, 스스로 피부에 ‘존심통계(存心痛戒: 마음을 보존하고 아프게 경계함)’ 등의 글귀를 새겨 경계하는 표시로 삼았다. 이로 인해 향촌의 백성들 중 무고한 이들이 아전들에게 밀정으로 오인받아 붙잡혀 처형당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그해 5월, 장 서리는 친척 방문을 마치고 성도로 돌아가는 길에 한 어시장(魚市)을 지났다. 가마꾼이 작은 주막에서 잠시 쉬어가려 하였기에 장 서리가 가마에서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한 사람이 “육나리(六老爺)! 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나는 곳을 보니 쇠사슬에 묶여 나무 아래에 구금되어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평소 짚신을 삼아 생업을 이어가던 자로 장 서리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장 서리가 그에게 연유를 묻자, 노인은 자신이 젊은 시절 짐꾼으로 일할 때 어깨에 종기가 생겼는데, 의원이 바늘에 먹물을 묻혀 종기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 찔렀고, 종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답하였다. 그는 방금 웃통을 벗고 일하다가 아전에게 태평군의 밀정으로 붙잡혔으며, 관아에 끌려가면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하였다.
장 서리는 이 노인이 상당한 재산을 모았음을 알았기에, 아전들이 재물을 뜯어내려 하는 속셈임을 짐작하였다. 그는 술을 마시며 앉아 있는 아전들을 불러, ”나는 장 모이며 현재 순무 아문에서 서리로 일하고 있소. 20여 년간 이 길을 지나면서 이 노인이 종일 짚신만 삼을 뿐 외출하는 일이 없음을 항상 보아왔소. 만약 그가 정말 밀정이라면 당신들은 윗사람에게 고하고, 그 책임은 내가 지겠소“라고 말하였다. 아전들이 주막 주인에게 확인하니 장 서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이에 노인을 놓아주었다. 장 서리는 또한 엽전 두 묶음을 꺼내 아전들에게 술값으로 주고, 노인에게는 다른 곳으로 속히 거처를 옮겨 더 이상 표적이 되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그해 7월, 태평군이 갑자기 장사 경계에 쳐들어와 남문으로 곧장 진격하였다. 성 밖의 주민들은 다투어 도망하였는데, 장 서리의 가족은 성 밖의 벽상가(碧湘街)에 살고 있었다. 당시 장 서리와 그의 맏아들은 성 안에 있었으므로, 집에는 아내, 며느리, 딸 하나, 그리고 두 명의 어린 자식들만이 남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난리 통에 장 서리의 아내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며느리, 딸,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강변으로 달려가 배를 타고 피난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만약 배를 구할 수 없다면 능욕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투신(投水)할 작정이었다.
그들이 강변에 이르렀을 때, 얼마 없는 배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 마침 작은 배 한 척이 막 뭍으로 대고 있었기에 장 서리의 아내는 큰 소리로 구원을 요청하며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배가 강 한가운데로 나아가자, 뱃사공 노인이 그들에게 어디 사람이며 어디로 가려 하는지 물었다. 장 서리의 아내는 ”우리는 영양 사람이며, 남편 장 모는 성 안에 있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급히 도망쳐 나왔으나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니, 노장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답하였다.
뱃사공 노인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혹시 육나리의 부인이십니까? 육나리는 저의 은인이시니, 제가 마땅히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구조되었던 경과와 그 후 재난을 피해 고기잡이배를 몰며 생계를 이어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노인은 “오늘 아침 태평군이 공격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배는 적고 사람은 많으니 어떤 뱃사공들은 하루 만에 큰돈을 벌었다기에 저도 이 기회에 돈을 좀 벌어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은인의 가족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실로 하늘이 저에게 은혜를 갚게 해 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강 건너편에 도착하여 일단 간단히 거처를 마련하였으나, 태평군이 곧 당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노인은 다시 배를 바꿔 물길을 따라 그들을 강소(江蘇)의 정강(靖江)으로 보냈고, 이후 타시(陀市)에 이르렀다. 노인이 먼저 뭍에 올라 근처에 있는 큰 기와집을 보았다. 알아보니 소(蕭)씨 성을 가진 대부호였기에 소가를 찾아가 장 서리 아내 일행의 내력과 피난 이유를 설명하며 혹시 별채 방 두 칸을 빌려 잠시 머물 수 있는지 물었다. 소가에서 이를 허락하였고, 장 서리 아내 일행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이곳에 임시로 거처하게 되었다.
다음 날, 장 서리의 아내는 며느리와 딸을 이끌고 소가의 부인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양측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 부인은 장 서리의 딸이 거동이 우아하고 단정하며 얌전한 것을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 하였다. 그 후 장 서리의 아내와 소 부인은 매일 함께 지내며 정이 깊게 들었다.
어느 날 소 부인이 물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나이가 열일곱 살로 매우 총명합니다. 허나 여러 차례 혼담이 오갔으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혹시 따님이 아직 시집가지 않은 규중에 계시다면, 저희와 인연을 맺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장 서리의 아내 또한 소가의 아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인상이 매우 좋았으므로, 기꺼이 승낙하였다. 두 집안은 정혼(定婚)하였고, 장 서리 아내 일행은 안채로 초청되었다. 한 달여 후 길일(吉日)을 택하여 두 사람은 혼례를 올렸다.
한편 장 서리는 당시 태평군이 성 남쪽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벽을 따라 밧줄을 타고 성 밖으로 내려와 작은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는 문지기만 있을 뿐 가족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으며, 문지기 또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장 서리는 가족의 행방을 알아볼 곳이 없어 매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다행히 일가친척들이 곁에서 거듭 위로하여 비로소 자살하려는 마음을 버렸다.
섣달이 되자 태평군이 이미 남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장 서리가 성 안으로 돌아갈 채비를 할 때, 그 뱃사공 노인이 찾아와 장 서리의 가족들이 무사하며 딸은 훌륭한 사위까지 얻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장 서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당일로 가족들을 다시 집으로 맞이하였으며, 노인에게는 집에 머물며 편안히 노후를 보내도록 하였다.
이는 실로 남의 생명을 구한 것이 곧 자신을 구한 것이 되었으니, 천도(天道)의 인과응보는 정말 기묘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