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계항
【정견망】
전편인 <윤회기실:분신유술>에서 나는 동시에 두 사람으로 태어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좀 복잡해보이긴 하지만 사실 이것은 내가 분신해서 환생(轉生)한 역사 중에서 가장 복잡한 때는 아니다. 가장 복잡했던 때는 신의 걸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당시 상황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명나라 초기 나는 대장군 남옥(藍玉)으로 대명(大明)을 안정시키기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나중에 주원장에서 주살당하고 멸족 당했다. 남옥의 사후 원신이 가물거리며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한참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몰랐다. 갑자기 어느 가마 앞으로 다가 왔는데 앞뒤로 각자 한명씩의 가마꾼이 있었다. 앞쪽의 사람은 흰옷을 입었는데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뒤쪽 사람은 검은 옷을 입었는데 역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 한 사람이 차리(差吏 하급관리) 같은 사람이 있는데 자색 옷을 입고 있었다.
남옥이 혹시 헛것을 본게 아닐까 의아해 하는데 가마 하나가 앞으로 오더니 멈추었다.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몸을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남장군이십니까? 지신(地君)에게 청이 있습니다.” 남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의인은 남옥에게 가마에 오르라고 했다. 작은 가마는 가볍게 날리듯이 달려 잠시 후 저승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남옥이 주렴을 열고 내다보니 내하교(奈何橋), 수정(愁亭), 고방(苦坊) 등 길가에 여러 가지를 보았다. 마침내 염라왕 전에 도착했다.
염라왕은 남옥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자리에 앉게 했다. 남옥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염라왕은 “옛말에 ‘억울함에 이유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 고 하지 않았소? 언젠가 갚을 날이 있을겁니다. 성주(星主)는 어찌 그리 급하시오.” 남옥이, “왜 성주라고 부르십니까?”라고 묻자 염라왕이 웃으며 말했다. “하늘에서 성운이 하나 떨어지면 지상에 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하늘에 별과 대응되며 여러 별들이 찬란한데 그중 하나가 당신입니다.”
염라재왕이 말을 마치고는 사람을 시켜 남옥을 데리고 다른 곳에서 쉬게 했다. 그리고 자기는 또 공무를 처리하러 갔다. 문서를 관장하는 사람이 남옥을 보러 왔는데 이 사람은 남옥이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남옥의 장인인 영신국(寧申國)이었다. 노인은, 자신이 착하게 베풀기를 즐겼으며 덕을 쌓았으므로 사후에 저승에서 문서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올해 생사부에 딸과 사위의 이름을 보았는데 딸의 운명이 불쌍해 염라왕에게 “딸이 좀 더 살게 할 수는 없습니까?”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염라왕은 “안 된다. 이 사람들은 죽은 후 즉시 다른 배치가 있을 것이며 게다가 남씨는 자손을 남길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래서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남옥이 온다는 말을 듣고 달려와서 남옥과 말을 나눈 것이었다.
사람 생사의 화제를 말하자 노인이 말했다. “생사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네. 귀신이 생사권을 장악하고 있지, 하지만 만사는 인연이 있어 저승에 이런 말이 있다네. ‘염라왕이 삼경에 죽으라고 하면 너는 오경을 넘기지 못한다.’”
남옥은 노인에게 자신과 주원장이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지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자고 이래로 원한은 서로 갚는 것이니 너무 따지진 말게. 신하된 자로서 자네도 과실이 있고 너무 설쳤다네.” 남옥은 말이 없었다.
노인은 남옥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다. 남옥은 저승의 관리들이 매우 바쁜 모습을 보았다. 높은 곳에 자의를 입은 관원이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자기가 방금 갔던 곳으로 갔다. 또 백의를 입은 관리가 사람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또 우두마면(牛頭馬面 소 대가리에 말의 모습을 한 사람)이 몸에 사슬을 묶은 사람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남옥은 궁금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가는 곳이 다 다를까.
궁금함을 묻자 노인이 말했다: “이것은 천기(天機)일세, 누설하면 안 되지. 그러나 자네한테는 말해줘도 무방하겠네. 이곳에 오는 사람은 높낮이가 다 다르다네. 염라전에 그들을 기다리는 곳이 세군데 있다네. 상등인은 자의인이 데리고 상층전에 올라 염왕을 뵙고 앉을 수 있다네. 그 다음은 백의인이 데리고 가는데 생전에 그리 큰 나쁜 짓은 하지 않았으니 중등전에 오르고 삼등인은 죄인이며 우두마면이 잡아가고 손발에 족쇄를 채워 하등전에 들어간다네. 작은 귀신이 기다리며 염왕의 심판을 기다린다네.
바로 이렇다:
오는 자 모두 객이로다
객에는 예사롭지 않은 자 있어
자의는 손님을 맞이하고
백의는 보통 사람을 맞이하며
큰 죄지은 사람은 우두마면이 바쁘다네
來者都是客
客有不尋常
紫衣迎上賓
白衣迎尋常
大罪之人現
牛頭馬面忙
남옥이 물었다. “염라전을 거치지 않고 안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있지, 내력이 큰 사람이나 세상에서 큰 잘못이 없는 사람은 하늘에서 파견되어 와서 염라왕과 이 사람의 서류를 조사하고 천상의 음간에서 이미 이 사람의 갈 곳을 판정해 놓아 죽은 후 직접 하늘에서 받아간다네. 그리고 안배를 기다려 다시 환생하지.”
저승에서 하루를 쉬며 기다리자 하늘에서 사람을 보내어 남옥을 맞이했다.
하늘에서 남옥은 전생신군(轉生神君)을 보았다. 이때 전생신군은 마침 네 신과 회전판(轉盤 사람의 인생을 정하는 판)을 마주하고 상의하고 있었는데 어투나 표정이 매우 진지하고 엄숙했다. 남옥도 그들이 무엇을 상의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혼자서 천상의 경치만 감상했다. 한참이 지나자 전생신군은 표정이 가벼워졌고 마치 큰 짐을 벗은 듯했다. 그는 남옥에게 말했다. “너는 이번에 전생하면 매우 번거로울 것이야. 이미 잘 배치했으니 분신사군(分神使君)을 따라가게.”
인간세상의 사정을 더욱 합리적이고 완벽하며 조금의 누락도 없게 하기 위해 때로는 많은 신들이 손을 써야 한다. 남옥의 이번 전생은 바로 이 다섯 신선들의 걸작이었다. 이들은 남옥에게 타당한 안배를 한 후 모두들 아주 가뿐하고 득의만만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남옥은 분신사군에 의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같은 세에 태어났다. 남옥의 이번차 전생은 확실히 어려웠다. 분신하여 전생했을 뿐 아니라 분신하여 태어난 중에 또 전생해야 했다. 어떻게 전생에 또 전생을 하는가? 자세히 들어보라.
남옥의 첫번째 분신은 1396년 운남(雲南) 여강(麗江)에서 출생했고 이름은 방소평(方少平)이었다. 부잣집 자제로서 총명하고 영리했으나 15세에 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룡사(烏龍寺)란 사찰에 들어가 출가수행 했다. 법명은 혜지(慧持)였고 수행에 정진해 나중에 주지가 되었다.
혜지 스님은 위로는 천문에 아래로 지리에 통달하여 기인들이 모두 그를 찾아왔다. 혜지는 잘못을 고쳐주거나 선을 권하며 136세까지 살아 쌓은 공덕이 무량하며 선한 인연을 무수히 맺었다.
그는 특히 한약, 술류(術類)에 정통했으며 또한 자신이 수련해낸 신통으로 난치병을 많이 고쳤다.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 묘령의 여인이 갑자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데리고 와서 구해 달라고 했다. 혜지가 보니 그녀는 화장 거울에 대해 너무 눈을 빼앗겼고 마음을 함부로 움직여 눈에 동공에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미려동신(美麗瞳神)이 유랑하던 사악한 동신(邪惡瞳神)에 쫓겨난 것이었다. 혜지는 매일 조용한 방에서 절을 하고 염불을 하여 자기를 검사하고 망령된 생각을 내지 않으면 백일 후면 완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인이 돌아간 후 그대로 하자 과연 백일 후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여자는 감사를 드렸다.
한번은 소 치는 목동이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이 데려 왔다. 혜지는 한그루 나무를 그리더니 소년에게 이 나무를 찾아가 꿇어앉아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라고 했다. 소년이 그대로 하고 절을 했더니 말을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혜지는 신통력으로 목동이 소를 먹일 때 나무에 대고 오줌을 누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그때 노수낭랑(露水娘娘)이 나무에서 쉬고 있었는데 소년이 자기를 불경하게 대한데 분노하여 이슬 중 벙어리가 되게 하는 물을 한방을 소년에게 튀게 하여 소년의 성대를 막아 말을 못하게 한 것이었다.
또 어느 부인은 복부가 팽창한지 6개월이 되어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임신인가 했으나 아니었다. 의사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식구들이 그녀를 혜지에게 데리고 왔는데 혜지가 그녀에게 웅황주를 마시라고 하고 자기는 즉시 목탁을 들고 이렇게 외웠다.
“빨리 떠나라, 빨리 떠나. 숲속에 너의 재(齋)가 있다. 속세의 여자에게 머물지 말고 빨리 떠나라 미련을 갖지 말아라.” 이렇게 몇 번 외우자 여자는 입을 크게 벌리며 무엇을 토하는데 밝은 녹색 빛이 입속에서 뛰쳐나왔는데 빛 속에 한갈래 뱀 모양이 희미하게 숨어 있었다. 여자의 복부가 곧 들어갔으며 혜지는 여자에게 음식에 주의하되 비린 것을 먹지 말라고 했다.
다음은 두 번째 분신이다. 이름은 방성(方城 1397——1452)으로 안휘성 동성(桐城)출신이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17세에 과거에 참가했다. 구화산에 들어가서 참배한 후 내려오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두 사람이 말을 나누다 의기투합하여 서로 결의형제를 맺었다. 나중에 과거에 낙방하고 20세 때 의형의 초청으로 그의 집에 가기로 했다. 알고보니 의형은 산중의 산적이었고 방성은 온갖 수단에 시달려 산적이 되었고 군사(軍師)를 맡았다. 나중에 관병에 토벌되어 죽었다.
세 번째 분신의 이름은 냉랑(冷娘 1412——1438)으로 본명이 초옥방(初玉芳)이다. 강서인江西人)이다. 17세 때 냉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 남편은 냉평(冷平)인데 처음에는 좋은 사람으로 가장했으나 1년 후 보니 남편은 빈둥거리는 놈팽이였고 직업이 없었다. 아이가 생긴 후에도 고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6개월 되었을 때 냉평은 처자를 데리고 남경의 친척 집으로 찾아가 의탁하려 했으나 헛걸음을 했다. 남은 재산이 얼마 없을 때 남경 대부호 왕명(王明) 가에서 어린이가 태어나 급히 유모를 찾았으므로 줄이 닿아 냉랑은 왕명의 집에 들어갔다.
냉평은 왕명의 집에서 냉랑의 보수를 미리 당겨 받고 자기 아이를 안고 몰래 달아났다. 냉랑은 다른 집의 귀한 아이를 안고 자기의 아들을 생각하며 유모가 된 것을 후회했으나 겉으로 드러낼 순 없었다. 거듭 탄식하며 소매를 눈물로 적셨다. 집사로 있던 포정(皰丁)이란 사람이 보고 따뜻이 보살펴 주며 위로했다. 포정은 정인군자인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야비한 소인으로서 냉랑의 미모를 보고 불량한 생각을 일으켜 언행 중에 무례할 때가 있었다.
냉랑이 이를 눈치 채고 늘 가위를 감추고 포정을 방비했기에 포정은 좀 신중해졌다. 한편 왕씨 가문의 아들인 왕화장(王華章)은 날로 자라 냉랑을 친어머니처럼 대했다. 이것이 그녀에게는 자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의 소식을 듣지 못해 밤마다 관음보살에게 절하여 부자의 평안을 기원할 뿐이었다. 포정은 비록 아내와 첩이 있었지만 늘 음흉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왕화장이 책을 읽을 때 냉랑은 시간이 좀 비므로 늘 후원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관상하고 있었다. 한번은 정신을 너무 빼앗겨 포정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포정이 냉랑을 끌어안고 강제로 범하려 하자 냉랑은 극력 반항하다가 잘못하여 못 속에 떨어졌다. 경황 중에 고함을 지르다가 물속에서 빠져 죽고 말았다.
네 번째 분신은 신명(辛名 1420——1488)으로 북경 성내의 철공소의 장인이었다. 그가 운영한 신가철로(辛家鐵爐)는 인근에 소문이 나 있었다. 병기, 잡물 등 제조가 뛰어나 관부에서도 그를 찾았다. 신명은 손재주가 뛰어나고 열정이 있고 사람됨이 시원하며 금의위(錦衣衛) 지휘사 방택(龐澤)에게 단도와 장검을 단련해 준 적이 있다. 또 정화(鄭和)에게는 패검(佩劍)과 20근에 달하는 연환노(連環弩), 관성반(觀星盤)의 철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섯 번째 분신은 연환명와(連環命娃)인데 왜 연환명와라고 하는가? 이 분신은 일생이 끝난 후 한가할 틈이 없이 이어서 잇달아 4번을 전생했다. 첫번째 분신 혜지가 앉아서 세상을 뜬 후 그도 5차례의 전생을 끝마쳤다.
연환명와의 첫번째 명(命)은 무명(茂名 1398——1431)이었다. 그의 부친인 무공(茂功)은 연왕부(燕王府 쿠데타로 나중에 명성조 영락제가 됨)의 막료였는데 세속적이면서 도인이기도 했다. 한때 “정난의 역(靖難之役 영락제의 쿠데타)” 계책을 내기도 했다. 무명은 부친을 따라 어려서 왕부에서 자랐으며 매우 영민하고 비상하여 왕부의 분위기를 잘 익히고 예절을 잘 알았으며 연왕과 왕비를 몹시 존중했다. 연왕이 황제가 된 후 연왕부의 사람들은 대부분 작으나마 관직을 얻었다. 유독 무공만은 관리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연왕의 허락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좋은 선생을 구해서 아들 무명을 가르쳤다. 무명은 힘들게 공부하여 18세에 진사에 붙고 나중에 이부(吏部)관리가 되었다. 사람이 정직하기에 적지 않은 사람에게 미움을 샀으며 나중에 모함에 빠져 억울하게 죽었다.
둘째 명은 추향(秋香 1431——1459)으로 복주(福州)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왕호지(王浩芝)인데 7살에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후 외삼촌 손에서 자랐다. 외숙은 멀리 나가서 장사를 했을 때 외숙모가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겨 그녀는 전전하다 소주에 도착하여 고가에 청루에 넘겨졌다. 기생 어미는 사람을 불러 그녀에게 피리, 금, 창, 글들을 가르치고 추향이라고 이름지었다. 나중에 소주의 부자 상인의 눈에 들어 팔려가서 작은 부인이 되었다. 큰 부인은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으며 계략을 설치하여 추향이 진귀한 도자기를 깨뜨리게 하고 이것을 이유로 추향에게 가법을 실시한다며 장시간 꿇어앉도록 했다. 곁에 있던 어린 시녀가 추향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돌아온 후 추향은 남편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큰 부인을 시종 예의로 모셨다. 큰 부인은 마침내 감회되어 추향을 선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추향은 아들 딸 하나 씩 낳은 후 28세에 셋째 아이를 낳다 산고로 죽었다.
세 번째 명은 곽명란(郭名蘭 1459——1483)으로 명나라 헌종(憲宗)의 후궁이었다. 이부의 관리 곽개(郭開)의 딸로 17 세 때 입궁하여 19세에 딸 하나를 낳고 혜비로 봉해졌다. 24세 때 초가을 감기에 걸려 죽었다.
네번째 명은 라파엘로(1483——1520)로 르네상스 시기의 걸출한 화가다. 사람들은 그를 화성(畵聖)이라 부르며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3대 화가로 칭한다. 라파엘로의 부친은 궁정화가였다. 라파엘로는 어려서부터 부친이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 보곤 했다. 부친이 그림을 그릴 때 매우 평안하게 있어 의아하게 느낄 정도였다. 7세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라파엘로는 상심하여 고통에 빠졌다. 부친이 말하길 어머니는 죽지 않았고 다른 곳을 갔으며 아직 살아있으며 단지 못 볼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약간의 고통이 감소되었다. 모친이 생각나면 라파엘로는 모친을 그렸다. 그가 11살이 되었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고 라파엘로는 아버지 친구의 보살핌으로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다. 17세 때 라파엘로는 사유가 민감해져서 영적인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생각을 하면 주변의 일체를 다 잊어버렸다. 신에 대한 숭경과 경건함으로 그는 점점 높은 경지에 빠졌다.
때로는 눈 앞에 일부 화면이 나타났다. 일종의 가물가물한 느낌으로 천사, 성모와 천국의 장면을 보고 본 일체는 그를 매우 따뜻하게 해주었다. 신의 광명이 그를 이끌어 그의 그림이 더욱 출중하게 만들었다.
다섯 번째 명은 제보 (齊寶 1520——1532年)로 남경성 아래의 거지였다. 그는 대부호의 딸이 낳아 버린 사생아였다.
어느 날 아침 오른 손이 불구인 제약빈(齊弱賓)이란 사람이 구걸을 하려고 구석에 갔다가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보았다. 6, 7개월된 남자아이였다. 그는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려 떠났다. 멀리 가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보고 자기를 쳐다보고 또 갔다. 모퉁이에 갔을 때 그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아예 앉아서 멀리서 보았다. 반시진 동안 몇 명의 사람이 아이 옆에 걸어갔으나 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제약빈은 갑자기 어떤 끈이 묶인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 안심이 되지 않을까? 차라리 저 아이를 안고 가자. 만일 개가 달려들면 아이가 다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얼른 돌아왔다.
아이 곁에 다가왔을 때 아이는 꼼짝도 않고 그를 보고 있었다. 한참 보다가 아이 갑자기 웃었다. 제약빈은 마음이 뜨거워졌고 네가 정말 구걸할 운명인가, 나를 따라가자, 굶기진 않을테니. 그래서 아이를 주워왔고 제보라고 이름 지었다. 비록 제약빈은 제보를 잘 보호했지만 거지를 따라 다녔으니 제보는 온갖 고생을 겪었다. 어렵사리 12살까지 자랐으나 매우 추운 어느 날 그의 생명은 끝이 났다.
연환명와의 5세 전생은 끝이 난 후 이전 네 명의 분신과 합체해 하나가 되었다. 또 다음 전생을 위해 기다렸다.
나는 어떤 대법제자의 일차 분신은 7명의 역할을 한 젓도 적도 있었음을 알고 있으나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런 것을 쓰는 것은 대법제자의 과거를 견증할 뿐이며 이로부터 더욱 우리가 여기 온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하기 위함이며 우리 이후의 길을 잘 걷고자 함이다.
발표시간: 2013년 2월 2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7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