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話本先笙)
【정견망】
구일(九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토록 위엄 있는 법왕께서 왜 굳이 숲속에 가서 평범한 소녀 노릇을 하셨단 말인가?
“내가 그 소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너희가 자신의 질투 화염이 숲 하나를 통째로 태워버릴 만큼 커졌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
갑자기 법왕의 목소리가 엄숙해지다 못해 서슬 퍼렇게 변하자 대전 안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법… 법왕 폐하, 투기(妒忌)가 무엇인가요?” 구일이 엄숙해진 법왕을 보며 벌벌 떨며 물었다.
유리비녀는 구일이 너무 순진한 것을 보고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에구, 아가씨야! 투기라는 건 말이지……. 너희들이 제기차기를 할 때 제기가 벽요만 계속 칭찬하니까 너희 중 누군가 화가 났었지? 그걸 투기라고 하는 거란다!”
새끼 원숭이가 무언가 깨달은 듯 갑자기 말했다.
“투기라는 건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 맞죠? 남이 잘되는 걸 보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는 거죠?”
“아아, 그게 투기였구나. 지난번에 아봉(阿鳳)이가 내가 예쁜 깃옷으로 갈아입은 걸 보고 기분 나빠 했거든. 말할 때 보니까 눈빛이 이상하고 좀 쏘아붙이는 것 같더라고…….” 작은 새 한 마리가 거들었다.
“그 마음은 정말 나쁜 거네요…….” 작은 새들이 ‘투기’라는 것에 대해 짹짹거리며 토론을 벌였다.
법왕의 눈빛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중생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으며, 아직 살 가망이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간곡하게 타이르듯 말했다.
“너희는 일방(一方)의 천중(天眾)으로서 궁우(穹宇)의 높은 곳에 살며 선곡(仙穀)을 먹고 선로(仙露)를 마시니, 심경(心境) 또한 마땅히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자신이 고요하고 영롱하며 늘 희락(喜樂)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도 자애로운 얼굴과 선한 말,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정신(正神)의 기본 상태다.
그런데 지금 너희의 마음속에 ‘투기’라는 더러운 것이 생겨났다! 너희는 자신의 심경(心境) 층차가 이미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투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느냐? 그것은 우주 모든 악의 근원이다. 너희는 신이고 정신(正神)이며, 삼계(森界)와 삼계 이하의 모든 바른 생명을 책임져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 너희의 마음을 보아라. 너희 스스로가 바르지 못한데 어찌 정신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겠느냐?”
대전 안의 모든 생명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심성(心性)이 순결하지 못하게 변한 것에 대해 깊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때 연파 장군이 존주(尊主)님께 읍하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소신이 근래 몇 년간 유리비녀, 복룡장과 차를 마실 때 존주께서 약 1조 겁 전부터 평민 백성으로 환화(幻化)하기를 즐기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복룡장 말로는 생명이 천체에서 생겨난 지 오래되면 경계 층차에 점차 변화가 생기는데, 보통은 그것을 알아채기 힘들기에 대왕님께서 중생들과 늘 함께하며 중생 심성의 미세한 변화를 살피고자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야만 각 생명 내면 깊은 곳의 진짜 층차를 알 수 있고, 삼계를 더 잘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래서 소신이 제13층천에서 올라왔을 때 대왕님의 휘광이 왕궁이 아닌 자의호에 있는 것을 보고, 대왕님께서 다시 본모습을 숨기셨음을 짐작했습니다. 대왕님을 뵈었을 때 감히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은 대왕님의 뜻을 거스를까 염려해서였습니다. 과연 복룡장의 말대로 대왕님께서는 삼계를 다스리기 위해 정말 노심초사하셨군요!
그 못된 비녀 녀석은 또 뭐라고 했냐면……. 에휴, 됐습니다! 그 장난꾸러기 녀석! 언급할 가치도 없지요!
존주님의 표정을 뵈니 뭔가 복안이 있으신 듯합니다. 분명 ‘투기’를 깨뜨릴 방법이 있으시겠지요! 삼계는 분명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파의 말을 들은 무리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치켜들었다. 눈동자에는 다시 희망의 빛이 서렸고 소란스럽게 토론을 시작했다.
법왕은 조용히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의 법왕은 그들을 무척 아꼈으며, 어쩌면 그들 자신보다 더 그들을 소중히 여겼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 반드시 내 중생들을 이 천겁(天劫)에서 구하리라!!’
그 못된 비녀는 대체 뭐라고 했을까?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유리비녀는 예전에 연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존주님께서 너무 오래 사셔서 왕궁에서 9조 겁 동안이나 이렇게 큰 복을 누리다 보니 이제는 지겨워지셨어요. 또한 ‘존주(尊主)’님은 지고무상의 왕이지만, ‘높은 곳은 춥기 마련(高處不勝寒)’이란 말처럼 존주도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으시지. 그래서 평민 백성으로 변해 수많은 친구를 사귀어 생활 방식을 바꿔보려 하셨을 거예요. 왕궁에만 계시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지 않겠어요.” 그녀가 정말 ‘삼계 생명 심성의 미세함을 살피기 위해서’만 그랬겠느냐는 투였다.
유리비녀는 워낙 장난기가 많다 보니 연파는 이 말이 존주님께 대해 다소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그에게 있어 존주님은 늘 마음에 천하를 품고 욕망이나 구함이 없으시며, 왕궁에 계셔도 늘 백성만을 생각하는 분인데 어찌 복을 누리는 것이 지겨워졌을 수 있겠는가?
사실 유리비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벽요는 훌륭한 법왕이었고 중생을 위해 많은 마음을 썼으나, 지난 1조 겁 동안 남모를 적막함과 고독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녀 자신도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을 뿐이다. 심지어 평민으로 변한 것에 ‘적막과 고독’의 성분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조차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미복(微服)으로 다니며 민정(民情)을 살피는 것’이라 자부했을 뿐이다.
신선의 세계는 매우 풍요롭고 법왕인 그녀는 무엇을 원하면 뭐든 다 있고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신선의 심경은 대자비롭고 늘 희락(喜樂)해야 하는데, 어찌 ‘적막과 고독’ 같은 감정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벽요는 이 점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연파에게 “구름이 흐르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모든 만물은 이루어지면(成) 머물고(住), 머물다 보면 무너지고(壞) 소멸하는(滅) 법이다. 그녀는 삼계가 순수하지 못하게 되었고 중생의 심성이 하락했다고 말했지만, 그녀 자신의 심성은 어떠한가? 그녀 자신은 여전히 순정(純淨)할까? 어쩌면 그녀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연 법왕은 이 일방(一方)의 중생들을 천겁에서 건져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해냈을까? 천겁 속 삼계에는 또 어떤 재난이 닥치게 될까? 다음 편을 기대해 주기 바란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