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얼마 전 현지의 한 동수가 사악에게 박해를 당했으나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정념(正念)으로 구치소를 당당히 걸어 나왔다. 교류하면서 나는 동수와 나의 차이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명(明) 언니라 부른다. 당시 여러 명의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는데 명 언니는 소송절차와 법률을 이용해 박해에 반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장 없이 함부로 들어와 가택 수색을 할 수 없으며 영장을 제시조차 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뜻밖에도 경찰은 백지 영장을 꺼내 그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어 가택 수색을 하려 하자 명 언니는 매우 화를 내며 대법 서적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고 경찰에게 밀쳐지기도 했다. 몇 명의 경찰이 그녀를 끌고 현지 파출소로 보냈으며 파출소 경찰은 그녀를 구치소로 보내며 7일 후에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구치소에 이송된 명 언니는 즉시 책임자를 찾아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구치소의 어떤 규칙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경찰이 밀어 부상을 입었으니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며 경찰이 불법으로 자신을 체포했으므로 고소장을 상급 부서에 전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일련의 행동을 취하자 구치소 경찰도 감히 그녀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못했고 현지 파출소 경찰도 겁을 먹고 또 화가 나서 7일이면 보내 준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느냐고 했다. 명 언니는 7일은커녕 단 하루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출소 경찰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 5일 만에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교류에서 나는 우리가 깨달은 것이 모두 사부님의 경문 《슬퍼하지 말라》라는 법이며 모두 사부님의 이 법에 따라 박해에 반대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도다”라는 구절에서 정념뿐만 아니라 정행도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기에 경찰의 그 어떤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반면 내가 깨달은 정행은 구치소 안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를 시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또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가 되어야 한다. 실제 효과 면에서 보자면 명 언니는 5일 만에 나왔고 나는 30일 만에 나왔으니 우리는 역시 차이가 있었다. 나 자신이 명 언니만큼 정념이 강하지 못했고 구세력의 박해에 대한 부정 역시 부족함을 느꼈다. 비록 우리 둘이 같은 구절의 법을 깨달았을지라도 명 언니만큼 잘하진 못했다.
명 언니 집에서 대법 관련 서적들이 몇 권 발견되었으나 박해의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명 언니가 이렇게 빨리 당당히 걸어 나오자 모두들 감탄하며 명 언니를 방문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녀는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후 수차례 요청한 끝에 명 언니를 모시고 나올 수 있었는데 교류 중에 그녀는 너무 창피해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또 평소 박해받는 다른 동수들의 소송을 돕고 박해에 반대해 왔으면서 정작 자신이 박해를 당했으니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또한 이번 일로 자신이 과거에 증오(證悟)했던 법을 모두 부정하게 되었고 수련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으며 수년 동안 수련하고도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지 못했으니 이러고도 여전히 수련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녀의 생각에 많은 사람마음이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법제자의 성숙함을 반영한다. 무엇이 진정으로 정념이 강대한 것이가? 박해 속에서 완전히 구세력을 부정하고 마귀굴을 빠져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박해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인가? 명 언니 생각에 따르면 자신의 정념이 매우 강하다면 근본적으로 박해받는 일이 생기지 않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대법제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박해 속에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정념이 강해야 한다. 비록 수련에 서로 다른 층차가 있겠지만 법정인간(法正人間)의 시각이 다가옴에 따라 모든 대법제자가 마땅히 이러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주: 여기서 말하는 “박해가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박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중생 구도의 일을 하면서 “박해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심정이 아주 우울했지만 교류를 통해 그녀는 점차 자신의 집착을 찾았고 점차 당문화(黨文化)를 제거했으며 서서히 사람마음을 내려놓자 정념이 다시 돌아왔고 수련에 대한 신심도 생겼다. 한 번은 발정념 중에 그녀의 정념이 마치 담장과 같고 담장 틈새마다 화염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는데 어떤 사악도 이를 보면 소멸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명 언니는 정념으로 관을 넘겼고 비록 사람마음과 집착을 지니고 있었으나 나온 후 자신을 바로 닦고 또 사람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는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관을 넘었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같은 곳에 도달했으며 모두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했으나 결국에는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렇게 보면 박해받는 동수들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이 경문은 관을 넘고 박해에 반대하는 데 가장 지도적 의미가 있는 보전(寶典)이다.
일부 동수들 증에는 박해를 받아 들어간 동수에 대해 다른 동수들이 그들의 집착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만약 그들의 집착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부면적인 요소를 더해주는 것이며 이로 인해 박해를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정 각도에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당사자 본인의 정념이 부족해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밖의 동수가 아무리 좋은 정보를 주어도 소용이 없다. 현재 비교적 좋은 방법은 변호사 접견을 통해 《슬퍼하지 말라》 경문을 박해받는 동수에게 여러 번 읽어주어 그가 정념을 세우게 하고 안에서 자신의 집착을 찾아 사람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밖의 동수는 그들의 어떤 집착도 개의치 않고 견지하며 발정념(發正念)을 해주어야 하지만 안의 동수는 반드시 “안으로 찾고”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만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슬퍼하지 말라》 경문은 감옥에 갇힌 수련인에게만 지도 작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업(病業) 중에 있는 수련인에게도 똑같이 지도 작용이 있다. 병업 중의 정행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 거의 누워만 지내던 한 동수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그는 이것이 일종의 박해임을 의식했다. 누가 나를 먹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분명 나를 박해하는 사악이다. 네가 먹지 못하게 해도 나는 기어이 먹을 것이며 네가 나를 괴롭게 해서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해도 나는 기어이 배울 것이고 네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누워만 있게 만들고 연공을 못 하게 해도 나는 기어이 연공할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 연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악이 나에게 가한 박해 상태에 따라 하지 않고 이런 상태를 부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동수는 관을 넘겼다.
대법제자는 이미 26년의 반박해(反迫害) 과정을 걸어왔다. 특히 대륙 대법제자들은 직접 겪은 피바람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로 잘 총괄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할 것인가? 정념정행에도 서로 다른 층차의 함의가 있으며 한 가지 표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층차에는 더 높은 표준의 요구가 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것 역시 우리의 수련 내용이다.
이상의 내용은 개인의 인식일 뿐이니 참고로 제공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244
